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나는 이제 참지 않아 – 세설

나는 참는 것에 능하다. 

무엇보다 고통을 참는 것에 능하다. 아기 때는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는 희한한 아기였다고 했다. 어린이가 되어 아동학대의 현장에서 아주 잘 견뎌냈고, 청소년이 되어서 심지어 맹장수술이 13시간이나 지연되었을 때도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리며 ‘다녀올게요.’라고 웃었다고 한다. 

또 슬픔을 참는 것에도 능하다. 

아주 큰 슬픔과 위기가 다가와도 우선 참는다. 머리가 차가워지고, 빠르게 회전한다. 참고 우선 상황 전반을 파악하자는 결론을 내린다. 그 과정에서 모욕이 느껴지더라도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눈물은 후에 흘려도 늦지 않다. 우선해야 할 것과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을 빠르게 파악한다. 내가 손해를 봐야 할 (책임져야 할) 부분을 파악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러다 보니 나의 감정은 큰 돌덩이가 되어버렸다.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하고, 실패와 좌절을 참는 법만 알고 해소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 나 자신을 정당하게 보호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나를 보호하는 장치를 모르니, 나에게 상처를 주고자 하는 자들에게 나는 상처 입히기 아주 쉬운 먹잇감이 되어버렸다. 비무장 상태에서 나는 상처를 입고, 참고 또 참아야 했다. 그러는 사이 내 마음은 닳고, 낡고, 치쳐가고 있었다. 

 

식물 중에 세설이라는 식물이 있다. 아가베 중 하나이다. 

 

 

 

위 사진처럼 매우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가지 끝에 뾰족한 침이 달려있다. 꽤나 굵고 뾰족하고 단단하다. 작은 식물이라는 게 원체 부들거리는 면이 있어서 가위로도 쉽게 잘리고, 연약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세설은 만만하지가 않다. 

가지 끝의 침에 찔리면 꽤나 아프다. 따끔한 정도가 아니다. ‘억’하는 소리가 마음속과 밖으로 동시에 일어난다. 농담이 아니다. 읽는 여러분은 되도록 겪지 않길 바란다. 

이런 일은 세설 주변의 식물에 물을 주면서 어쩔 수 없이, 왕왕 겪게 되는데 그 순간마다 처음 겪는 일인 것만 같고,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아프다. 동시에 손가락에서는 굵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덕분에 세설을 직접 만져보는 일은 거의 없다. 세설 스스로 자신을 잘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나는 나를 잘 보호하고 있는가 돌이켜 보게 된다. ‘나에게는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어떤 장치가 있는가.’ ‘나를 변호할 수 있는 어떤 변명과 핑계의 말이 준비되어 있는가.’ 하는 것들이다. 

나를 해하려는 자들에게 굵은 핏방울을 뚝뚝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의 날카로운 방어를 세워야 한다. 언제 까지고 나를 갉아가며 참기만 할 수는 없다. 주사를 찌르면 아프고, 아픈 말을 들으면 상처 받는 것이 사람이다. 그것을 순순히 인정하고 이제는 나를 보호하는 준비를 해 나가야 한다.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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