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충류 뇌와 인간 뇌의 싸움

[정신의학신문 아이나래 소아정신과 원장 이주현]

사진 픽사베이

 

"아이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부모님들마다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나마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당연한 대답은

 

"인간성이 좋은 사람으로 자라주길 바란다."가 아닐까 싶다.

 

이때 "인간성"이 좋다는 것에는 다양한 덕목이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는 "사회성"도 그 속에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그런 "사회성"의 기본은 무엇일까?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자라는 도상에 있는 아이들은 더 완벽하지 않다.
그러기에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잘못을 할 수도 있다.

 

“그때”  바로 그때

 

"쿨하게 인정하고 사과하고 다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능력"이
사회성의 기본이 아닐까?

 

화를 낸 뒤에 뒷수습을 못하고 그 관계에서 도망칠 때
그 아이는 고립되고 불통이 된다.
겉으로는 멀쩡한 척해도

혼자서 두려워하고 슬퍼하고 고통받는다.

 

사람의 뇌는 크게 세 층
-파충류뇌(본능뇌), 포유류뇌(감정뇌), 인간뇌(이성뇌)으로 구성되어있다.

(인간뇌 = 대뇌피질, 포유류뇌 = 변연계, 파충류뇌 = 뇌간)

 

 

[파충류뇌(본능뇌)는 가장 안쪽에 있고 오래된 뇌로 거의 진화가 되지 않았다. 파충류뇌를 지녔다는 점에서는 인간도 다른 모든 척추동물과 같다. 파충류뇌는 생존 본능 을 위한 행동을 자극하고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본적인 신체 기능을 조절한다.
- 배고픔, 소화 배변, 호흡, 순환, 체온 조절, 움직임, 자세, 균형, 영역 본능, 싸우기 아니면 도망치기 반응

포유류뇌(감정뇌)는 '대뇌변연계'라고도 알려져 있다. 침팬지 등 다른 포유류들과 유사한 화학 체계와 구조를 지녔다. 이성뇌로 다스려야 하는 강한 감정을 유발한다. 원시적인 '싸우기 아니면 도망치기' 충동을 제어하기도 한다. 다음과 같은 감정과 욕구 를 활성화한다.
- 분노, 두려움, 분리불안, 돌봄과 보살핌, 사회적 유대, 놀이성, 모험 충동, 성인의 정욕

인간은 침팬지에 비해 확실히 앞짱구로 전두엽이 크고 발달되어 있다.

인간뇌 (이성뇌, 전두엽)는 '신피질'이라고도 한다. 뇌에서 가장 진화한 부분으로, 전체 뇌의 약 85%를 차지하며 오래된 포유류뇌와 파충류뇌를 감싸고 있다. 부모의 자상하고 세심한 보살핌이 가장 분명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고, 상황을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고 타인과 교류, 협력하는 일을 담당한다.

우리가 육체나 심리적으로 위협을 느끼면 파충류뇌와 포유류뇌의 충동이 이성뇌의 기능을 무력화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겁먹은 동물처럼 행동하게 된다. 충동적인 '싸우기 아니면 도망치기' 반응을 일으켜 벌컥 화를 내며 덤벼들거나 반대로 잔뜩 움츠러드는 것이다.

사람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방을 비난하고 떠나버리는 것처럼 원시적인 파충류뇌의 "싸우기 아니면 도망치기 반응 fight- flight"을 보이는 것이 아니고 문제를 해결하고 화해할 줄 아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육아는 과학이다, 마고 선더랜드 저 인용)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전두엽(인간뇌, 이성뇌)은 만 3세부터 6세 사이에 급격히 성장하고 24세까지 계속 성숙해간다. 그러므로 3세 미만 아이는 아직 이러한 이성적인 행동을 거의 하기 어렵다.
 

그럼, 이런 능력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정신의학의 3대 거장 중에 한 명인 칼 구스타프 융은 이렇게 말한다.

"유감스럽게도 아이들은 부모가 말하는 것을 보고 배우지 않고 부모가 행동하는 것을 보고 배운다."
 

정말 유감스러운 말이다.
인생은 그렇게 교과서처럼 살기에는 너무나 거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이 가리키는 진실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가 먼저 잘못이 있을 때
"쿨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행동"을 아이에게 본보기로 보여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인간뇌 - 이성뇌의 작용)
이것을 염두에 두고 

그럴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노력해야 된다.

“그때”는 언제인가?

 

사진 픽사베이

 

네살박이 철수가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장난감 자동차를 던져서 아빠의 볶음밥 위로 떨어졌다.
순간 아빠는 화가 나서 (감정뇌- 포유류뇌의 작용)

"뭐 하는 짓이야." 고함을 질렀다. 
고함을 지른 후
순간 아빠도 당황했다.

 

"어떡하지?"
아빠의 전두엽, 이성뇌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파충류뇌, 본능뇌도 작동한다. 

 

"창피한데 도망칠까? 싸울까?"

아이는 시무룩하고 불쌍한 표정으로 아빠의 눈빛을 살핀다.

 

어른들이라면 이성뇌(전두엽)가 작동하면서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앞으로 조심할게요."라고 말로 표현하면서
세련되게 대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이성뇌는 그렇게까지 발전하지 못했고
싸울까? 도망칠까?

겁에 질려 (본능뇌 - 파충류뇌) 

울어버리는 (감정뇌 - 포유류뇌)  수준이다.

아이가 아빠의 눈빛을 살피면서
그렇게 서툴게 사과를 하고 있을 때

아쉽게도
아빠의 파충류뇌가 이겼다.

아빠는 무표정한 얼굴로 철수의 눈길을 피한다. (파충류뇌 - 도망치기)

어머니들이 무표정한 얼굴을 했더니 아기들이 매우 불안해했다는 유명한 연구가 있다. 무표정한 얼굴을 보이면 아이 뇌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이 활성화된다.

또한 부모가 아이의 서툰 사과를 눈치채지 못하고 반갑게 맞아주지 못한다면 더욱 움츠려들고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파충류 뇌 - 도망치기) 아니면 감정을 폭발하는 말썽꾸러기 (파충류 뇌 - 싸우기) 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유감스럽게도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아빠의 전두엽은 이미 발달해 있으므로
실수를 했다고 할지라도
바로 지금이
쿨하게 사과하기를 가르칠 수 있는 찬스 "그때"이다.

"아빠가 순간 화가 났네. 철수도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데  고함쳐서 미안해 "
라고 말하면서 철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아빠의 인간뇌가 다시 이겼다.
감정을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 설명한다.

만약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빠 볶음밥을 장난감 자동차도 먹고 싶어 했나?"


"유머"로 놀이처럼 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 최고의 스트레스 대처 스킬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도 식탁에서는 장난감은 가지고 놀지 말아야겠네."

이렇게 감정이 조절되고 관계가 회복된 후에
분명한 지침을 제공하는 것은
도리어 아이에게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감정이 수용되고 두려움이 가라앉지 않는 상황에서는 어떤 조언도 잔소리가 되어버린다.

 

아빠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반응을 보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것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면 가능하다.
예측되는 상황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받아주기만 하면 응석받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자식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빠들이 많다.
 

"어떤 사람이 제일 강한 사람일까?"
아함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제일 강한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강인한 의지력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을까?

 

경쟁이나 독기에서 나오는 강한 의지력은
오래가기도 힘들고
설사 오래간다고 할지라도
자신과 주변을 다치게 하는, 슬픈 결말로 이어지기 쉽다.

부모의 무서운 다그침이나 훈계에 의한 감정의 억압이 강함이 될 수는 없다.

"강함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모든 학파의 상담심리학에서 동일하게 상담 초기에 강조되는 것이
[감정의 수용(contain)]이다.
감정을 받아주는 것이다.
그래야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감정에서 벗어나 이성적인 뇌가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떼를 부리던 아이가 엄마가 “괜찮아”라고 도닥여 안심시켜주면
저절로 이렇게 말한다.
“혼날까봐 무서워서 그랬어요. 미안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사진 픽사베이

 

이것이 쿨하게 사과하는 법을 가르치는 최고의 비법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고 부딪히는 것이다.   
감정의 조절은 우선 그 감정을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아이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부모가 받아주지 않아 아이가 혼자라고 느끼면서 흘리는 눈물은 언젠가 멈추겠지만 그 빈자리는 차갑고 냉담한 무심함이 채우게 된다. 마치 상처 뒤에서 남는 흉터처럼
따뜻한 수용과 공감이 그 자리를 채우면 회복 탄력성, 자존감, 자신감이 생긴다. 마치 굳은살처럼

내 아이에게

순간적인 감정을,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사과하고
관계를 다시 이어가는 것을 가르치는 것.

그것은 내 감정을,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아이에게 먼저 사과를 구하고
화해를 청하고
상대방이 받아줄 때까지 기다리고
다시 관계를 이어가는 실천에 있다.

아직은 미숙한 부모로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 자체가
아이에게 가장 큰 본보기가 되고 가르침이 된다.

사진 넬슨 만델라 https://www.flickr.com/photos/45582474@N02/9215883633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영광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

- 넬슨 만델라



<추신>
부모가 된다는 것은 도를 닦는 것이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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