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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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우리는 많은 확률 게임을 합니다. 1등 당첨을 통한 인생 역전과 대박을 꿈꾸며 복권을 사기도 하고, 명절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윷놀이 하며 가벼운 내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매일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루에 하는 선택이 평균 150회에 달한다고 하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선택을 하며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확률 게임에서는 성공과 실패가 중요합니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꽝이 나오거나, 청약에 당첨되거나 떨어지거나, 내기에 이기거나 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성공과 실패 사이에 1, 2, 3등, 예비 몇 번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내게 이익인지 손해인지에 따라 성공과 실패로 나눌 수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는 금리가 오르면서 저축 이자와 대출이자가 함께 오르고 있습니다. 예금이나 적금을 넣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이지만, 대출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위기이자 재정적 부담이 가중되는 시기입니다. 매일 높아지는 금리에 많은 사람이 새벽부터 줄 서서 더 높은 금리의 예적금 상품에 가입하려고 한다는 뉴스 보도도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낮은 이율로 은행에 돈을 넣어 두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달라진 양상입니다.

초저금리 시대에는 주식이나 비트코인, 소위 영끌 대출이라고 하는 무리한 대출을 통한 부동산 구매가 현명한 투자 방법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코인이나 주식, 부동산이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고 과감하게 투자한 것입니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 주식과 코인, 부동산 시장은 급격하게 얼어붙었고, 지속적인 상승세를 기대하며 투자한 사람들은 많은 손해를 입었습니다. 

투자 시점에 우리는 성공과 실패 확률이 반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왠지 지금까지 성공했던 사람, 상한가를 치는 회사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마치 경마에서 직전대회 우승마에게 자연스럽게 배팅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난 성공이 앞으로의 성공을 반드시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런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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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뜨거운 손 현상(Hot Hand Phenomen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은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에 의해 1985년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그들은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이전에 자유투를 성공한 선수에 대해 그렇지 않은 선수보다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성공할 것이며, 해당 선수에게 더 패스를 많이 해야 한다고 평가하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이전의 자유투 성공 여부와 별개로 새로운 시도에서 성공 또는 실패 확률이 50대 50임에도 불구하고 편향된 인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선수들은 ‘뜨거운 손(Hot hand)’을 가졌다고 믿습니다.

이런 인지적 오류가 일어나는 까닭은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할 때 과거에 발생했던 사건을 통해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인지적 소모를 줄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 과거 사건에 대한 기억의 오류나 편향, 우연적 사건에 대해 비우연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는 범주화 과정에서의 편향에 의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식투자를 할 때도 소위 ‘우량주’라고 하는 종목에 투자하고, 부동산을 매매할 때도 최근 집값 상승 지역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물론 이런 우량주나 집값이 급등한 지역에는 성장 가능성, 안정성, 지역적 호재 등 실제로 상승을 이끄는 요인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곳에 투자하는 것이 꼭 현명하지 않은 투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까지 이어진 상승세가 미래에도 계속되리라는 보장 역시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패는 늘 반반의 확률이며,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반대로 과거에 일어나지 않은 일이 새로운 시도에서는 일어나리라 생각하는 인지적 오류도 존재하는데, 이는 ‘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라고 불립니다. 게임을 하면서 연속해서 졌을 때 다음 판에서는 반드시 이기리라 믿고 게임을 이어 가는 것입니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과거에는 ‘이번엔 꼭 아들이다.’라고 굳게 믿고 아이를 계속 낳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던 아들은 태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딸만 태어난 집들도 많았지요. 아들보다 딸을 더 선호하는 요즘은 오히려 반대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도박에서는 도박사의 오류로 인해 ‘딱 한 판만 더.’하고 무리하게 배팅을 이어 가다가 전 재산을 잃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습니다. 

뜨거운 손 현상과 도박사의 오류는 모두 확률과 예측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오류의 대표적인 예에 해당합니다. 미래는 알 수 없기에 어떤 방법으로도 100% 완벽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실패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어제의 실패가 오늘의 성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우리의 의지나 노력이 아닌 ‘운’이나 ‘요행’에 의해서만 정해진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열심히 살 이유 역시 없겠지요.

 

중요한 것은 성공이나 실패 자체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눈앞의 이익이나 성공이 반드시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지금 겪는 어려움이나 실패가 걸림돌로만 작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복권 1등 당첨자 중 많은 사람이 오히려 불행해졌다고 합니다. 많은 돈으로 인해 사람들의 표적이 되며 여러 갈등과 문제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지 않고 맑은 날씨가 계속 이어지는 곳은 결국 사막이 됩니다. 맑은 날씨가 당장 즐기기에는 좋지만 비나 태풍이 오지 않으면서 수분이 고갈되어 사막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삶이 어떤 곳이 되기를 바라시나요? 맑은 날만 계속 이어지기를 바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날만 계속된다면 언젠가 우리 삶도 사막이 되지 않을까요? 성공과 실패를 고루 경험하며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결국은 우리 삶에서 꽃도 피고 나무도 자라고 열매도 맺을 수 있게 해 주는 고마운 비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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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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