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알고싶니마음 심리툰 작가 팔호광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수 비의 깡이라는 노래와 무대 퍼포먼스 영상이 연일 화제입니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본인의 생각을 솔직히 밝히기도 했던 가수는, 오히려 1일 3깡 정도는 해야 하지 않느냐며 그간의 조롱을 유머로 받아치는 듯한 대범함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저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그의 표정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뻔뻔함이 느껴질 정도의 자신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는 대중의 요구에 맞춰 타협의 여지를 내어주겠다는 관대함도 보여주었습니다.
 

사진_MBC


2000년대 초반, 연예인들의 짝짓기 프로그램과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대세이던 대학생 시절, 저녁이면 기숙사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그런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함께 키득거리던 것이 지금 기억나는 동기, 친구들과의 소중한 일상입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라는 개인 계정을 하나씩 다 가지고 있었고, 관심 있는 이성의 홈페이지에 몰래 들어가 일기나 사진을 훔쳐보고 소심한 방명록을 남겨 놓고 마음 졸이던 시절,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역사책에서 보고 알게 되었다는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진출 신화를 기록하던 그때, 비라는 가수는 누군가의 영웅이었습니다.

뛰어난 가창력과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는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어떤 무대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몸과 목소리를 연주하는 그의 열정에서는 경이로움마저 느껴지던 그때가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간다는 것이 다소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대중들은 언제나 라이징 스타, 새로운 것을 원하기 때문에 어떤 연예인의 인기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연예인들이 그런 변화에 상처 받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대중의 반응을 SNS를 통해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더 충격적입니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고, 실제로 많은 청소년들이 데뷔할 날만을 기다리며 연습생 생활과 혹독한 트레이닝 과정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한편 연예인을 선발하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은 그 순위가 조작되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는 등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공정하지 못하다는 혹독한 현실은 꿈을 가진 청소년들에겐 더 큰 상처가 될 것입니다.

연예인을 지망하는 청소년들에게 이런 현실에서 어떤 결과를 가지게 되든 최대한 상처 받지 않고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정신건강에 대한 교육과 상담이 양성 과정에서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의구심으로 남으며,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도 심각하게 고려해보아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영상에서 시작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오지랖 넓게도 그런 염려와 걱정에까지 다다랐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우연히 가수 비가 그의 계정에 올린 상의를 탈의하고 춤을 추는 영상을 보게 되었고, 다른 방향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은 예전 전성기 때 그가 혼자 무대에 서서 수많은 대중을 휘어잡던 전성기의 무대를 보았을 때와 비슷하고도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아, 저 사람은 언제 무대에 서도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겠구나 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신뢰감. 그의 인기가 식어가고 온갖 조롱을 받는 동안에도 그는 전성기 시절과 전혀 다르지 않은 근육질의 몸매와 실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언젠가는 대중들이 나를 어떤 방식으로든 무대에 세워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처럼.
 

사진_비 유튜브


그리고 제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것은 '일상'이라는 단어였습니다. 

비록 이전 만한 화려한 인기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시대에 다소 뒤떨어져 보인다는 조롱을 받는 그 시간 동안에도 가수는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춤 연습이나 운동 등의 활동을 그대로 유지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운동을 배워보지 않았다면 저런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부와 명예를 갖게 되면 나태해지고,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금을 자조할 수도 있을 법한데, 가수는 예전 전성기 그 모습 그대로 늘 지금, 여기에서 자신을 지켜왔던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추구하는 나의 모습을 사랑하고 지켜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게 대중의 요구와 맞아떨어진 요즘, 그는 마침내 긴 침묵을 깨고 다시 대중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 반응은 폭발적입니다.

마치 지금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가수 비는 다시 가장 비다운 모습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예전과 같지만 달라진 모습으로, 가장 실패한 앨범이지만 가장 성공한 앨범이 되었다는 영상의 베스트 댓글처럼 말입니다.

지금의 비가 있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일상, 루틴(routine)이었습니다. 대중의 요구와 관계없이 데뷔 전부터 피나는 노력으로 얻게 된 실력과 몸매를 유지하기 위한 일상. 다른 영상에서 후배들의 게으름을 꾸짖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마치 나의 나태함을 꾸짖는 듯한 느낌이 들어 한 없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고, 새삼 가수가 존경스러워졌습니다. 그가 대중들에게 호소했던 '진심'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었을까요? 

 

코로나 창궐 이후 우리에게 일상이라는 단어는 좀 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한때는 너무도 당연했던 것들이 불가능해지고, 사람들의 관계도 멀어져만 가는 요즘. 오히려 이런 시기는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누구나 어려움의 시기가 있습니다. 어려움의 시기에는 해로운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런 시기에도 나를 나일 수 있게 하는 그 무엇, 나를 건강하게 유지해주는 일상, 그런 루틴을 당신은 가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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