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배가 아파서 진료를 보러 갔다.

 

의사는 여러 가지를 물어본다.

‘언제부터 아팠어요?’

‘어디가 아파요?’

‘어떻게 아파요?’

‘특별히 먹은 음식이 있나요?’

‘토하거나 설사는요?’

...

 

의사는 여러 질문들을 던진 후(문진)에 신체 검진에 들어간다.

배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고(시진)

청진기를 통해 장음을 확인하고(청진)

손가락으로 배의 여러 부위를 두드려 본 후(타진)

손의 감각으로 배를 만져본다.(촉진)

 

의사는 문진을 통해 얻은 환자의 주증상, 현병력(medical history), 과거력, 가족력 등과 신체 검진에서 얻은 결과를 기초로 하여 피검사를 할지, 소변 검사를 할지, 대변 검사를 할지, 복부엑스선 촬영(X-ray)을 할지, 복부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할지, 내시경을 할지 판단한다. 그 후 이런 검사들을 종합하여 진단을 내리고 치료 계획을 짠다. 대부분은 증상과 진단에 맞게 약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과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치료 과정이 이루어질까?

 

정신과 역시 문진으로 치료를 시작한다. 하지만 정신과적 증상은 일반 의학적 증상에 비해 발생 시기, 원인, 내용에 있어 생물학적 원인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원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진단을 위해 알아야 할 정보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기술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정신과에서는 환자와의 첫 만남부터 간단한 문진을 넘어 정신의학적 면담이 시작된다.

 

<1>

정신의학적 면담은 누군가가 정신과에 온 이유에 대한 사회 심리적 원인과 정신병리(증상)를 파악하고 진단하기 위한 것이다.

 

자, ‘자꾸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며 병원을 찾은 사람을 보자.

 

정신과 의사는 정신의학적 면담을 통해 왜 이 사람이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드는지 사회 심리적 원인을 알아본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6개월 전부터요.”

‘그 당시에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성폭행을 당했어요.”

(대게의 일반 사람들은 여기서 할 말을 잃게 된다.)

...

 

또한 이 사람이 말한 ‘자꾸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정신의학적으로 어떤 증상인지 알아본다.

 

1. “성폭행을 당한 후 너무 우울해요. 제 몸이 더럽혀져서 가치가 없는 거 같아요. 죽는 게 나아요.” - 우울한 감정에 의한 자살 사고

(자신의 몸이 더럽혀 졌다는 부분에 관해서도 심리적 원인이 무엇인지, 이 표현이 보이는 증상이 죄책감인지, 수치심인지, 애도반응인지, 망상인지 깊이 분석한다.)

2. “그 당시의 장면이 자꾸 떠올라서 너무 괴로워요. 그리고 죽을 정도로 공포스러웠던 그 느낌이 자꾸 반복 되요.” - 트라우마의 경험이 반복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재경험

3. “성폭행을 당한 후 ‘내 몸은 더럽다, 나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이 파고드는 것 같아요.” - 강박증에서 보이는 강박사고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말과 행동으로 증상을 파악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이는 같은 말과 같은 행동이 같은 증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자꾸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는 같은 표현에도 여러 수많은 증상이 숨어 있다. 이런 수많은 증상에 따라 진단이 달라지고 치료 계획이 달라진다. 우울증의 치료 계획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 계획, 강박증의 치료 계획은 비슷한 약을 주는 것 같지만 확연히 다르다. ‘죽고싶다’고 정신과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사회 심리적 원인이 있고 각자 다른 증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정신과를 찾는 사회 심리적 원인을 파악하는 것을 통찰 지향적 면담, 정신병리(증상)를 파악하는 것을 기술적 면담이라고 한다. 이 둘은 당연히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2>

정신의학적 면담은 원인과 증상의 파악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치료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첫 만남에서의 원인과 증상의 파악을 위한 정신의학적 면담에서도)

 

첫째, 정신의학적 면담은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의사가 환자를 공감하는데 도움이 되고 의사-환자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다. 치료에 있어서 의사-환자 관계는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정신과 치료는 더, 더, 더 중요하다. 치료의 99%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라고 말하고 싶다.

둘째, 환자가 자신의 인생과 문제점을 자세하고 솔직하게 설명하는 그 자체로도 치료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 환자가 자신이 겪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 자신의 애매모호한 감정 상태, 그리고 자신의 머릿속에 헝클어진 생각을 언어화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질병과 앞으로의 치료 방향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언어화를 통해 괴로웠던 상황, 감정, 생각이 점차 명료화 되고 자신의 문제를 조금 더 객관적인 차원에서 볼 수 있다.

단지 정신과 의사 앞에서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자신을 잘 이해해주고 공감해 준다면 어느 누구라도 가능할 것이다. 자신이 할 일은 솔직하게 괴로운 점을 단지 이야기 하면 된다.

(그럼 정신의학적 면담에서는 어떤 내용을 다루는가?)

 

자, 문진이야 이렇게 길고 긴 정신의학적 면담을 통해서 끝냈다고 치자. 그렇다면 다음은? 시진, 청진, 타진, 촉진이 남았는데, 이건 어떻게 하나? 정신과적인 증상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데 어떻게 진찰을 해야 할까?

 

정신과에서는 신체검진 대신에 정신상태검사mental status examination를 한다.

정신상태검사에서는 외모, 전반적 태도 및 행동, 사고의 과정, 사고의 내용, 지각, 감정반응, 인지기능, 판단과 병식 등을 파악한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말과 행동으로 이런 부분들을 알아보기 때문에 정신의학적 면담(정신의학적 면담이 정신과 치료의 시작과 끝이라고 말하고 싶다.)을 하는 중에 정신상태검사가 포함된다. 때문에 정신과에서는 문진을 한 후 여기저기 살펴보고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청진기를 통해 이런 저런 소리를 들어보는 과정이 없는 것이다.

(정신상태검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설명하겠다.)

 

또한 검사 내용도 일반 의학적인 증상과 많이 다르다. 물론 정신과에서도 피검사, 소변검사, 대변검사, 뇌 컴퓨터 단층촬영, 뇌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할 때도 있다. 이때는 정신의학적 면담 결과 신체적인 질환이 정신과적인 증상을 일으켰다고 의심이 되거나 뇌가 외적 내적으로 손상을 받아 병리적인 변화가 있을 거라는 의심이 들 때이다. 대게 정신과에서는 심리검사를 주로 한다.

 

심리검사란 능력, 성격, 생각, 감정, 흥미, 태도 등과 같은 심리학적 구성 요소들을 수량화하기 위해서 표준화된 신뢰성 있고 타당성 있는 측정도구를 말한다. 성격의 구성 요소를 예로 들어보면 ‘외향성’, ‘내향성’ 등이 있는데 (이것 역시 심리학자들이 만들어낸 가설적인 개념이다.) 이는 직접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사람의 말과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정도’를 추론 할 수 있을 뿐이다. 심리검사는 이런 대상의 속성에 점수를 매기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얼마나 외향적인지, 얼마나 내향적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신뢰성 있고 타당성 있다는 말은 이 심리검사가 얼마나 믿을만한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신뢰성이라는 말은 검사를 반복적으로 하더라도 항상 유사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고, 타당성이라는 말은 이 심리검사가 이런 구성 요소를 측정하는데, 저 심리검사가 저런 구성 요소를 측정하는데 알맞은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심리검사도 워낙 종류가 많다. 지능검사, 성격검사, 미네소타 다면성 인성검사, 로르샤흐검사, 주제통각검사, 문장완성검사, 인물화검사, 신경심리검사 등이 있다. 이 역시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나하나 설명을 하겠다.

 

정신과에서는 이런 길고 긴 과정을 통해서 겨우 진단의 실마리를 찾는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사실 정신과에서는 진단 과정과 치료 과정이 따로 나누어져 있지 않지만 편의상 조금 구분해 보았다. 이 실마리를 가지고 증상과 진단에 맞게 치료에 들어간다. 자 그렇다면 정신과에서는 어떤 치료를 할까? 다음 편에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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