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학생들과 관련한 이야기에서 많이 접하게 되는 단어 중에 하나가 ‘중2병’이다. 사실 공식적인 진단명은 아니지만 공공연하게 감정 조절이 되지 않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 시기를 표현하는데 쓰이고 있는데,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너무나 공감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갑작스럽게 변한 아이를 보면서 부모는 생각한다. ‘그래,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사춘기가 아니라 병이 틀림없지, 중2병.’ 우리 사회에서 ‘중2병’이라는 단어가 쓰인지는 오래 되지 않았지만 ‘중2병’이 포함하고 있는 사춘기 시기의 아이들의 특징은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춘기의 발현이 좀더 빨라지고, 표현의 강도나 방식이 조금 더 과격해진 것도 있어, 이전 세대에 사춘기를 경험한 부모의 입장에서는 더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사진_픽사베이

 

모범생이었던 민지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달라졌다. 항상 공부도 열심히 하고, 부모의 말을 잘 듣던 아이라서 부모는 민지가 사춘기 없이 잘 지나가나보다 하고 생각해왔는데 말이다. 중학교 입학 후에 새로운 학교 적응이 어려운 것 같아 부모는 민지에게 좀더 다정하게 말도 걸어보고 위로도 하고, 전보다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는데 어쩐지 부모의 말이 잘 들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첫 번째 중간고사를 치른 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뭐가 불만인지 엄마를 쳐다보는 눈빛도 살벌하고 표정은 늘 무슨 화가 난 아이처럼 하고 있고, 밥을 먹으래도 싫다, 평소 좋아하던 간식을 해줘도 싫다, 말을 하고 싶지 않으니 혼자 있게 두라고만 한다. 엄마는 너무 당황스럽다. 우리 민지가, 뭐든지 나에게 의논하고 누구보다 엄마를 배려하던 아이였는데. 엄마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참고 또 참지만, 민지가 엄마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대놓고 무시하며 지나갈 때에는 엄마도 그만 폭발해버렸다. 그런데 화를 내는 엄마를 무심하게 쳐다보던 민지가 낮은 목소리로 혼자 욕설을 뱉더니 집을 나가버렸다. 엄마는 너무 황당하다. 우리 아이가 그런 욕도 쓸 줄 알았나? 욕을 엄마에게 할 정도로 예의가 없는 아이였나? 쉬이 엄마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힘든 아이에게 너무 화를 냈나, 또 자책하게 된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돌아온 민지가 엄마는 너무 반가웠지만, 역시나 엄마에게 차갑게 대하는 모습을 보니 대체 어떻게 아이에게 다가가야 할지,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알아주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평소 학교에서 장난도 많이 치고 산만하다고 지적을 받기도 했던 진수는 6학년이 되면서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담임 선생님에게 심한 장난을 치기도 하고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거나 장난으로 되받아쳐 선생님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친구들과는 사이가 좋아서 무리를 지어 다니며 즐겁게 보내지만 어른들의 말은 무시하기 일쑤인데다, 학교 규칙도 지키기 않고 심지어 무단 결석을 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부모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직장일로 바쁜 진수의 부모는 진수를 어떻게 타일러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선생님에게 그런 버릇없는 행동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부모가 크게 혼을 낸 뒤로는 부모마저도 피하려고 한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부모는 바쁜 중에 시간을 내어 함께 지내보려 하지만 진수는 늘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나가려 하고, 엄마 아빠의 말에는 그저 짜증만 낸다. 진수의 태도에 화가 난 아빠가 진수를 혼냈더니 혼자 방에 들어간 진수가 갑자기 큰소리를 지르면서 의자를 바닥으로 내려치는 소리가 들린다. 부모는 너무 당황스럽다. 대체 쟤가 왜 저러는걸까?

 

사진_픽셀

 

청소년기는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이행하는 시기이다. 청소년기에 아이들은 여러 가지 신체적, 정서적 변화를 경험하게 되고 이는 아이들에게도 어쩌면 당황스러운 변화이기도 하다. 먼저 이 시기에 호르몬의 변화로 2차 성징이라는 큰 신체적 변화를 겪게 된다. 신체적 변화를 겪으면서 아이들은 주변 아이들과 자신을 비교해보기도 하고,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불편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신체적 변화와 더불어 인지적으로는 추상적, 합리적 사고가 발달하게 되면서 전에 비해 종교나 도덕 등 관념적인 것에 대해 골몰하고 나름의 생각을 정립하기도 한다. 특히나 자아정체성의 확립이 중요한 과제가 되는 시기인 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지는데, ‘나는 누구인가?’ 라는 주제에 대해서 어느 시기보다 진지하게, 또 민감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탐구하면서 자신의 성격이나 외모 등에 몰입하면서 주변과 비교하거나 주변의 말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존감에 있어서는 더 취약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신체적, 인지적 변화 이외에도 청소년기에는 뇌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것이 아마 중2병이라고 말하는 감정적, 충동적 성향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의 뇌는 생후 지속적인 발달을 거치면서 사춘기에 이르러 부피와 기능의 변화를 겪게 되는데 'prunning'이라는 가지치기 과정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길 경우 조현병 등의 병적인 상태로 진행이 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오늘 설명할 부분은 아니니 넘어가기로 한다. 사춘기의 뇌내 변화는 성호르몬의 분비 이외에도 도파민이라는 충동 조절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과 연관이 되어 있고, 대개 충동성과 계획성, 동기 등의 뇌기능을 담당하는 분야인 전전두엽에서 그 변화가 크게 일어난다. 전전두엽과 선조체에서 구조적 기능적 변화를 겪으면서 청소년기의 뇌는 감정적으로 취약하고, 행동 조절 및 절제 능력이 불안정하며, 위험한 행동을 추구하는 등의 충동적인 특징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뇌의 변화와 함께 청소년이 겪는 환경적인 변화(가령 새로운 학교로의 진학과 같은), 가족 역동의 변화(사춘기를 경험하는 자녀와 그 부모 관계에서의 변화), 사회심리적 스트레스(가령, 학교나 또래 관계 어려움) 등은 충동적이고 불안정한 감정과 행동을 촉발하는 인자가 된다. 즉, 감정과 행동 조절의 취약성을 가진 청소년기의 뇌는 다양한 사회적, 심리적 스트레스에 의해서 그 충동성을 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마음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학적인 취약성이 미친 영향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모든 아이들이 사춘기의 변화를 통해서 충동적으로 욕을 하고 물건을 던지는 것인지? 이런 행동들을 사춘기의 생물학적인 변화니까 의례껏 받아주어야 하는 것인지? 사실 그렇지는 않다. 분명히 아이들이 다양한 변화를 겪으면서 불안정하고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아이를 대할 필요가 있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는 개인이 모두 다르게 나타나고, 그 정도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 수준이라면, 이때는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앞서 제시한 사례에서 민지는 학교 적응과 관련한 어려움을 겪었고 표정의 변화나 기분의 변화가 의심된다. 이때에는 아이가 우울감으로 인해 짜증이나 감정 조절의 어려움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약 우울증이라면 약물 치료나 상담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치료적 개입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적응 과정의 우울감 문제라면, 부모의 협조 하에 경과를 지켜보는 것이 해결 방법이 될 것이다.

 

사실 청소년기 아이들은 또래의 가치가 커지고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하려는 시기이기 때문에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는 경향은 오히려 건강한 발달 단계의 과정에서 독립성의 일환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나 애정에 대해 온전히 무시하거나 반항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여전히 부모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욕구와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는 내면에 자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부모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모의 말을 무시하고 듣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아이는 부모의 반응와 말에 누구보다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좀더 온정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로 기다릴 필요가 있다. 청소년기는 언젠가는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와 갈등을 겪으면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험악한 분위기에서 이 시기를 보낼 것인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아이를 관찰하면서 필요할 때 즉시 도움을 주는 등의 조력자로서 부모와 이 시기를 넘길 것인지는 분명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때에도 부모가 분명한 기준과 훈육의 방식을 가지고 아이가 수준을 넘는 정도의 문제 행동을 보인다면 이를 제지해야 하며, 필요시에는 보다 전문적인 도움을 구할 필요도 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청소년기 아이들을 보면, 누구보다 자신의 주관을 뚜렷하게 가지고 불만을 많이 표현하기도 하지만, 또한 누군가의 지지와 수용을 무엇보다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급격한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변화를 겪는 아이들이 스스로 독립적인 성인이 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 스스로도 기분의 변화나 불편감을 느끼기도 하고, 심한 수준의 행동 문제로 치료적 개입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고된 시기를 거친 후에는 자아정체성이 확립이라는 청소년기 발달 과업을 이루게 되는 것이겠지. 부모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많은 행동들이 아이 나름의 사투라고 받아들이고, 조금은 거리를 두고 지켜볼 수 있는 시기가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이 시기가 과연 끝나기는 하는 것일까 의문도 들 것이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면서, 시간이 약이라고, 너도 크느라 참 고생이 많구나, 하고 되뇌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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