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정신의학신문

누군가와 오랜 대화를 나눈 끝에 치유 받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호감을 되찾은 적은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는 믿을 수 있고, 개방적이고, 솔직한 상황에서 두 사람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상대방은 아마도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은 채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며 당신의 말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 칼 로저스

 

칼 로저스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다. 교육, 상담, 심리치료, 갈등해결 및 평화 분야 모두에 크게 공헌했으며, 인본주의 심리학 인간중심치료의 창시자로서 공감적인 삶, 실험적인 연구, 16권의 저서, 200편이 넘는 학술논문을 통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많은 사람들이 심리 치료사라고 하면 눈치가 빠르고 민감하여 다른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섬세하게 잘 대처하며, 비수와 같은 한 마디로 괴로움을 깨뜨려 버리는 사람을 떠 올린다. 하지만 심리 치료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부분이 아니다.

 

칼 로저스는 말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실현을 추구하려는 동기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치료자는 단지 이를 도와줄 뿐이다. 치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학적 지식이나 치료 기법의 숙련도가 아니다. 치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자의 태도이다. 진실성, 무조건적인 수용, 공감적 이해가 바탕이 된 치료자의 태도는 심리 치료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라고.

 

이 말에 매료되어 임상 심리사를 평생의 업으로 선택한 사람이 있다. 당시에는 경제학과, 경영학과 등이 인기였다. 미래가 보장된 삶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시에 서울대 경제학과, 경영학과를 선택한다는 것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하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단지 사람이 좋아서,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이 길을 선택하였다. 누군가와 오랜 대화를 나눈 끝에 치유 받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호감을 되찾은 적은 있는가? 이 사람을 만나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만나게 될 민병배 선생님이다.

 

Q. 인지치료 하면 대부분의 심리 선생님들이 ‘민병배’ 선생님을 떠올리는데 선생님께서 인지치료를 전공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심리학과 학부 시절, 상담심리학과 임상심리학을 배우며 로저스에 매료되어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였다. 이후 대학원 4학기 때, 김중술 교수님이 지도하시던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심리레지던트 과정에서 아론 벡의 ‘인지치료와 정서장애’를 강독하는 시간에 참여하면서 인지치료에 처음 매력을 느꼈고, 이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아론 벡의 인지치료를 처음 접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아, 인지치료가 칼 로저스의 인간중심치료와 상당히 비슷하구나!’였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점이 하나있다. 인지치료가 단순히 비현실적이고 부적응적인 생각을 현실적이고 적응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치료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인지치료에서 찰나에 지나가는 자동적 사고를 알려는 목적은 자신의 감정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감정이라는 창문을 통해서 자신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때 감정 이면의 생각에 맞닿을 수 있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자신을 좀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칼 로저스의 인간중심치료와 매우 비슷하다. 로저스가 느낌(feeling)을 명료화하는 것을 강조했는데, 느낌이란 ‘감정과 그 인지적 의미’를 뜻한다면, 로저스가 말하는 ‘느낌의 명료화’와 벡이 말하는 ‘감정 이면의 자동적 사고의 자각’은 서로 같은 현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내게는 두 치료적 접근 모두 개인의 주관적이고 현상학적인 세계를 중시한다는 점이 분명해 보였고, 그것이 내가 인지치료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인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이전의 심리상담 이론들은 전문가가 내담자의 경험을 해석하는 것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더 잘 안다. 이건 당연한 사실인데도 나는 많은 시간을 배우고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치료자는 다만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단지 내담자가 자신의 현상학적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상담은 두 전문가간의 면담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정신의학신문

Q. 인지행동치료의 최근 경향이 수용과 전념을 중시한다는데 전반적인 배경과 수용전념치료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인지행동치료는 인간의 변화과정에서 특히 생각의 변화를 중시하는 다양한 인지적 치료들과 행동의 변화를 중시하는 다양한 행동적 치료들이 한 지붕 아래 모인 치료적 접근이다. 마치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여 한강을 이루듯, 인지적 치료들과 행동적 치료들이 인지행동치료라는 이름으로 합류하였다.

인지행동치료는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전반적인 흐름의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새로운 흐름의 중심화두는 수용과 마음챙김이다. 인간의 경험을 변화시키려는 것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는 것으로 치료의 초점이 옮겨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인지행동치료의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는 치료들 중 하나가 수용전념치료이다. 수용전념치료는 한편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경험을 ‘수용’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이 선택한 가치지향적 삶에 ‘전념’하는 것을 강조하는 치료이다.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사회 공포증 환자가 남 앞에서 떠는 게 문제인가? 떠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런 자리를 피하는 것이 문제인가?

사회 공포증 환자는 떠는 게 부끄러워서 그것을 바꾸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분노가 문제가 아니다. 우울함이 문제가 아니다. 불안이 문제가 아니다. 물론 분노, 우울, 불안의 다양한 감정 경험들 자체는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고통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고통스러워서, 그리고 그런 고통을 느끼는 자신이 못마땅해서 그것을 회피하거나 통제하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를 공식화 해보면, ‘고통 + 통제 = 괴로움’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Q. (‘잠깐! 고통은 힘들고 피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고통과 싸우지 않고 이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것이 경험의 수용이다. 감정과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판단하고 바꾸려는 것이 정신병리를 만든다. 우리는 좋지 않은 감정이 있을 때, 순간적으로 회피하고 통제하려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이는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고통을 피하려고 하는 행동이지만 오히려 괴로움을 만들어낸다. 힘든 감정은 회피하고 통제하는 것보다, 잠깐만 멈춰서 이를 판단 없이 관찰할 수 있으면 조절하기가 더 쉬워진다. 내적 외적 경험들을 판단 없이 그저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생각이나 감정은 바꾸려 한다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코끼리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생각하지 않으려는 회피적인 반응이 결국 그 생각을 더 강하게 떠오르게끔 한다. 경험은 받아들일 때 오히려 조절이 더 쉽다.

삶에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은 이렇게 수용해야 한다. 고통을 받아들여야 오히려 우리의 마음속에 여유가 생긴다. 여유는 우리를 자유공간으로 데려가 줄 것이다. 이러한 자유공간에서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행동에 대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해서 집중하는 것, 이것이 전념이다. 경험의 수용은 가치지향적 삶에로의 전념이 가능하게끔 도와준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왜 그것을 못하고 있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은데 왜 그러지 못하나?

많은 사람들이 거절당할까 두려워서라고 대답한다. 혹은 다가가고 싶긴 한데 또 함께하면 힘들고 불편해서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두려움과 불편함의 고통을 수용하지 못한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회피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싫은 것을 피하기 위한 회피동기보다 원하는 것에 다가가는 접근동기에 따르는 삶을 살아갈 필요가 있다. 회피동기에 따르는 삶은 없는 에너지를 끌어내는 삶이다. 접근동기에 따르는 삶은 없는 에너지도 생기는 삶이다. 그 일을 하면 신이 난다. 그 일을 하면 좋다. 끊임없이 내재적 보상을 받는다. 전념은 가치중심적 삶과 일치하는 삶이다. 사회와 남들이 원하는 가치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선택할 수 있다. 바람직한 삶이 아닌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은 유위가 아니라 무위의 삶이다. 이것이 수용과 전념의 힘이다. 이런 수용과 전념은 인간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힘이다. 이를 조금 더 쉽고 편한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수용전념치료이다.

 

Q. 마지막으로 정신의학신문 독자들에게 마음을 위해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바쁘더라도 삶에서 쉼과 여유를 위한 최소한의 여백을 남겨둬야 한다. 삶이 너무 바쁘면 삶의 필요에 어쩔 수 없이 떠밀릴 뿐,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며 살 수도 없다. 최소한의 여백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하루에 명상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져보는 게 어떨까? 끊임없이 지금 여기 이 순간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자. 우리는 항상 행위모드로 살면서 문제 해결과 걱정에만 매달린다.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 생각은 나 자신이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지 못하게 한다. 이럴 때 다시 현재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출근길에 걸어오면서 인터뷰를 어떻게 할까 걱정을 했다. 오는 내내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생각을 했다. 보통은 15분 정도 걸어오면서 나무도 보고, 하늘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가끔은 숨을 쉬는 나 자신도 보는데, 오늘 아침은 인터뷰를 어떻게 할까, 안 해도 되는 걱정을 했다. 15분의 여유로운 시간이 사라진 것이다. 마음을 잠깐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연습으로 가능한 것이다. 자기 경험을 관찰하는 연습을 하자. 이는 수용과 전념의 삶이 가능하게끔 도와줄 것이다.

 

Q. 조금 색다른 질문입니다. ‘HER’라는 영화를 보셨는지요? 인공지능이 상담을 하는 날이 올까요?

재미있게 본 영화다. 솔직히 나보다 상담을 잘 하더라. 음, 가능하냐는 물음에는, 상담이 바둑보다 조금 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가능할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가능하냐는 물음보다는 인공지능이 좋은 상담가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아니, 이거보다 더 윤리적이고 철학적이고 기초적인 부분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인공지능이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학습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스스로의 경험과 학습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무기체이면서 인격체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생명체가 아닐까, 어느 정도의 인격을 가진, 호모사피엔스를 능가하는 초인류의 탄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능하다 해도, 그런 것이 필요할까?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그와 나는 어떤 관계를 맺을까? 내가 종속되지는 않을까? 이런 부분들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