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원의 ‘직장 남녀를 위한 오피스 119’ (24)

[정신의학신문 : 민트 정신과, 조장원 전문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

이 팀장은 요즘 고민이 많다. 회사 일에 통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다. 작년에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맡게 된 새로운 부서 일이 여간해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예전에는 일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매달린 적도 있었고, 성취감도 많이 맛봤으며, 팀원들과 격의 없이 의기투합하며 지내기도 했는데, 지금 부서에서는 그런 걸 전혀 느낄 수 없다. 습관적으로 출근하고 정해진 대로 일하다가 시간이 되면 퇴근하기 바쁘다. 팀장으로서 팀원들을 잘 챙겨야 하지만, 내 코가 석 자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 점점 의기소침해지는 자기 자신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전 부서는 홍보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 부서였고, 현재 부서는 블루오션을 개척해서 영업망을 구축하는 업무를 추진하는 부서다. 번뜩이는 창의력이 강조되었던 지난 부서와 달리 지금은 구체적인 실적과 성과가 강조되는 부서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고 과정이 알차게 진행되었어도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수치에 약한 이 팀장으로서는 회사에서 기대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때가 많아 출근만 하면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팀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전가하거나 성과를 더 올리라고 닦달하기도 탐탁지 않다.

 

사진_pexel
사진_pexel

 

이 팀장은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내성적인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영업을 잘하려면 좀 저돌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어야 하는데, 본인은 워낙 차분하고 신중한 편이라 잘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른 영업 팀장들은 나름의 비법을 가지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이 팀장 부서의 팀원 중에도 영업이 체질인 것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직원이 있다.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그 사람이 팀장 같고 자기는 그 밑에서 일하는 팀원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때마다 자신이 한심하고 바보 같아 괴롭다. 팀원들이 팀장인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는지도 두렵다.

이런 생각으로 회사에 다니다 보니 불편한 것만 눈에 띈다. 직원을 실적 올리는 기계처럼 취급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제대로 지원도 해주지 않으면서 최상의 결과만 기대하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상사의 부당한 지시와 압박에 이렇다 할 변명조차 하지 않는 직원들도 보기가 싫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갈수록 더 나빠질 것 같은 예감이다. 자신의 앞날을 떠올리면 답답하고 짜증만 난다.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한편으로는 우울한 감정이 수시로 교차한다. 휴게실에서 커피 한 잔 마실 때면 늘 이런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이렇게 다녀야 하지? 아, 차라리 그냥 회사를 그만둘까?’

 

위의 사례처럼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 자신의 세계(주로 주변 인물들), 미래 이 세 가지 인지 요소(cognitive triad)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첫째, 자신(self)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를 항상 부족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결점을 계속해서 확인하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비난한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분노가 생겨났을 경우, 이를 자신에게 돌린다. 자신을 탓하며 미워하게 된다.

둘째, 세계(world)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변이 자신을 괴롭히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주변 사람들도 자신을 위한 사람들이 아닌 것 같다고 느낀다. 점점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게 꺼려진다. 회사나 가족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으로 변해 버려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다.

셋째, 미래(future)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까닭에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과 시련이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것만 같다. 오히려 더 심해질지도 몰라 불안하다. 앞으로 벌어질 일의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극단적인 결과만 바라보기에 아무런 기대도 흥미도 잃게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중요한 결정을 뒤로 미루라고 조언한다. 자신과 세계와 미래에 관해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좋은 방향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리리라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부서 일에 적응하지 못해 퇴사를 고민하는 이 팀장 역시 회사를 그만둔다든지 하는 중차대한 결정을 조급히 내려서는 안 된다. 증상의 정도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보통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의 경우, 성급하게 잘못된 결정을 하는 사례가 많다. 이런 섣부른 결정을 내림으로써 도리어 우울감이 악화하거나 재발할 수도 있다.

일단 중요한 결정을 뒤로 미룬 후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공유하고 상의하는 게 좋다. 우울할 때는 자신을 믿고 응원해주는 지지체계(supportive system)가 중요하다. 지지체계란 개인의 정서나 심리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부정적인 요소들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는 주변의 체계를 말한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족, 친구, 동료, 이웃 등이다. 우울증에 빠지면 남들을 믿지 못해 혼자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되도록 삼가야 한다.

 

사진_pe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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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힘든 상황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할 때도 있다. 우울 증상이 아주 심한 경우다.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빨리 수영해서 나오라고, 할 수 있는 헤엄을 총동원해 어서 빠져나오라고 아무리 소리쳐 봐야 헛일이다. 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책을 기대하거나 주문하는 건 쓸모없는 일이다.

일단 물에서 건져내야 한다. 구명 튜브를 던져주든지, 구조 전문가가 투입되는지 해서 외부의 힘으로 살려내야 한다. 물에 빠진 사람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물속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불안감과 우울증으로 회사생활이 곤란하고, 점점 좋지 않은 생각에 사로잡히며, 퇴사를 고려할 정도가 되었다면, 일단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전문의와 상담 치료를 해보는 게 좋다. 가볍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에 스스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약물을 복용하면서 증상이 호전되면 같은 상황이더라도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가 있다. 병가를 내서 일정 기간 쉬면서 심신의 안정을 취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회사에 자신의 상태를 알릴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회사에서 불안감과 우울증을 덜 느낄 수 있는 다른 부서로 근무지를 이동시켜 줌으로써 다시 좋아지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이 팀장의 경우 실적과 성과에 대한 과도한 압박감과 책임감이 우울증을 유발한 사례이므로, 즐겁게 일하면서 성취감을 맛봤던 이전 부서나 비슷한 환경의 다른 팀으로 옮긴다면 차츰 좋아질 것이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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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민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나를 지키는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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