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홍대 서울 숲 정신과, 염태성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초반 여자입니다.

최근 들어 너무 지쳐요. 그냥 이젠 정말 끝까지 왔다고 생각이 들면서 지쳤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또래와 같이 대학교에 가지 않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다 지금은 사무직으로 취업해있어요.

저는 중학교 때 교통사고로 갑자기 아버지를 잃고 1년 동안 제 옆에서 아버지 역할을 해주시던 제가 정말 믿고 의지하던 외삼촌까지 잃었어요. 그 순간부터 저는 이 세상에 의지할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들며 방황하던 중학교 생활을 보냈어요.

고등학교에 올라와서까지도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어요. 올해부터 엄마하고 사이가 다시 원만해지면서 그나마 좀 안정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또 가족 중 한 명이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그때부터 또다시 불안정한 상태예요. 제가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을 연속으로 떠나보내며 저도 모르게 우울감이 쌓여왔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는 밝은 사람이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밝고 활발한 사람인데 사실 저는 밝지도 활발하지도 않거든요. 누구보다 우울해하고 힘들고 지친 사람인데 밖에다 티를 낼 수가 없어요. 그걸로 인해서 엄마, 친구들이 걱정해하고 그러는 게 너무 싫어요. 그냥 나는 왜 더 밝게 살지 못할까 하는 죄책감 미안함만 더 커진달까요.

그냥 다 포기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최근에는 자주 아빠 곁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나 자신은 편할 테니까.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어떻게 하면 괜찮아질지, 이렇게 우울한 상태도 울면서 힘들어하며 지내고 싶지 않은데,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진_픽사베이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홍대 서울 숲 정신과 염태성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이심에도 인생에서 힘든 일들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와중에도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것이 짧은 글에서도 느껴집니다. 노력한 만큼 보상과 행복이 돌아온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세상일이라 더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환자분들을 진료하다 보면 스트레스 요인들 때문에 병원에 방문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요인 중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인 것 같습니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타인과의 교류가 과거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나면서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부딪히면서 생기는 불협화음이, 현대인들에게는 가장 큰 괴로움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가장 힘이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 질문을 드려보면, 이 역시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얻게 되는 즐거움들을 말씀하십니다. 가족들로부터 받는 위안,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느끼는 행복감, 또는 친목 모임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게 되는 즐거움입니다. 직접적인 인간관계 이외에도 소설이나 영화를 즐기는 취미도 간접적으로나마 대인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살면서 너무 큰일들이 많으셨는데, 특히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잃는 일이어서 그 괴로움이 더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힘든 감정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의지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어린 나이이시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사람들에게 의지함으로써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다행히 어머니와는 사이가 좋아지셨고 친구분들도 주변에 계시니, 힘든 모습을 조금 보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어느 정도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힘든 일이 있다고 항상 찌푸리고 일을 하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원래 내 모습과 가면 사이에 괴리가 너무 커도 문제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덜하겠지만 스스로가 너무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문제를 너무 고민하지 말고 현재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세요. 지나간 일에 대해 괴로워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행동이지만 거기에 너무 빠져 현재 할 일을 못 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가족분께서 병에 걸리신 것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냥 절망에 빠져있는 것보다는 그분을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고 그 일에 정진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성인이 막 되셨고 앞으로 살아가실 날이 정말 많이 남아있는 시기입니다. 남은 인생을 어떤 기분과 감정을 살아갈지는, 힘드시겠지만 본인이 노력하는 부분에 달려 있습니다. 또 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20대 초중반은 노력 여하에 따라 성향이나 가치관을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부디 이런 중요한 시기를 스스로가 만들어낸 우울감에 매몰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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