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운선 경북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이들은 소위 MZ세대이다. 스마트폰, 인터넷, SNS, 컴퓨터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더 능숙하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고 너무 오래 고립되어 있다 보니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것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아주 짧게,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만큼 줄인 단어로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된 시대가 되었다. 제시간에 일어나고 적어도 세수하는 시늉이라도 하고 방을 대충이라도 정리하고 선생님이 지정한 시간에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은 부모 세대에서는 도무지 이 세대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모둠과 팀으로 평가하는 교수와 선생님 세대는 정작 경쟁만 강요당했고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구성원 간의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조율하는지, 의견이 다를 때 어떤 식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 의문이 들 때라도 질문하기보다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해내는 것이 익숙한 세대인 기성세대가 한 치 앞날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지금 현재에 최선으로 보이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일 년 넘게 견디어 왔다. 코로나 블루, 코로나 레드, 코로나 블랙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사진_freepik

 

코로나 시대에 학대에 대한 뉴스는 연일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전 세계에서 61번째로 아이들의 체벌을 민법으로 금지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부모들은 아이들을 야단치고 훈계하고 체벌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사람만이 유일하고도 풍부한 자원이라고 알려진 한국에서 공부를 하지 못 하면 미래가 아예 없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는 코로나19 시대의 학교에서도 내 자식이 똑바로, 열심히,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배우기를 염원한다. 자신의 말을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서 조근조근 이야기해 본 경험이 없으니 마주 대하고 앉은 밥상머리에서 어쩔 수 없이 지적을 하게 된다.

그래서 2021년 3월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진료실은 너무나 붐볐다. 이성의 뇌인 전두엽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니, 이전에 알던 것을 기억해 내는 것도, 새로운 것을 배워 뇌에 저장하는 것도, 마스크를 쓴 저 사람이 누구인지 식별하는 것도, 저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도,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도 다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공감력이 고갈되었다. 의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만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이고, 사회에서 통용되는 용어로는 소진 증후군이며, 현상적으로 이야기하면 공감의 피로이다. 한국 트라우마 스트레스 학회에서 여러 번에 걸쳐 조사한 국민들의 불안과 우울, 자살 생각을 보면 1차 유행 후 잠깐 호전되었던 불안, 우울이 다시 증가하는 양상이다. 이렇게 살 바에 차라리 죽고 싶다는 마음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돌보는 사람들이 힘들다. 의료진들, 선생님들, 엄마들, 할머니들, 교사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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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은 나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 비행기에서 응급상황이 생기면 나의 산소마스크를 먼저 쓰고 노약자들의 산소마스크를 챙기라고 한다. 그게 정답이다. 나 자신의 수면, 식욕, 운동, 마음건강, 일, 나를 즐겁게 하는 취미 생활을 우선시해야 한다. 몸이 건강해야 바이러스도 백신도 감당할 수 있으니 건강한 먹거리와 운동은 이제 필수이다. 내가 여유로워야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 내지 않고 웃으면서 대할 수 있다. 긍정적인 면을 보는 연습을 이 참에 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긍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그 면을 바라볼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내 능력과 결정에 달려 있다. 제대로 의사소통하는 능력, 디지털을 다루는 능력, 갈등이 있을 때 협상하는 능력을 이 참에 익히고 배우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불안, 우울, 공포가 있을 땐 우리가 감정의 뇌에 먼저 에너지를 공급하고 이성의 뇌는 그다음 순서이다. 산에 가면 휴대폰 배터리가 빨리 소모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불안 우울은 줄여야 한다. 혼자서 안 되면 전문적인 도움을 구해야 한다. 도움을 구하는 것이 능력이다.

그럼 지도자들은 누구를 먼저 도울 것인가? 어릴 적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먼저 식별해야 한다. 정서 학대, 성학대, 신체 학대, 방임을 겪은 어른들은 이런 재난 시기에 더욱 고립되기 마련이다. 이 사람들을 먼저 선별하여 도움을 주어야 한다. 돌봄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은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뿐 아니라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에 내려진 공통의 숙제이다. 함께 힘을 합쳐 보자. 서로 지지라고 연대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면 2022년 3월에는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다시 한가해질 수 있을 거라 희망을 가져본다.

 

<본 칼럼은 경북대동창회보에 기고되어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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