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제 정신상태는 어때요? 괜찮은가요?”
“선생님 이거 정신병 맞죠? 어떻게 해야 되요?”
50년 전만 해도 하루 끼니를 걱정했지만, 이제는 먹을 것이 넘쳐 비만이 사회 문제가 되는 시기다. 생존 자체가 문제였던 그때와 비교해 보면 적어도 행복한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인데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불행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50년 전과 비교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수가 10배나 늘었다고 한다.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어느 때보다 많은 스트레스에 자신이 이상해진 건 아닌지 염려하는 사람들, 쏟아지는 정신건강 정보에 자신이 그러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정신질환이 어떤 거냐고 물어보면 막상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대체 무엇을 정신병이라고 말할까? 나는 정신병일까? 아닐까?
정신병의 수는 무수히 많다. 2013년에 나온 5번째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5 :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을 살펴보면 정신질환의 수는 400여개가 넘는다. 400여 질환의 진단 기준을 하나하나 읽어보면 자신도 해당되는 질환이 너무나 많다. 정신과 의사들은 서로를 진단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누구든지 찾아보면 하나 이상은 자신도 해당하는 정신질환이 꼭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정신병자일까? 우리는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닌 세상을 사는 것일까? 아니면 정신과 의사들이 우리 모두를 정신병자로 만든 것일까?
지금의 진단분류는 종류가 너무나 많다. 사실 정신과 의사들도 시험을 칠 때나 조금 기억을 할까 그 진단의 진단명조차도 다 외우질 못한다. 이렇게나 많은 진단명이 필요할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의 경험이나 연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하다. 정신병에 대해 조금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예전의 분류를 빌려보자.
예전에는 정신병을 크게 정신증과 신경증으로 나눴다.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신병, 소위 ‘미쳤다, 이상하다’고 말하는 질환은 정신증psychosis이다. 정신증의 가장 큰 특징은 현실 검증(reality testing)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을 하면 분수를 모르고 과감한 사람이나 자기주장만 강한 사람들도 싸잡아서 정신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신증을 가장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정신병이 없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증상이 정신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있다는 것이다. 이런 증상 중 가장 흔한 것이 환청과 망상이다. 환청과 망상 역시도 그냥 친구들에게 ‘환청이 들리니?’ ‘망상 아니니?’ 하고 가볍게 농담으로 하는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다거나(환청; 심하지 않을 때는 혼잣말을 중얼중얼 거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어떤 사실에 대해 그렇지 않은 증거가 너무나 많은데도 실제로 그렇다고 철썩 같이 믿는 것(망상)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이럴 경우에는 정신과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스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가기가 쉽지 않다. 현실 검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환청이라고 지각할 수 없고, 망상이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환청이고 망상인 것이다. 이런 경우, 자신과 이야기하는 대상이 실제 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망상이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줘도 아니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귀에 도청기가 들어 있어서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다 듣고 있다는 망상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모두 다 말도 안 된다고 무시했지만 그 사람의 주장이 워낙 확고해서 이경과 내시경을 이용해 이비인후과적인 검사를 해 보았다. 하지만 검사를 통해 귀 속에 도청기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해서 이런 망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비인후과 의사가 자신의 귀 속에 도청기가 있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했다.
망상은 근거 없는 믿음이다. 망상은 뇌 속 사고과정의 오류로 형성되기 때문에 눈앞에 망상이 잘못 되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망상과 환청을 대표적인 증상으로 가지는 정신질환이 ‘조현병schizophrenia’이다. 조현병은 전 세계에 공통적으로 유병률이 1%이다. 100명 중 1명은 조현병을 앓는다는 것이다. 조현병은 반드시 약물 치료를 동반한 정신의학적인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 또한 증상이 심해질수록 현실 검증력이 떨어지므로 증상의 변화가 있는지 주위에서 관심을 가지고 경과 관찰을 하는 게 좋다.
심하지 않은 초기 상태에는 실제로 한 가지 면에서만 이런 모습을 보이거나 자신 스스로도 반신반의 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드시 설득해서 최대한 빠른 시간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발병 후 처음으로 치료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치료 결과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정신건강정책 조사 결과 미국이나 영국 등 OECD 국가들에서 발병 후 처음으로 치료를 받는데 까지 걸리는 기간이 평균 30주에서 50주인 반면 우리나라는 평균 84주가 걸린다고 한다.
조현병의 진단기준을 간단히 살펴보면,
제시된 증상 기준 중 정신증이 없는 사람에게 보이는 증상은 없다.
이렇게 정신증이 없는 사람에게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증상(환각, 망상 등)과는 달리 일반적인 사람들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정신과적인 증상들, 예를 들어, 우울, 불안, 불면, 강박, 신체증상(가슴 두근거림, 호흡곤란 등)이 있는 경우는 그 정도에 따라서 신경증으로 분류한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해보면 우울한 감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우울한 상황에서, (예를 들어, 가족이 아프다. 연인과 헤어졌다.) 우울한 건 정상이다. 아니 오히려 우울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진료를 받아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울의 정도가 정상 범주를 넘어 너무 심할 때 우리는 우울증이라고 한다. 이런 우울증, 불안장애, 불면증, 신체화장애 등을 우리는 신경증의 범위에 포함시킨다.
우울증의 진단기준을 간단히 살펴보면,
제시된 증상(우울, 슬픔, 공허감, 절망감, 눈물, 흥미 저하, 불면, 피로, 죄책감, 집중력 감소, 죽음에 대한 생각 등) 기준은 우울증을 가지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보일 수 있는 증상들이다.
그렇다면 우울, 불안이 심한 정도는 어떻게 판단하나? 우리는 이런 정도를 판단하기가 너무 어렵다. 혈당이나 혈압처럼 기계가 수치로 표현해 주는 것도 아니다. 진단 기준에 그 정도에 대한 정보를 기간과 적응력 등으로 표시 하지만 글을 보고 판단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실 정신과 의사들에게도 너무 어려운 작업이다. 증상의 정도에 따라 치료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면담 중 정신과 의사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 중 하나는 자신에게 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울, 불안, 불면, 강박, 신체증상 등을 자신 스스로 어느 정도 다룰 수 있는지(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주위 사람들과 얼마나 잘 지낼 수 있는지, 일은 어느 정도로 할 수 있는지, 살만한지를 말이다.
경도에서 말하는 적은 손상과 고도에서 말하는 뚜렷한 방해는 어느 정도일까?
정신병을 정신증과 신경증으로 분류해서 간단히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증상(환청, 망상 등)이 나타난다면 망설이지 말고 진료를 받으러 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우울, 불안, 불면, 강박, 신체증상(가슴 두근거림, 호흡곤란) 등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는 증상들 때문에 괴롭다면 자신이 병이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기 보다는 자신의 증상이 얼마나 심한지 ‘정도’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얼마나 괴로운지, 이런 증상들 때문에 사람들 관계에 얼마나 나쁜 영향이 가는지, 일을 하는데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스스로 그 정도를 평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다음 그 정도에 따라 맞는 치료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불편한 증상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편하게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을 추천한다. 기억하자, 정신질환은 발병 시점부터 첫 치료를 받기까지의 시간이 치료 결과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