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식물의 무늬에 대한 생각

날씨가 심상치 않다. 계절과 계절 사이, 이제는 이름을 붙여줘야 할 만큼 길게 엉뚱한 계절이 왔다 간다. 기후변화 탓에 초여름에 가을을 보기도 한다. 그러면 식물들도 주춤하곤 한다. 하지만 긴 기록 속 여름을 기억한 그들은 이제 식물들이 제 자리를 찾아 앉는다. 풍성하게 커갈 일만 남았다. 내 책상 자리에 앉아 발코니와 실내 배치된 실물을 보고 있자면, ‘제 때를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위대한 일이구나’싶다. 

오픈한 상점 홍보용 풍선인형처럼 흔들릴지 언정 부러지지는 않는 멋진 유칼립투스부터, 강한 해를 맞고도 멋지게 색을 내는 부겐베리아. 노지가 딱 자기 자리라며 좋아하는 로즈마리까지 바깥자리를 실컷 누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베란다 있는 집까지 이사 온 나 자신이 한껏 독립 와중에도 조금 성공한 것만 같고 그렇다. 

 

발코니 내에는 조금 덜 해를 받아도 되는 식물들이 위치한다. 마음껏 해를 받아도 되지만, 어쩐지 실내에 있는 올리브나무와 각종 다육식물, 신나게 자라라고 둔 소철과 바로크 벤자민 등이 여기에 있다. 선반식으로 된 가구를 좌르륵 둘러 켜켜이 퍼즐맞춤을 해 두었는데, 그러다 보면 빛이 조금 덜 필요한 식물, 더 필요한 식물, 물을 자주 주는 식물 조금 덜 그런 식물들로 앞뒤를 맞추곤 한다. 그런 식물들끼리 묶어둔 건 또 아니라서, 아침마다 물을 줄 때 한 바퀴 천천히 돌아봐야 한다. 물을 막 부어주다가 넘친 흙을 다시 토닥여주고, 매일 물을 달라고 조르는 바깥 식물들에게 물을 마구 퍼주다 보면 한 시간은 금방 지나고 만다. 

나는 식물을 어화둥둥 하며 키우는 편은 아닌데, 이때 어와둥둥은 흙의 미세한 조건, 딱딱 때에 맞춰주는 알맞은 물, 조금이라도 색이 변하면 안절부절못하며 이유를 찾는 성실함이 더해져 매우 부지런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나는 조금 둔 한 편이라 하엽(지는 잎)도 자주 보고, 잎을 태우기도 하며, 물을 넘치게 주거나 모자라게 줘서 죽이는 일도 왕왕 있다. 

 

무늬싱고니움
무늬싱고니움


온화한 해를 예민한 위치에서 잘 받아야 하는 식물들 중 ‘무늬’가 들어간 아이들이 있다. 무늬몬스테라, 무늬싱고니움, 무늬아단소니, 무늬바로크벤자민, 무늬아랄리아, 필로덴드론 버킨, 무늬라벤더, 무늬산호수 등 이중에선 몇십만 원, 혹은 백만 원을 넘는 가격을 자랑하며 위상을 떨치는 식물들도 있다. 무늬가 있다는 것은 보통, 초록 잎 베이스에 흰 무늬가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무늬 몬스테라 같은 경우, 흔한 몬스테라는 거대하고 구멍이 송송, 잎이 찢어진 초록 잎이 유명하다. 여기에 흰색 물감으로 칠한 듯한 무늬가 들어간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워 보이겠는가. 흰 부분이 많을수록 귀하고 예뻐 보이기 마련이다. 다만 치명적인 부분은 흰 무늬 부분은 광합성을 못한다는 것이다. 쉽게 해에 타기도 한다. 이를 조절하기 위해서 집에 드는 해의 하루 일대기를 파악하고(주말 하루 집에서 뒹굴뒹굴하면 금방 파악이 된다) 그에 알맞은 자리를 찾아준다. 

 

무늬몬스테라
무늬몬스테라

 

무늬보스턴 고사리의 경우도 애매하다. 이 식물은 해를 받아야 무늬가 발현이 잘 되는데, 새 싹이 나면서부터 적당히 해를 쬐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식물 자체가 고사리다 보니 해를 좋아하는 식물이 아니다. (대부분의 고사리는 음지식물이다) 그러니 고사리치고 해를 받을 수 있는, 묘한 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무늬보스턴고사리
무늬보스턴고사리

 

대부분의 식물은 관상용이다. 물론 나도 바질과 루꼴라를 키우고 있지만, 쑥쑥 크는 모습만으로도 기쁨이 되어준다. 기왕지사 관상용인 것, 더 예쁘고 특이한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모두 같다. 무늬는 변이체이니 귀하고, 찾는 사람은 많다. 그러니 많은 무늬체 식물들은 일반 잎 보다 가격이 훨씬 비싼 경우가 많다. 그러니 식물을 들여오면 그 귀함과 가격을 생각해서라도 더 귀하게 대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식물을 마구마구 키운다고 고백한 나도 무늬종은 조금 가지고 있다. 가격을 생각해서라도 푹푹 자라주고, 건강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은 마음이다. 그런 생각이 한 번 들고나면, 속물이 된 것만 같아 ‘엣헴’하고 나머지 식물들을 둘러본다. 예쁘다. 모두 예쁘다. 무늬가 없는 싱고니움도 무늬가 화려한 싱고니움도 예쁘다. 그리고 우리 집에 온 이상 스스로 튼튼히 자라줘야 하는 어려운 미션도 있다. 

 

어쩌면 요즘은 무늬종에 대한 과열현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의 열정과 돈이 뒷받침이 못되어주는지 나는 그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무늬가 한방울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식물은 무엇이 되었든 귀하고 비싸게 판매한다. 그리고 아주, 빠른 속도로 판매된다. 그리고 이 사이클은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 점점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가격을 버거워하면서도 이를 사들인다. 

식물을 사랑하는 나도 이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예쁜 식물은 내 집에, 내 눈앞에 두고 봐야 하는 것. 그 마음과 초조함을 누구보다 알고 있다. 다만 그 식물을 들임으로 인해 충분히 식물로서 즐길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들이고도 어쩔 줄 몰라하며, 다른 식물은 안중에도 없을 만큼 과열된 상태라면 내가 어떤 것에 몰입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비판이 아니다. 이것은 순수한 염려다. 아스팔트 사이에 껴서도, 베어진 나무에서도 다시 자라나는 식물을 보며, 식물의 생명력에 찬사를 보내는 순수한 마음에서 얼마나 빗겨 나갔는지 스스로 체크해봐야 할 일이다. 

 

이 오지랖이 당신에게 불쾌함을 주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무늬와 구멍의 개수로 가격이 오른 것을 사들임으로써 당신이 행복하다면 나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 무늬종을 못 사서 울적한 당신에게 염려의 말을 건넨다. 나도 그랬으니 그 마음은 잘 안다. 그런데 마음의 문제였다. 내 마음이 과열되었다가 식는 그 사이 식물은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 내 마음의 문제였던 것이 맞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식물이 주는 그 특별한 위로를 알고 있을 당신에게 나는 괜찮다고 한마디 얹고 싶다. 화려하고 비싼 무늬 종, 변이종이 없어도 식물은 충분히 당신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내 곁의 식물이 가진 잎맥과, 그 잎의 흔들림과, 가지의 곡선을 편안하게 바라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식물이 새 계절을 맞이해 얼마나 달라졌는지, 느껴보길 바란다. 그 식물을 들였을 때의 기쁨을 온전히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길 바라며, 오지랖은 그만 마치겠다.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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