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이제는 솔직히 잘 모르겠기도 합니다. 제가 엄청나게 힘든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이겨내는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이겨낼 만한 힘이 있는 사람인데 내 스스로 나를 불쌍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늘 되묻고 불안합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친했던 친구들에게서 집단따돌림을 겪으면서도, 제 스스로를 버티게 했던 건 저를 사랑하는 부모님과 화목한 우리 가족이었어요.

어느 가족보다 우리 가족이 행복하고, 서로 사랑한다고 굳게 믿었고,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은 이런 가족이 없어서 외로워서 삐뚤어진다고 생각하며 이겨냈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들이 정말 밉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안쓰럽습니다.

그랬던 가족이 지금은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를 겪으며 갈등속에 빠져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제는 나에게 힘이 되어준 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자꾸만 벗어나고 싶습니다.

출처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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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외롭게 만드는 아버지도, 나만 바라보는 엄마도, 자꾸만 엇나가는 동생들도 다 도와주고 싶은데 아무리 애를써도 아무것도 나아지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아무런 힘도 없는 제 자신이 싫다가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이제는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대학을 다니면서 처음 상담을 받는데 제 얘기를 하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제 발로 찾아갔는데, 너무 도움을 받고 싶은데 그냥 내가 못난사람이라는 것을 선생님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자꾸만 가면을 쓰고 거짓말을 하는 제 모습에 서둘러 상담을 종료했습니다. 딱 하나, 가족과의 분리를 권유했던 말씀만 실천할 수 있었어요. 우리 가족에게 가족상담이란 꿈과 같은 이야기였으니까요.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빠져나온 지옥에 남아있는 우리 가족이 너무 불쌍합니다. 그런데 자꾸만 외면하고 싶어요. 정말 솔직한 마음으로는 여태껏 죽어라 동생들을 지켜냈으니 이제는 누가 저 좀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사실 그냥 나는 나쁜 사람인건 아닐까. 내가 정말 노력을 했더라면 우리 가족이 이렇게 되었을까.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도망치고 싶어서 불쌍한 척을 하는건 아닐까.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냥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싶어요. 내가 사라져서 누구 하나라도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이 마저도 그냥 연민에 빠져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기만 하는 사람이 되고있는걸까봐 너무 두렵습니다.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뭐가 진짜 제 마음인지,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도움을 받으려면 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자꾸 거짓말을 하고, 거짓을 얘기하는 것 같고, 제가 불쌍한 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답변)


안녕하세요, 정희주입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가족과 관련된 어떠한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는 화목한 가정이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나 지금은 가족간의 갈등이 커졌고, 글쓴이분은 독립해서 나와있는 상태이구요.

출처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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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족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을 가지실 필요는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린시절 가족, 부모님의 도움을 받은 것처럼 적으셨는데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녀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은 보호자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을 넘어서는 부채의식을 갖는 것은 나의 삶에도, 가족관계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동생을 지킨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생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다면 동생에 대한 책임은 부모님에게 있는 것이고, 성인이라면 동생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옆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 수는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지, 그것을 넘어서는 책임의식은 도리어 동생의 삶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갈등에 내가 개입해서 완벽히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가족 내적, 외적 갈등을 내가 노력하여 해결하겠다는 것은 의도는 숭고하나 조금은 무모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결국 가족 구성원 각자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어야하는 문제인데, 스스로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이상 외부의 조언이나 강제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끔 가족을 특별한 관계로 보고 나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족 역시 엄연히 내가 아닌 남이라는 점을 인지해야합니다. 내가 친구의 가족을 바꾸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게 나의 가족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출처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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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내 삶에서는 내가 가장 우선이 되어야한다는 원칙을 가지셔야합니다. 지금 글쓴이분은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애쓰고 고민하다가 자신의 내면이 망가지고 위태로워지고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가족을 돕고 싶어도 도울 힘이 생길 수 없을 뿐 아니라, 나를 힘들게 만드는 가족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상담하시는 분이 제안한 가족과의 분리는 단지 물리적인 분리가 아니라 심리적인 분리까지를 의미했을 것입니다. 어느정도 떨어진 상태에서 내 마음을 추스려야 비로소 가족을 도울 적절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나와 가족의 경계를 지금보다 좀 더 분명히 설정하고, 내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정도의 한계를 명확히 규정한다면, 글쓴이분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내가 가족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의외로 쉽게 찾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이러한 고민으로 내 일상을 영위하는데 어려움이 생길 정도라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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