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의 [중독 인생을 위한 마음 처방전] (15)

[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해마다 설이나 추석 같은 큰 명절이 다가오면 정부에서 여러 가지 교통과 치안 대책 등이 발표되곤 했다. 금년 설은 엄중한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예년에 볼 수 없었던 특별한 대책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충남 태안해양경찰서에서 설 명절을 맞아 해상 수산물 절도 및 마약사범에 대한 특별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설 명절과 마약이 무슨 관계가 있기에 경찰 당국이 정색을 하고 이런 발표까지 하게 된 것일까? 명절에 소비될 각종 수산물이나 어패류 등을 수입한다는 명목으로 몰래 마약을 들여오는 사례가 빈번한 까닭에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전 세계 여러 나라가 오래전부터 마약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 왔지만, 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마약에 관한 한 청정지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정말 우리나라가 마약 안전지역일까?

예전에는 사람들의 인기를 먹고살며 환호와 비난이라는 극단의 대중심리에 시달리던 연예인들이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충동으로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았으나, 근래에는 대학생, 회사원, 주부 등 일반인들도 너무 쉽게 마약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는 실정이다.

고속도로를 지그재그로 운전하는 음주 의심 차량이 경찰에 쫓기다 붙잡혔는데, 알고 보니 해당 운전자가 음주 운전자가 아닌 마약 수배자였다는 뉴스나, 택시에 승객이 두고 내린 가방 안에서 필로폰과 헤로인 등 마약이 발견돼 경찰이 가방 주인을 긴급 체포했다는 뉴스 등은 이제 흔히 접할 수 있는 뉴스가 되었다. 유흥가나 클럽 등에서는 어렵지 않게 마약을 구할 수 있으며, 인터넷에서는 공공연하게 각종 마약류가 거래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사진_픽사베이
사진_픽사베이

 

마약(narcotics)은 오용 또는 남용하게 되면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초래되는 약물이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뇌신경세포의 기능에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정확한 용어는 ‘마약류’다. 마약은 마약류의 한 종류일 뿐이다. 건전한 이성을 마비시켜 현실을 벗어난 행동을 하게 하므로 범죄나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강한 중독성을 가지므로 이를 끊을 수 없어 돈을 마련하고자 무리를 하거나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마약류는 투여 시 의존성, 내성, 금단증상 등이 나타나는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및 대마가 해당된다. 아편, 모르핀, 코데인, 헤로인, 코카인 등 생약에서 추출한 천연마약, 페티딘, 메사돈 등 화학적으로 합성한 합성마약, 환각제, 각성제, 중추신경억제제 등 향정신성의약품 그리고 대마를 포함한 물질이다. 의료용으로 사용되는 마약은 주로 중등도 이상의 급∙만성 통증의 조절에 사용되므로 마약성 진통제라고도 한다.

 

마약류가 이토록 유해하고 위험한 물질이라면, 사람들은 왜 법을 어기면서까지 마약류를 구입해 투약하는 것일까? 본인은 물론 집안과 회사까지 황폐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마약류의 유혹을 끊어내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쾌락에의 탐닉 때문이다.

적은 양만 섭취하더라도 강력한 진통작용과 마취작용을 나타내는 게 마약이다. 예를 들면 메스암페타민과 같은 중추신경흥분제는 뇌간의 중앙에 있는 망상체에서 말초신경으로부터 노에피네프린의 방출을 증가시킨다. 노에피네프린은 신경호르몬으로 과량 분비 시 각성과 흥분을 일으킨다. 따라서 이를 투약하면 졸음과 피로감이 사라지고, 육체적 활동이 증가하며, 쾌감이나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과로해도 힘들지 않고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약효가 사라지면 깊은 허탈감이나 우울감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사용자는 쾌감을 지속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약물을 투여하려 애쓰게 된다. 모르핀이나 헤로인 등 중추신경억제제들 역시 대뇌피질 등 중추신경계의 여러 부위와 고통이 전달되는 통로인 척수 등에 존재하는 아편수용체에 결합한다. 이 결합은 통증의 전달을 차단하여 강력한 진통작용이 나타나게 하고, 특유의 쾌감을 만들어 낸다. 한 번 맛보면 계속해서 탐닉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약류에 중독된 사람이 일정 기간 마약류를 투약하지 않으면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

금단증상으로 불안하고, 쇠약감을 느끼며, 불면증에 시달린다. 심하면 간질발작, 섬망, 쇼크도 나타날 수 있다. 무엇보다 투약했을 때 느꼈던 강력한 쾌락, 즉 흥분 상태나 무감각을 갈망하는 마음이 갈수록 커져 견딜 수 없게 된다. 불행한 현재를 벗어나 행복한 그때로 빨리 되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갖은 수를 써서 마약류를 구해 섭취하면 일시적으로 쾌락을 유지할 수 있지만,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음습한 곳에서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사용할 경우, 에이즈나 간염 등 혈액접촉성 유행병이 전파될 가능성도 있다.

 

의학계에서는 마약류를 치료 목적이 아닌 기호용으로, 즉 쾌락을 목적으로 사용했을 경우, 치명적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경고해 왔다. 특히 젊은 대마초 중독자가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젊은 사람보다 뇌졸중 같은 혈관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많은 연구 결과로도 뒷받침된다. 대마초를 담배나 전자담배와 함께 사용하면 위험은 더욱 증가한다. 연례 미국심장협회에서는 대마초 사용이 심혈관질환 위험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와 젊은 세대의 대마초 사용이 뇌졸중의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 그리핀메모리얼병원의 리킨쿠마르 파텔 교수는 대마초를 사용하면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진다고 경고했다. 적은 양의 대마초를 사용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많은 양의 대마초를 사용하면 심장 박동이 지나치게 느려진다는 것이다. 심장 박동은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미국 버지니아 주 조지메이슨대학의 타랑 파레크 박사는 젊은 대마초 사용자들은 뇌졸중 위험이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전문의들이 환자에게 대마초 사용 여부에 대해 묻고 잠재적인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_픽사베이
사진_픽사베이

 

한국에서 마약을 사고팔거나 투약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모든 거래와 투약이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자신이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나 처벌은 잠시뿐이다. 마약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자신과 가족 모두의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엄중히 인식해야 한다. ‘마약 흡입→ 발각→ 처벌→ 잠시 뉘우침→ 쾌락 탐닉→ 마약 흡입→ 발각→ 처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마약류 청정지대가 아니다.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고, 미래가 불투명해지면서 마약류에 의존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9년 마약류 사범은 역대 최다인 1만 6044명으로 집계되었고, 투약 사범도 전년 대비 32.9%나 증가했다. 마약류는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다. 중독자를 찾아내 처벌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들을 치료하고 재활해 건강하게 사회에 복귀시킬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마약 중독자는 인생에 고난과 위기가 찾아오면 이를 직면하기보다는 자신의 힘든 감정을 마약을 통해 달래고 잊으려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조그만 힘든 일이 있거나, 불편한 감정이 생기면 마약, 즉 현실을 잊어버릴 수 있는 쾌락의 세계에 기대는 버릇이 들게 된다. 마약 중독자의 정신세계는 마약으로 인해 철저히 통제되고 조정된다. 마약의 화학물질 중에는 뇌에 있는 일정 물질을 비정상적으로 분포시키기 때문에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현실로부터 차단하거나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변질시켜 버린다. 혼자만의 힘으로 여기서 탈출하기는 어렵다. 본인은 물론 가족의 도움으로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치료에 임해야 한다.

 

쾌락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일상의 행복이다. 쾌락 추구는 현실 도피와 맞닿아 있지만, 행복 추구는 현실 직면과 맞닿아 있다. 미국의 로버트 N. 프록터 박사는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원제: Packaged Pleasures)』에서 이렇게 조언한다.

“쾌락을 만드는 사람들은 만족의 즉각적인 전달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사실상 행복을 방해합니다. …… 행복은 쾌락을 자주 주입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고 계획하고 노력함으로써 만족을 얻어내는, 더 연장된 시간 동안의 관여에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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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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