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바람, 바람, 바람. - 바람의 소중함

‘바람’하면 나는 가수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생각이 난다. 가만 듣다 보면 바람의 형태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사람에게, 사랑에 바람은 이런 역할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떠다닌다. 

 

식물에게는 햇살, 물, 토양, 그리고 바람이 꼭 필요하다. 식물이 바람에 떠밀리는 것을 본 적 있는가? 큰 나무가 멋들어지게 흔들리는 것 말고, 가엽게 생긴 식물 한 자루가 강력한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자면 식물이 약자가 된 것 같아 짠하고 구조해 주고 싶은 마음이 쓰인다. 그때 바람은 식물에게 시련인 것이다. 하지만 그냥 바람에 둔다. ‘이렇게 많이 필요한 건 아니었어.’라고 악 지르겠지만, 그것 또한 그 식물의 몫이다. 

 

 

식물에게 바람이 필요한 이유는 ‘통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가지가 흔들리면서 잎이 흔들리고 그러면서 식물 전체에 흔들림이 온다. 그러면 물을 준 땅에도 바람이 분다. 줄기, 잎, 토양에도 바람이 통하면서 전체적인 통기가 가능해진다. 그러면서 곰팡이나 응애와 같은 병충해가 예방된다. 

 

다음 이유는 ‘성장’이다. 시련을 겪어야 성장을 한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고리타분하게 된 이유가 있다. 맞는 이야기이다 보니, 자꾸 그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식물이 자랄수록 목질화* 되는 경우가 있다. 실내에 두어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바깥바람을 맞을수록 목질화는 심화된다. 학계의 이론에는 없다. 그저 내 경험상의 이론일 뿐이다. 방크샤 애뮬라나 유칼립투스의 경우 절대 꺾이지 않으면서 바람에 유연하게 휘는데, 그러면서 흙과 만나지는 부분에 혹처럼 두터운 물통이 생긴다. 그것이 두텁고 동그란 모양에 따라 건강함을 따지기도 한다. 

 

다음 이유는 ‘빛의 분산’이다. 한 여름철의 직광을 고요히 계속 받으면 어떤 식물이나 타기 마련이다. 빛을 고루 분배하고 적당히 식히기 위해서는 바람만 한 게 없다. 그래도 잎이 타 들어간다면, 물이 부족하거나 식물을 반그늘로 옮겨주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번식’이다. 쉽게 민들레를 생각하면 좋다. 민들레 씨를 날리기 위해선 어린이의 호기심이나 바람이 필요하다. 고사리 같은 경우는 밑 부분에 포자가 생성된다. 이 부분이 그냥 그 근방에 퍼지기도 하고, 바람의 힘으로 날리기도 한다. 식물에게 번식이란 동물에게만큼 간절한 것인데, 동물에 비해 수동적인 만큼 바람이나 곤충에 의지하여 번식할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 

 

바람. 흔하게 불고, 한여름에 불지 않으면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땀이 주르륵 흐르는 귀한 존재. 

사람에게도 흔한 시련이 있고, 겪지 않았어도 될 만큼 아픈 시련이 있다. 종종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삶이 내 던져져도, 소용이 있을 것이다. 모두 자양분으로 돌아올 것이다. 

5년, 10년 전만 해도 지금의 내가 여기에 머물러 있을 거라고 장담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목표를 정해두고 그것을 달성한 이라면 마음을 다해 축하를 보낸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도 큰 상처를 받을 필요는 없다. 당장은 심장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죽음만이 답인 것처럼 기다리게 되지만,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면, 그렇게 소용 있는 하루를 보내다 보면, 인생은 어떻게 흐를지, 바람은 또 나를 어디에 놓아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에 나는 인생이 무섭고, 흥미롭고 그렇기에 성실하게 된다. 

정성스러운 하루를 보낸 이를 아무 소용이 없는 바람에 던져두진 않을 것이라고. 나는 그것을 강하게 믿는다. 

 

*목질화 : 식물의 성숙 과정에 있어서 세포막과 중간층에 리그닌이 생성, 침전 흡착을 하는 경우에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현상으로 목질화, 리그닌화라고도 한다.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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