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박사 이광민의 (2)

[정신의학신문 : 논현동 마인드랩 공간 정신과, 이광민 전문의, 의학박사] 

 

# 사례 #

회사에서 시행하는 정기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2년에 한 번씩 하는 거니까 별생각 없이 지정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신체검사부터 혈액검사 등을 거쳐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까지 모두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문의 선생님과 면담이 진행되었습니다.

“대장 내시경에서 용종(표피나 점막에 증식해 혹처럼 돌출한 부분)이 발견되었습니다. 바로 떼어 내기에는 크기가 커서 더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의사는 그 이상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약간 의심스러운 게 있을 뿐이라고만 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대학병원을 찾아가 정밀검사를 받았습니다. 예약 후 정밀검사를 받는 데 3주의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곤혹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머릿속으로 생과 사가 왔다 갔다 했습니다.
 

“내시경을 통해 용종을 떼어 내기는 했는데, 악성인지 확인하려면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다음번 진료 때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학병원 교수님 역시 별다른 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커져만 갔습니다. 아내가 눈치를 챌까 봐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식욕도 떨어지고 잠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자꾸만 안 좋은 생각, 이상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아무래도 암인 것 같아. 대장암이면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하면 나을 수 있을까? 이미 전이가 되어 있는 건 아닐까?’

‘아냐, 아냐! 암은 무슨…… 선생님도 일단 아직 암이라고 이야기한 건 아니니까 검사 결과 별일 아닐 거야. 내가 얼마나 건강한데?’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의사의 진단이 나오기도 전에 피가 다 말라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암보다 더 무서운 게 제가 겪는 이런 공포 아닐까요? 
 

사진_픽셀


# 조언 #

이해를 돕기 위해 다소 가공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정말 많은 분이 이와 비슷한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계실 겁니다. 실제 암을 경험하는 분보다 훨씬 많은 분이 건강검진 등을 통해 암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밀진단을 위해 큰 병원을 찾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실제 암 진단을 받아 치료 과정으로 넘어가겠지만, 상당수는 암이 아닌 다른 병변으로 판명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됩니다.

하지만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혹시 암이면 어떡하지, 잔뜩 마음을 졸이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 시간 동안 경험하는 심적 고통은 정말 대단합니다. 암으로 인한 정서적인 어려움은 암을 진단받은 이후 제일 크겠지만, 암과 관련해서 가장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건 암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최종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암과 관련된 공포는 죽음과 연결됩니다. 그렇기에 암일지도 모른다는 말은 설령 암이 아닐지라도 우리의 생각을 파국으로 끌고 갑니다.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병기가 높으면 어떡하지, 치료가 어려운 상황은 아닐까, 재발하면 어쩌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지 않을까, 등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깊어집니다.

암이 아닐 수도 있다고 스스로 다독여 보지만 생각은 어느 순간 다시 나쁜 쪽으로 흘러갑니다. 이런 생각의 흐름은 한창 일에 몰두하는 낮에도 불쑥불쑥 침투해 오지만, 혼자 있거나 밤에 잠을 자려고 하면 더욱 심해져서 밤잠을 설치게 됩니다. 잠을 설치며 예민해진 신경은 우리의 생각을 더욱 극단적으로 끌고 갑니다.

 

암을 진단받기도 전에 우리의 심리 상태는 파국적으로 진행됩니다. 여기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영향을 미칩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치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우리의 불안을 더욱 자극합니다. 내가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이고, 어떤 대응 방법이 있는지, 승산은 어느 정도인지 대략이라도 알면 우리는 마음을 정하고 의지를 다질 수 있지만, 적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그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게 부정적인 쪽으로 흘러갑니다. 막연함이 우리의 불안을 파국적으로 끌고 가는 셈입니다. 암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정보에 대해 불안과 공포를 경험하는 것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정상적인 반응이라고는 하지만 그 정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막연한 검사 결과만으로 정밀검사를 받더라고 불안의 정도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거죠. 이런 차이는 우리가 불확실한 정보에서 생각의 흐름을 어디까지 좇아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건강한 마음을 가진 쪽에서는 내가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더는 생각을 이어 가지 않으려 합니다. 암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생각을 이어 가 봐야 지금은 정보가 없는 까닭에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습니다. 어떤 종류의 암인지, 병기가 어떤지,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암에 걸린 이후의 상황을 생각하면 최악의 상황만 떠오를 뿐입니다. 정해진 게 없으니 내가 아직 받아들일 것도 포기할 것도 없습니다. 추가적인 생각의 흐름은 정밀검사 결과가 나오고 난 이후에 그 정보에 따라 진행해 나갈 뿐입니다. 

 

건강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 집중하며 계속해서 침입해 오려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물론 불쑥불쑥 잡념이 침투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생각을 자꾸 좇아가는 건 피해야 합니다.

평소 즐기던 활동을 하면서 몸을 움직이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좇아가지 않게끔 다른 화제로 전환해 나가야 합니다. 가족 등 신뢰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토로하며 위로받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간혹 나도 모르게 생각이 끝도 없이 이어지면서 원치 않는 파국으로 이끌려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초래되는 상황이라면 정신건강 관련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이 시기의 환자들에게 정보의 불확실성을 줄여주기 위한 사회적 노력도 필요합니다. 의료나 사회적 영역에서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위 사연에서도 그렇지만 검사 후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을 때 의료진이 그 정보를 전달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혹여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다가 그렇지 않았을 때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다소간 의심스러운 결과가 나타났을 경우, 비관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고, 단순히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식으로 건조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심리적인 불안을 자극할 수도 있습니다. 

 

앞서 강조했듯 암과 관련해 가장 많은 사람이 정서적 불편감을 경험하는 건 검사 결과를 최종 통보받기까지의 시기입니다. 이제는 의료체계 내에서 이 시기에도 정서적 고통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의료진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검사를 진행하며 정보를 전달할 때 불안을 부추기는 불필요한 자극을 줄여야 합니다.

일반검사 결과에 따라 정밀검사를 권유할 때도 암에 대한 의심이 낮은 경우라면 그런 정보도 세심하게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불어 정밀검사 결과도 꼭 다음번 진료 일정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암이 아닌 경우라면 별도 연락을 통해 좀 더 일찍 알려줌으로써 불필요한 불안의 시기를 줄여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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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인드랩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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