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성찬 당산 숲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결혼 4년 차 직장인 여성입니다.

결혼 후 시댁과의 갈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3년 차에 우울증과 약간의 불안장애로 반년 정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완치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모든 것들을 끊어야 호전이 된다고 하였고, 그래서 남편도 제가 완치될 때까지는 시댁의 시자도 꺼내지 않다가 이제 제가 조금 생활이 정상적으로 되고 행복감을 느끼니까 다시 왕래를 원하고 있습니다. 왕래하지 않고 인연을 끊는다면 저와 살 수 없다고 해서 서로 합의하에 6개월 뒤부터 천천히 연락하면서 지내자고 했는데 이번 달이면 그 기간이 끝나서 예전처럼 다시 연락을 하고 마주하고 지내야 하는데 너무 두렵습니다. 남편에게 부모님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제가 그 사람의 부모님을 우울증의 원인으로 보고 불안해한다는 것을 말하면 남편도 더 이상 제 편에 서주지 않을 것 같고요. 그런 남편이 야속해서 이혼을 하자 생각했다가도 사실 시댁만 관여하지 않았으면 행복했던 결혼생활이었기에 고민이 됩니다. 

시댁과의 갈등이 생긴 주원인은 생각 없이 내뱉는 발언들과, 무교인 저에게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것, 아이를 언제 가질거냐는 질문 등이었습니다. 사실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은 결혼 전에 남편도 동의했던 사항인데 결혼하면 달라질 줄 알았다며 말을 바꾸기도 했고요. 그러던 어느 날 신랑과 시어머니의 통화를 전화기 너머로 듣게 되었고, 저에 대한 안 좋은 험담을 필터링 없이 그대로 듣게된 이후 저의 우울증이 생겼습니다. 불쾌한 말을 조심하라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으나 그래도 저러시는걸 어떻게 자기가 막아주냐 하는 입장입니다. 시댁에 가자는 말이 나올까봐 하루하루가 두렵고 불안한 날들입니다. 남편과는 정말 수없이 대화를 많이 해봤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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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당산숲 정신과 이성찬입니다.

시댁과의 갈등으로 오랜 기간 스트레스를 받아오셨네요. 결혼 3년 차에 정신과 치료를 6개월 받으며, 시댁과 교류를 끊고 우울과 불안증세가 ‘완치’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다시 마주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며 불안과 두려움이 점점 커가는 상태시군요. 약물로 어느 정도 증상을 조절은 할 수 있습니다만, 사연자님이 느껴온 우울과 불안, 두려움에 대해서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일입니다. 오늘은 함께 사연자님의 상황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먼저 시댁 식구의 발언들은 사연자님에게 무례하게 느껴지고 기분 나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이 남을 배려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툭툭 내뱉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가라거나 아이를 가지라는 등 쉽게 간섭하고, 자유를 침범하는 발언들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면, 타인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는 특성을 가진 분들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욕심을 타인의 입장을 고려 않고 밀어붙이겠지요. 그런데 시댁 식구의 모든 성격적 특성과 행동은 사연자님이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영역입니다. 그대로 수용하거나 포기하는 방법 외에는, 부딪혀서 내 욕구와 내 입장을 또렷하게 드러내며 나의 경계선을 지키는 싸움을 하셔야 합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아마 부딪히기보다는 회피하는 선택을 하신 것 같습니다. 회피하는 전략도 나름대로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싸움으로 번지면 나올 수 있는 커다란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고요. 사연자님이 더 큰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한 선택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계속 회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 결국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이셨습니다.

 

지금, 그분들과 다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제는 사연자님의 ‘마음가짐’을 변화시켜야 사연자님이 앞으로 덜 고통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원래 타인을 바꾸는 것보다 내가 바뀌는 게 속도가 제일 빠릅니다. 타인은 통제가 불가능해도 나만큼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이나 불안감, 두려움에 대해서도 ‘내가 다룰 수 있는 영역’으로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감정의 주인은 사연자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사건과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이 감정 자체를 내게 주입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이 느껴지기 전에 아주 빠르게 스쳐간 내면의 생각들이 바로 감정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만일 특정 감정을 일으킨 것이 나의 생각이 아니라 외부의 누군가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소위 말해 ‘남 탓’을 하는 것은 때로 아주 적응적인 방식입니다.

 

혹시‘귀인이론’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를 귀인 행동이라고 합니다. 그 일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판단하면 ‘내부 귀인’, 타인에게 있다고 판단하면 ‘외부 귀인’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대부분 ‘적당한 수준’의 내부 귀인과 외부 귀인이 필요합니다. 귀인이 문제가 될 때는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칠 때입니다. 너무 내 탓으로 돌리거나 너무 남 탓으로 돌리게 되면 많은 고통감이 생기게 됩니다. 내 요인으로 많이 가져가면 우울하고 버거워지고, 타인의 요인으로 많이 돌리면 원망스럽고 두렵습니다. 사연자님의 고통감을 전부 시댁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게 아닙니다.

내 고통의 원인이 100% 시댁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열쇠도 시댁에게 주는 것이고 주도권도 넘겨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고통의 원인이 내면에서 발생한다는 관점을 취하게 되면 고통을 다룰 수 있는 주체는 바깥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됩니다. 그러면 덜 무기력해지고, 덜 두려워집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금의 고통감을 다루고 해결할 역량과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은 사연자님이라는 관점을 꼭 새롭게 인식하셨으면 합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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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부터는 사연자님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 우울함과 불안의 실체를 마주하셔야 합니다. 깊이 파고 들어가면 부정적인 감정의 실체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연자님의 생각이 그 감정들을 키웁니다. 감정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도 언제나 자기 자신 뿐입니다.

서로 의견이 달라서 충돌할 때마다 그 사람 자체와 연을 끊는다거나 도망치면 불편한 감정들을 소화하는 근육은 점점 약해집니다. 작은 갈등이 생겨도 감정이 폭주합니다. 결국에는 갈등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불편한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시댁과 소통해야 하는 현실이 왜 그렇게 불안하고 두려운지 스스로 분석해본 적이 있나요?

사연 글을 보면 시댁의 발언들이 강요나 무례로 느껴지는 것을 넘어서 사연자님에게는 하나도 방어하지 못할 커다란 공격을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과거의 경험 중에 사연자님께 여전히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예를 들면 누군가에게 입장을 표현해도 묵살되거나 전혀 수용되지 않는 경험을 하셨다면,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기보다는 포기하는 안전한 방향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갈등이 생기면 차라리 끊고 도망치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요. 이전 경험들 중 나의 자율성이 침범당하거나 존중받지 못한 경험들이 있었는지 돌아보고, 고통받았던 기억이 있다면 진심으로 애도하고 공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지금 시댁과의 관계에 미치는 감정적 영향력을 끊어내고, 조금은 가벼워진 상태로 지금 문제를 다룰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필요한 마음가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연자님이 자유의지를 존중받고 싶은 욕구만큼 그분들의 자유의지도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가치관을 타인이 수용해주었으면 하는 욕구를 가집니다. 사실 욕구를 넘어서 욕심입니다. 수용할지 말지는 오롯이 타인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단지 입장 표명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분들이 원하는 바를 사연자님께 강요한다면, 일단 수용하시고 사연자님의 입장도 표현해주세요. ‘제게 이러이러한 걸 바라시는 건 잘 알겠습니다. 충분히 그 마음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받아들이라고 저에게 강요는 하실 수 없어요. 저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충분합니다. ‘상대방이 싫어하면, 거절하면, 뭐라 하면 어쩌지’라고 미리 염려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상대방은 어떤 반응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 또한 어떤 반응이든 자유롭게 하시면 됩니다. 만일 사연자님을 비난하면 그 비난이 사실인가? 나에 대해 정확히 알고 하는 말인가? 스스로 물어보세요. 아마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니, 내 마음으로 굳이 가져와 곱씹고 삼키지 않아도 됩니다. 타인이 던진 무의미한 쓰레기를 붙들고 고민하지 마세요. 쓰레기는 만든 사람 것이지 받아낸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남편분과 대화하실 때 우울증의 원인이 시부모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방어적으로 만들 수 있으니 지양하는 것이 좋습니다. 두 분께 부부 상담을 권하고 싶습니다. 대화하는 모습을 상담 전문가에게 오픈하시고요. 상담 전문가가 두 분의 중간 역할을 하여 갈등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제대로 된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시할 겁니다. 그렇게 전문가의 도움도 받으셔서 지금의 갈등을 지혜롭게 잘 극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솔직하게 고민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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