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사당 숲 정신과, 박초연 전문의]

 

 

 

사연)

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으로 봅니다. 저는 매사에 소극적이어서 인간관계도 넓은 편이 아닙니다.

저는 회사에서 부당한 일이 생기면 마음속에서 불이 활활 타듯이 분노가 느껴지며 남들보다 더 흥분하고 화를 냅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이 됩니다.

제 직업이 고객을 상대하다 보니 본인 맘에 들지 않으면 욕을 하시거나 언성을 높이며 불만을 표현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생기면 저는 흥분하고 마음속에서 분노가 일어나 너무 힘듭니다. 고객에게 화를 낼 수도 없고 분노를 표출할 수도 없으니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받습니다.

어제는 이전에도 블랙컨슈머였던 고객이 물건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저에게 삿대질과 화를 내며 주변에 있는 물건을 집어 들어 폭력을 행사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지 못하고 고객에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차분하게 대처하지 못하여 현재 후회가 됩니다.

저의 흥분하고 분노하는 모습 때문에 남들이 저를 분노조절장애로 보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됩니다.

어떡하면 좋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박초연입니다.

사연 주신 분은 ‘화’ 때문에 고민을 하고 계시는군요.

고객의 공격적인 태도와 언행에 화가 났다는 사연 주신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누구라도 충분히 화가 날만한 상황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우선 첫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앞서 말씀하신 상황에서 분노를 느끼는 것은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분노라는 감정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아주 정상적인 감정입니다. 때문에 그것이 전혀 잘못은 아닙니다.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과는 별개로 분노라는 감정 자체에 대해서 느껴서는 안 되는 금기시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계시다면, 오히려 분노를 더 다스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분노를 느끼는 스스로에 대해서 죄를 짓는다는 생각이 들어 그 감정을 더 억압하게 되고, 그렇다면 분노는 자연스럽게 흘러나가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 한구석에 켜켜이 쌓여 분노가 일 때 과도한 반응으로 나타나거나, 혹은 엉뚱한 곳에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분노가 올라오는 때에 스스로를 너무 비난하기보다는, 충분히 그럴만했다고, 힘들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이해해주고 다독여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는 분노를 느낄 때 각기 사람마다 다른 화가 날만한 포인트들이 있습니다. 요즘은 이것을 '발작 버튼'이라고 부르더군요. 나만의 '발작 버튼'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시는 것은 중요합니다. 나의 약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잘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죠. 분노를 느끼고 난 이후에라도 그 상황을 천천히 다시 떠올리면서 유독 어떤 부분이 가장 참기 힘들었는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게는 이러한 부분이 과거에도 이미 경험한 부분일 것이고, 과거에도 느꼈던 비슷한 상황에서의 분노가 현재에 자극에 나도 모르게 휘몰아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노를 느낄 때 오롯이 현재의 상황에서 기인한 부분과, 과거의 비슷한 경험에서 겹쳐지며 올라오는 분노를 구별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를 연습하게 되면 점점 더 빨리 깨달을 수 있게 되어 현재의 화를 조절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고객을 대하는 상황에서 화가 나는 것에 대해서는, 상대와 나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연습을 해보시는 것이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자아 경계'(ego boundary)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계를 맺어나갑니다.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각자의 여러 가지 감정이나 생각이 밖으로 나와 서로 뒤섞이게 되죠. 이때에 우리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 중에 오롯이 나에 의한 것이 있고, 타인에게서 비롯된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자아 경계가 명확한 사람은 이 상황에서 스스로의 것을 더 명확히 하여 타인으로부터의 영향을 최소화합니다.

사연을 주신 분이 일을 하면서 고객이 과도하게 화를 내는 것은 그 사람의 감정이고, 그 사람의 몫입니다. 내가 그것을 다 수용해주어야 할 이유도, 그에 맞춰주어야 할 이유도 없지요. 나의 것이 아닌 감정을 내 안으로 끌어들여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감정의 주인은 나이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휘둘리지 않도록 방어막을 단단히 세우는 연습을 하시도록 권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분노조절장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분노조절장애는 정신의학에서 공식 진단명에 포함되어있지는 않지만,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하나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정신질환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앞서 사연에서 말씀해주신 부분으로 진단을 할 정도의 문제는 알기 어려워 구체적인 상황과 사연 주신 분의 심리상태를 자세히 알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가까운 곳의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시어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이상으로 부디 제 답변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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