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식물 좋아하는 1인 가족의 가정의 달 보내기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제기랄, 나는 어버이날 가출했다. 이런 나에게 가정의 달 이란 흡사 나라에서 나를 훈육하는 느낌이다. 귀엽게 어린이 날로 시작해서, 묘하게 부부의 날로 마무리하는, 나라에서 정한 ‘가정의 달’ 이때 가정이란 3-4인 기준 정상적인 성인남녀와 그 자녀를 뜻하는 말이다. 정말 현실적이지가 않다, 나에게는. 

단전으로부터 올라오는 강한 반발심을 장착하고, 4월부터 기다렸다는 듯 식물을 산다. 절화도 산다. 이제는 절화를 택배 주문하는 방법까지 알아서 더 산다. 바다의 날(31일)만을 기다리며 5월을 버틴다. 

 

나는 1인 가구다. 살아가는 것은 2인의 동거인을 두고 있지만, 등본상으로 1인이다. 1인 가족에게 가정이란, 나와 함께 살아주는 내가 선택한 식구를 말한다. 나는 2인의 인간과 2견을 두고 있는 나까지 다섯 생명체의 가정의 가장이다. 굵직한 선택은 상의를 하지만 자잘한 선택들은 모두 나를 믿고 따라준다. 30여 년 만에 가장은 나도 처음이다. 그렇다 보니 실수가 왕왕 있다. 내가 선택한 가구원들은(그리고 나를 선택해준 가구원들은) 나를 질책하기보다 ‘그럴 수 있다.’를 입에 달고 산다. 정말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가 위로가 되는 순간이 많다. 

 

카네이션
카네이션

 

카네이션. 정말 멋진 꽃이다. 금방 흐물거리거나 휘어지지 않고, 꾸준히 물 올림도 잘되고 색도 요새는 천차만별이다. 그냥 예뻐서, 시장에 많이 풀려서 화병에 꽂아본다. 아···, 너무 자만했다. 볼 때마다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실패다. 

나는 아직도 내가 집을 나와야 했던 그 일련의 일들을 계속 곱씹는다. ‘만약 내가 그렇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이렇게 했다면’, 등등 상상은 더 큰 상상을 불러온다. 그런다고 변하는 것은 없지만,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이렇게 부질없는 생각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후회한다는 말은 아니다. 두 번 말해서 강조해야겠다. 나는 그날 밤, 나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캄파눌라(bellflower)
캄파눌라(bellflower)
부겐베리아 (=부겐빌리아, papaerflower)
부겐베리아 (=부겐빌리아, papaerflower)

 

카네이션에 실패한 나는 캄파눌라를 산다. 호롱불처럼 생긴 이 꽃은 살 때 쉽게 시들어 보여도, 물에 꽂으면 금세 호롱불처럼 동그랗게 피어난다. 그다음 부겐베리아를 산다. 커다란 부겐베리아를 보며 몇 주 침을 흘렸는데, 사장님이 내가 그 나무를 몰래 들고 갈까 봐 걱정하셨는지, 작은 부겐베리아를 들여서 파셨다. 꽃 속에 꽃인지, 잎 속에 꽃인지 모를 생김새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다.

 

큰 잎 아디아텀 (adiatum macrophyllum leaf maidenhair)
큰 잎 아디아텀 (adiatum macrophyllum leaf maidenhair)

 

금세 흔해질는지, 큰 잎 아디아텀이 나와줬다. 냉큼 산다. 새 잎이 인디 핑크 생으로 좌르륵 펼쳐지는데, 낙엽이 지는 것도 아니고, 새 잎에 빛을 조금 주면 이렇게 냉큼 핑크 색으로 새 잎이 나와 준다. 식물을 샀는데, 꽃나무를 산 듯한 효과가 있다. 

 

불두화(佛頭花) 수국
불두화(佛頭花) 수국

 

불두화나무를 산다. 수국 종류 중에 목단 수국 그중에 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불두화가 있다. 생김새가 부처님 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불두화인데, 나중에는 가지 대비 꽃의 무게가 더 무거워져 고개를 푹 숙인다. 한 송이씩 뜯어다 화병에 꽂으면 활짝 피어 이 삼일 버텨준다. 

 

 

라일락을 산다. 초대형 나무는 아니지만, 중·대형 라일락을 샀다. 수 없이 많은 꽃망울에서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모두가 피어나는 라일락, 그 향기가 나를 치유한다. 당신도 치유할 것이다. 꽃 알레르기가 있지 않는 이상, 공기 중에 라일락 향이 살짝 불어오면 어디에서 이 향이 온 것인 지 슬쩍 둘러보게 만드는 것이 라일락향이다. 

가정을 전부 ‘성인 남녀로 이루어진 결합과 그 들의 자녀 1인 이상’만으로 정한다면, 정말 유감이다. 세상엔, 그리고 우리 주변엔 말로 설명하기 때로 귀찮을 만큼 수많은 사연을 가진 가족 결합 형태가 많다. 예를 드는 것을 포기하겠다. 쓸데없이 논쟁거리나 던져주는 것 같아 싫다. 누구에게 옳다, 그르다를 평가받기 위해 실험 삼아 가정을 꾸려 사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나의 1인을 현재 누구와 결합하여 살아갈지를 신중하게 나 스스로가 정했다. 그렇기에 책임은 모두 내 앞으로 되어있으며, 그것은 국가나, 전통에서 껴안는 ‘가정’의 무게 못지않다고 자신할 수 있다. 삶은 누구나 하나씩 있으며 그것을 간수하고, 모험하며 살아가는 것은 다 똑같은 무게를 가지니까. 

 

5월이 우울한, 아니 적어도 유쾌하지만은 않은, 비제도권의 다양한 형태의 가정들이, 카네이션과 장미보다 더 다양한 꽃과 식물이 있음을 인지하고 누리며, 살아가길 바란다. 꼭, 카네이션이 아니라도 꽃은, 식물은 아름답고 멋지지 않은가. 우리도 그러하다, 그러하길 바란다.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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