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동물과 식물의 집사 되기

나는 강아지 두 마리와 최근 들어 세어본 적은 없지만 어림잡아 300여 개의 식물이 있는 집에서 이른바 ’집사’ 노릇을 하며 살고 있다. 내가 책임지고 있는 생명체는 크게는 내 책임 아래 있고, 그들의 건강과 안위는 나의 매우 큰 과제이다. 강아지 두 마리는 깊은 인연으로 만나 식구가 되었다. 한 아이는 ‘하루’이다. 스피츠이고 암컷이다. 생김새가 여우같이 생겼는데, 하는 행동도 여우같이 사람을 홀린다. 추측해보기론 이전 집에서 고양이와 살지 않았나 싶은 몇몇 특성을 갖고 있다. 다른 한 아이는 ‘생강’이이다. 요크셔테리어이고 수컷이다. 워낙 작은 요크셔테리어들이 많아서 비교하자면 다부진 체격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작다. 용맹하고, 우리 집안의 경찰 노릇을 한다. 나이가 많아 식구들에게 ‘어르신’ 소리를 듣곤 한다.

 

 

처음에 식물이 집안에 들어올 때는 강아지들이 검역관 노릇을 했다. 식물을 일일이 냄새 맡고, 별 문제가 없다 싶으면(호기심이 떨어지면) 휙 돌아서 갔다. 최근 들어서는 그것도 시큰둥 한지 각자 집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하루는 종종 베란다 냄새를 맡곤 한다.

고무나무의 경우 자연스럽게 하엽이 지는 경우를 제외하고, 억지로 잎을 떼어내면 하얀 진액이 나온다. 이 진액은 사람에게도 피부 발진을 일으키는 등 자극적이지만, 강아지들에게는 심각한 알러지를 유발할 수 있다. 휘커스(Ficus)는 고무나무라는 뜻인데 휘커스들은 대개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흰 진액이 나온다. 대개는 만약을 대비해 베란다에서 키우고 있다. 튤립과 백합과에 해당하는 식물은 향기만으로도 강아지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진 않지만, 고양이는 그루밍을 하기 때문에 몸에 남은 향과 가루를 입으로 섭취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가급적 아무리 안전한 범용 살충제여도 스프레이형으로 사용하면, 기화되는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또한 털에 액체가 소량 덮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기를 권하고 있다. 고양이는 수직 이동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식물을 높게 올려 둔다고 안전하다고 할 수도 없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조금 예민하고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좋다. 고양이는 반복적으로 흔들리는 것에 흥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큰 잎을 가지고 노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동거인의 본가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별로 가버린 일이 있었다. 오랜 기간 투병을 했고, 그래도 씩씩하게 오래 버텨줬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한들 생명을 가진 존재를 잃는다는 것은, 당장 어떤 날에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반려동물을 하늘로 보내 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평생, 단연코 잊을 수 없는 존재가 항상 가슴속에 있다는 것을.

일상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큰 슬픔이지만 주저앉아 울기만 할 시간은 동거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매우 고통스러워했고, 어떤 식으로든 이겨내고자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식물에 별 관심도 없던 그녀가 식물 가게를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차분히 가게를 둘러봤다. 그리고 멋지게 생긴 알로에 하나를 집어냈다. ‘딴지’라는 강아지 이름과 하늘로 간 날짜를 새겨, 되는 데까지 키워본다는 것이었다. ‘알로에는 수명이 얼마나 됐지?’ 하는 걱정과 동시에 ‘내가 알로에를 잘 키운 적이 있었나?’하는 걱정으로 번져 나갈 때쯤 이미 알로에는 포장되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는 영원히 딴지가 존재하겠지만, 극복을 해 나가는 과정을 보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식물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좌절에 휩싸여 있거나, 술로 버티거나, 생활을 망치지 않고 버텨 나가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추모를 하고 있었다. 

 

 

새로운 동물 가족이 생기면서, 이 친구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반복한다. 식물을 들이고, 수많은 생명을 다루면서 이들에게도 나의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반복한다. 무엇이든 내가 잘하면 된다. 내가 최선을 다하면 모든 것들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이 부담이 일정 부분 나를 힘들게 하는 면이 있지만, 한 켠으로는 나에게 에너지를 줄 때도 있다. 침대 한편에 널브러져 있을 때에도 ‘강아지들 밥을 줘야 해, 식물들 물을 줘야 해.’, ’내가 주지 않으면 저들은 꼼짝없이 굶어.’ 하고 일어나게 되고, 어떤 때에는 일어난 김에 나도 밥을 챙겨 먹기도 한다. 그들은 나를 여지없이 집사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내가 살아가게 돕기도 한다.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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