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임지섭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곧 수능 치룰 학생입니다.

맥락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지나치게 선생님 눈치 보기. 답답한 걸 알면서도 답답한 행동을 멈추지 못해 스스로 더 답답해하기..

선생님께서 adhd 약물치료에 집중하고 계신 것 같아, 차마 저의 다른 우울, 그리고 과거에서부터 지속된 우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습니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상담센터를 추가로 다녀야 하는건가 싶기도 하고, 대기자도 길어서 오래 말하기 눈치도 보이고, 그래서 후다닥 약 관련 얘기만 하고 나옵니다 매번..

선생님께서 제가 수능을 치는 것을 배려해주셔서 4주치 약을 한번에 처방받고, 수능 이후에 예약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진짜 너무 미친듯이 살기가 싫습니다.. 병원에 가고 싶은데, 가서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을거같고.. 괜히 중간에 찾아가서 귀찮게 하는 것 같아 병원에 전화도 못 걸겠습니다..

 

2. 세상에 저를 이해해줄, 제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평생 이렇게 외롭게 살텐데. 평생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늘 부정적이었대요.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한번도 가족에게 공감받지 못했고, 오히려 미친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일기장에 쓰기엔 너무 외롭습니다.. 현재 고3인 친구들에게도 예의가 아닐테니 털어놓지 못합니다. 7년간 커뮤니티를 돌아다녔지만, 늘 민폐가 되는 것 같아 어디 털어놓은 것도 못 하겠습니다. 저는 평생 이렇게 외롭고 괴롭게 살 것 같습니다.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는한 저는 불행할 것 같습니다.

고양이와 산 속 따뜻한 작은 집에 틀어박혀서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네요, 이룰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룰 수 없다면 살 이유도 없을텐데.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임지섭 입니다.

글쓴이님께서 적어주신 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ADHD로 치료를 받고 계시고 있으시군요. 그리고, 지속되는 우울감을 담당선생님께도 말씀하시지 못하고, 어쩌면 앞으로 평생 행복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써주신 글에서 공감받지 못함, 미친사람 취급, 털어놓지 못함, 민폐, 외롭고 괴롭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는 것이 불행할 것 같다는 단어들에서, 글쓴이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 상태인지 느껴졌습니다. 더 나아가,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씀에서는 일종의 무망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외로움’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세상에 나를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 세상에서 나 홀로 고립되어 있는 고립감과 외로움이 최근에 생긴 느낌은 아닐 것 같습니다. 과거의 많은 경험들로부터 현재의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주변 환경과 타인을 대하는 패턴,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글에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지만, 조금이나마 추측하자면, 부모님과 질문자님 사이의 정서적 교류, 과거에 따돌림 당했던 기억, 정서적 욕구의 충족 여부 같은 것들이 현재의 자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글쓴이님께서 지금 느끼고 계시는 이 외로움은, 과거의 경험들, 특히 공감받지 못했던 경험들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로부터 만들어진 현재의 생각들이 감정과 행동으로 연결됩니다.

 

ADHD 환자분들은 일상생활에서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또래 관계, 규칙 지키기, 학업 성취 등 여러 영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로 인하여 주변의 부정적인 반응들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의 생각들, 욕구, 감정을 표현했을때 공감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많은 경우, 친구들이 잘 어울려주지 않는다거나,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늘 잔소리를 하게되고, 의사소통을 시도해도 오해받게 되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반복하여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좌절과 상처들이, 무력감이나 수치심으로 경험 됩니다. 결국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더 나아가 세상에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으리라 느끼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현재는 담당 정신과의사마저 그러리라 짐짓 생각하시면서, 스스로 눈치를 보면서 본인의 감정이나 느낌들을 말씀하시지 못하고 계시는 것이구요.

조금 복잡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타인이나 세상에 대한 내가 가지고 있는 관점을 ‘스키마’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들로부터 만들어져 저마다의 패턴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패턴에 따라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기 쉽습니다. 어쩌면, 글쓴이님의 스키마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거절당하고 상처받을 것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상처를 피하기 위해서‘고양이와 산 속의 작은 집’에서 자신을 마음을 지키고 싶어하시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에 말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것이 아마도 ‘산속의 작은 집’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쉽게 말하면, 외로울 것이라 생각이 스스로 외롭게 만드는 행동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음 속에 자리한 ‘지속되는 우울감’도 이와 같은 뿌리를 가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즉, 반복하여 거절 당한 마음이, 앞으로에 대한 비관적 예상이, 글쓴이님의 생각과 행동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결국 마음이 무겁고 힘들게 된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아마도, 이렇게 오랜 시간 경험으로 쌓인 문제들은, 한 두가지의 방법으로 극복되거나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회복의 시작은 어떤것이라 할지라도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그에 대해서 비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일 것이라 생각 합니다. 정신과 치료의 하나인 정신치료 혹은 상담치료에서 하는 작업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음 방문시에, 담당 선생님께 글쓴이님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이야기글 한번 꺼내보시는건 어떠신지요? 지금 다니시는 병원이 약물 처방으로 바쁘다면, 그래서 담당선생님이 아니라 뒤에 기다리시는 환자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담당선생님께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정신과를 추천 받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글쓴이님을 이해하기 위해서, 환자분께 정해진 시간동안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상담치료 세팅을 가진 곳도 있습니다. 지금 받고 계시는 치료가 정신과 치료의 전부는 아닙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앞으로 글쓴이님께서 만나실 누군가는 글쓴이님을 분명 이해해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애타게 글쓴이 님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글쓴이님의 마음에 ‘외로움’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외롭다는 감정은 미성숙의 지표나 우울의 일부이기 이전에, 우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라는 메시지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 마음의 여섯 얼굴, 김건종

 

부디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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