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은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삶이 공허하게 느껴지거나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습니까?

효율성과 경쟁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특히 더 개인의 무가치함을 느끼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어디나 나보다 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들이 있고, 도저히 이기기 어려울 것 같은 상대가 너무 많지요. 각 분야별로 따지면 그런 엄친아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죠. 그리고 우리는 어려서부터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인정과 표창을 받는 모습을 많이 보며 자랐어요.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 괜찮은 사람이고, 칭찬과 인정을 받지 못하면 무가치한 사람인 것 같나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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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발길을 돌려 가까운 언덕이나 산기슭으로 올라가 볼까요? 아무렇게나 자라나고 있는 나무나 풀, 들꽃들이 보이나요? 다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하고 살펴보면 그 식물들은 씨앗이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 가장 알맞은 모양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위틈에서 어렵게 자라나 키가 작고 구불구불한 나무도 있고요, 이름은 모르지만 나무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색깔의 꽃을 피워낸 풀들도 있지요.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생명력을 발휘하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펼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감히 어느 생명체가 더 낫다고 순위를 매길 수가 없습니다. 그저 모든 생명체가 자연현상으로서의 어려움을 견디고 경이로운 삶을 펼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하나의 생명체가 다 고유하고 유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가 다 타고난 삶의 가치가 다르고, 그러므로 모두 유일한 존재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들(부모, 질병, 외모 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모두 같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인생에는 제각기 다른 모양의 어려움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 어려움과 고통에 가려져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가치를 발견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요. 하지만 하늘에 구름이 드리워져 있어서 태양을 가린다고 해서 태양이 없어지는 건 아니듯이 우리 인생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태양처럼 빛나는 각자의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발견되어 실현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요.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은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가치와 사명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어느 때건 인생엔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 어떤 인생에도 이 세상에 생명이 있는 한 충족시켜야 할 의미, 실현해야 할 사명이 반드시 주어져 있습니다. 당신이 모르고 있을 뿐, 당신 발밑에 이미 있습니다.”라고 말한 위대한 정신과 의사가 있습니다. 그는 빅터 프랭클(1905~1997)입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출생으로 빈의 3대 심리치료학파 중 하나인 로고테라피(logotherapy)를 창시하였습니다. 빈의 3대 심리치료학파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그리고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를 말합니다. 빅터 프랭클은 학창 시절부터 프로이트와 서신을 교류하면서 인간의 깊은 정신세계와 철학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개인심리학회에서도 활발한 연구를 했었습니다.

그는 프로이트와 아들러 이론의 깊이 있는 통찰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철학을 로고테라피로 발전시켰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분석과 개인심리학은 잘 알려져 있는 반면,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글을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정도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약 3년 반의 기간 동안 네 군데의 강제수용소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서 인간 이하의 극한의 삶을 몸소 체험하였습니다. 그는 그 극한의 체험 속에서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인간은 피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해서도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자유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강제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성자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돼지와 같은 태도를 선택한 자도 있었습니다. 즉, 상황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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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고통은 인간을 굴복하게 하기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게 해 주고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줍니다. 인간은 살면서 끊임없이 우리가 소유한 것들에 대해 남과 비교하면서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인식 앞에서 우리는 삶의 본질에 다가서게 되고,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삶을 찾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다잡을 수 있게 됩니다. 

빅터 프랭클은 고통과 죽음 없이 삶이 완성될 수 없다고 합니다. 죽음도 없고, 고통도 없는 영원한 삶이 과연 우리가 바라는 삶일까요? 우리의 삶에 의미가 있다면 하루를 살아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고, 의미가 없다면 그 의미 없는 삶을 영원히 산들 의미 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이고, 그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일 것입니다. 그 의미를 추구하는 의지가 꺾이면 사람은 살아갈 동력을 잃게 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의 효율성으로 순번을 매기는 사회 시스템과 거기에 편승하는 잘못된 부모의 과욕이 타고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꺾어서 실존적 좌절, 실존적 공허감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 실존적 공허감은 우울증,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도박 중독, 공격성 등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존적 위기 또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자 하는 과정이므로 의미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상실하거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로 인한 실존적 공허함을 느낄 때 실존 분석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과거의 고통이 미래를 향한 초석이 될 수 있습니다.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고통이 나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키고, 그러한 과거의 경험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따라 내가 더욱 성장하고 성숙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고통 없는 삶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실현되어야 할 의미가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은 그 의미를 향해 노력하는 존재이고, 심지어는 그 의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은 로고테라피의 정수를 알려 줍니다. 삶의 의미는 생의 마지막 날까지 발견해 나가는 것입니다. “인생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의미는 반드시 주어져 있습니다. 해야 될 일, 충족시켜야 할 의미가 반드시 있기에 그 사람에게 발견되어 실현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한 빅터 프랭클의 말을 되새기면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내 삶이 나에게 기대하는 사명이 무엇일까 질문해 보십시오. 여러분 모두가 내 삶에서 나 자신만이 실행할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은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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