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알고 있다

'굿 윌 헌팅'은 '라라랜드' 못지않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 교수가 ‘윌 헌팅(맷 데이먼)’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장면을 많이 떠올린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주인공 윌 헌팅이 스카일라(미니 드라이버)를 만나게 되는 부분이다. 정확히는 스카일라를 만나기 직전 장면이다.

윌 헌팅과 그의 친구들은 어느 날 하버드 대학교 근처의 술집으로 놀러간다. 윌 헌팅의 친구 중 하나인 처키 슐리반(벤 에플렉)이 먼저 스카일라와 그녀의 친구를 보고 작업을 걸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어떤 남학생이 벤 에플렉을 망신 주기 위해 '미국 남부 시장경제 발전사'에 관해 묻는다. 윌 헌팅은 이 논쟁에 끼어들어 풍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그 남학생을 그야말로 박살낸다. 남학생이 사학자 빅커의 논문 내용을 마치 자기 생각인 양 말하며 반박하려고 하자, 윌 헌팅은 남학생이 빅커의 논문 내용을 인용하려 한다는 것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견해는 없는 거야?"

그리고 15만 달러의 학비를 쏟아붓는 것보다 도서관을 다니는 게 나을 거라고 일침을 가한다. 망신을 당한 남학생은 끝까지 "그래도 나는 학위를 받아. 그렇지만 넌 나중에 내 아들이 스키를 타러 다닐 때도 점원 노릇이나 하겠지"라면 정신 승리를 시도한다. 이에 대한 윌 헌팅의 강력한 한 방은 바로

"At least, I won't be unoriginal."

즉, 적어도 표절은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다는 것이다.

 

사진_네이버영화 '굿 윌 헌팅' 스틸컷
사진_네이버영화 '굿 윌 헌팅' 스틸컷

 

하버드생을 무참하게 무찔러 버린 윌 헌팅의 논쟁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다름 아닌 '네 견해는 없냐'는 질문 때문이다. “굿 윌 헌팅”을 다시 볼 때면 항상 이 장면에서 내가 진짜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자문하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서 정말 우리가 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은 몇이나 될까.

초등학교 때 영어를 처음 배우면서 ‘I know’와 ‘I see’의 차이점을 배웠던 것이 생각난다. 기존에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말할 때는 I know,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I see. I see의 영역이 늘어갈수록, I know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어 간다.

무의식적으로 뭔가에 대해 '안다'고 말할 때면 흠칫 놀라게 된다. 이게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들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 작가 안현진은 요가와 명상을 즐기며, 글쓰기를 통해 명상의 효과를 내는 ‘글멍’,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글쓰기’ 등 클래스를 운영한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월요일이 무섭지 않은 내향인의 기술』을 썼고, 『Case in Point』를 우리말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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