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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트라우마, 그리고 치유 - 굿 윌 헌팅에 대하여
임찬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0.02.14 00:53

[정신의학신문 : 임찬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997년 작인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은 이전에 접할 때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지금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었고, 우연히 다시 영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다가옵니다.

 

'MIT 수재들보다 더 뛰어난 천재 청소부'라는 소재는 흥미 있지만, 이제는 너무 진부해진 내용입니다. 주변에서 쉽게 찾기 힘든 비범한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크게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의 상처, 어린 시절의 학대, 트라우마 등으로 인하여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고통받는 청년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내용은 여전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우리 모두는 크든 작든 마음의 상처를 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이런 상처가 오랜 시간 후에도 선명하게 남아 우리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주인공 윌처럼 말입니다. 주인공 윌은 쉽게 폭발하고 충동적입니다. 인간관계는 제한적입니다.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서 자주 싸움을 벌이곤 합니다.

그 이면에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숨어 있습니다. 윌은 어린 시절 가족에게 심한 학대를 당했습니다. 그 때문에 쉽게 불안감을 느낍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렇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믿게 되는 것은 윌을 불안하게 합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받을까 봐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하고 못된 말을 내뱉습니다. 관계가 가까워져서 더 큰 믿음이 생기기 전에 스스로 밀어내고 달아나 버립니다. 마치 버림받기 전에 스스로가 버려지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fear of abandonism)
 

사진_픽셀


우리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는 이런저런 자극을 받아도 웃으면서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그럴 수 없습니다. 윌은 작은 자극을 받아도 큰 공격으로 받아들입니다. 윌의 마음이 안정적이지 못하고 항상 불안하기 때문이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쉽게 과활성화됩니다. 윌의 마음에 있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을 것 같다는 느낌은 주변의 작은 자극에도 크게 폭발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윌의 내부에 있는 근본적인 불안함이 다른 사람에게 투사(projection)되고 공격적으로 반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오랜 시간 동안 윌을 괴롭힙니다. 영화 속의 윌은 여러 방면에서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윌은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공격적인 성향은 주변과 다툼을 유발하고 꾸준히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윌은 자신의 실력을 내보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시니컬한 성격이어서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는 무의식적인 불안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돋보이게 되면 상처 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미 다 큰 성인이고 충분한 능력이 있지만 어린 시절 형성된 무의식적인 불안감은 윌을 평생 따라다닙니다.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만듭니다.

 

로빈 윌리엄스가 분한 상담사 숀은 윌에게 'it's not your falut'라고 말을 건넵니다. 사실 이 말은 어렵지 않은 간단한 위로입니다. 하지만 이 간단한 말 한마디에 윌은 무장해제가 됩니다. 그동안에 견고하게 유지되어온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가 해제되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 강해 보이던 윌이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매달립니다.

이 간단한 말 한마디가 어떻게 그렇게 큰 힘을 줄 수 있을까요? 그건 치료자와의 관계, 치료실의 따뜻한 경험 때문입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믿을 수 있고, 누군가가 자신을 지지해 주고 있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이런 경험을 치료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학습하는 것입니다. (Psychotherapy)

 

이전의 트라우마 경험, 그 경험으로 파생된 좋지 못한 관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따뜻한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료자와의 관계에서 내담자는 다양한 상황을 경험합니다. (transference) 이런 상황은 내담자 스스로가 만든 과거의 주관적인 상황입니다. 아마 윌에게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상황일 것입니다. 내담자가 경험하는 이 상황을 치료자는 따뜻하게 지켜봐 줍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 치료자와 함께라면 뒤돌아보기 힘들었던 상황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이전의 어리고 작은 아이의 눈이 아닌 다 큰 성인의 눈으로 과거를 뒤돌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의 진료실에서 결정적인 말 한마디는 환자에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이때를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합니다. 이때의 위로는 내담자의 가슴속까지 깊게 잦아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를 만듭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외적으로는 멋진 사람일지라도, 내면에는 겁에 질려 있고 무서움에 떨고 있는 아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시간이 흘러도 성장하지 않고 현실의 삶을 방해합니다. 이 아이에게 괜찮다는 말이 진정으로 전달될 때야 이런 상처는 아물게 됩니다. 비로소 상처 입은 아이가 치유돼서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 <굿 윌 헌팅> 中


치료를 통해 윌은 현실을 다시 보게 됩니다. 스스로가 어린 시절 학대받고 겁먹은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이제는 똑똑한 청년으로서 성장해서 스스로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치유는 진료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모두가 진료실 안에서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않아도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경우는 많습니다. 가족, 이성, 친구, 사제지간 등..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많은 관계에서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의미 있는 관계를 통하여 충분히 메울 수가 있습니다. 메울 수 없을 정도의 큰 상처가 있을 때에는 치료가 꼭 필요합니다.

 

흔히 우리는 정말 믿는 친구의 시답잖은 말 한마디에 큰 힘을 내곤 합니다. 지나가는 듯이 하는 작은 위로에도 큰 위안을 얻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백 마디 번지르르한 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사람이 전달하는 따뜻한 감정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관계가 중요합니다.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은 그 어떤 치료보다 힘이 됩니다. 하지만 받기만 하는 관계, 주기만 하는 관계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런 관계는 처음에는 형성되더라도 계속 유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누군가를 믿어주고 진심으로 응원해줘야 합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한다는 감정은 다시 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게 주고받는 의미 있는 관계에서 비로소 우리는 성장하고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임찬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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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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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순이11 2020-03-31 13:53:44

    이전에 봤던 영화인데,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영화를 다시 봤어요. 내용이 새롭게 와닿네요. 잘 읽고 갑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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