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시대의 집단 히스테리 -

“새로운 운동의 추종자가 되려 할 때 개인은 고립적인 느낌이 되어서 자기 혼자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히기 쉬우나, 대중 집회에서는 비로소 보다 큰 동지의 모임을 보고 대개의 사람을 강하게 하고 격려하는 힘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은 이유만으로도 대중 집회는 필요하다. 만약 개인이 대중 집회에 발을 들여놓고 같은 신념을 가진 수천이라는 사람들에게 끼어든다면 그는 우리가 대중 암시라고 부르고 있는 마술적인 영향에 굴복하는 것이다.”

히틀러 「나의 투쟁」중에서…

사진 작가 : Marlon Doss

 

2001년 6월 7일, 경기도 남양주에 소재한 J 중학교에서는 홍역 예방접종 후에 25명에 달하는 아이들에게 집단적인 이상증상이 나타났음이 보고되었다. 아이들의 주 증상은 과호흡을 동반한 호흡곤란, 어지러움, 흉부 통증과 답답함, 감각이상 등이었는데, 이 중 7명에 달하는 아이들은 반복적으로 증상이 재발하였고 장기간 H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치료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국립보건원 측에서는 역학조사 후에 이러한 현상을 집단 히스테리 반응으로 판단하고 백신에 대해서는 완벽한 안정성을 기하였다고 보고하였다. 하지만 불거져 나온 백신 안정성의 문제와 학부모들의 항의로 인해서 백신 부작용의 가능성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이중에 반복적으로 증상이 재발되는 아이들은 한 달 이상의 병원 치료를 받았고, 입원 도중에도 증상이 재발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당시 J중학교에서 홍역 예방접종 시행한 학생은 전부 257명이었고 이중 남자가 124명, 여자가 133명이었다. 그중 남자 12명, 여자 13명, 총 25명의 학생에게 이상 반응이 보고되었다. 이러한 비율은 홍역예방 접종 시에 이상반응이 인구10만 명당 23.5명에 불과한 0.023%인 것에 비해, 9.77%로 425배에 해당하는 상당히 높은 발생률을 보인 것이다. 이상반응이 발생할 당시의 병원에서 측정한 환자들의 혈압 및 체온은 정상이었고, 접종 후 급성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는 쇼크의 반응은 관찰되지 않았다. 또한 이들 모두에게서는 이러한 신체적인 증상을 일으킬만한 기질적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국립보건원에서 이 증례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임상양상으로 보아 ‘집단 히스테리’로 알려진 ‘집단 심인성 질환Mass Psychogenic Illness (MPI)'일 가능성이 높았다.

 

포켓몬 신드롬

1997년 일본에서 일어났던 ’포켓몬 질환‘이라는 유명한 사건이 있다. ‘포켓몬Pokemon'이란 단어는 ’포켓 몬스터pocket monster'라는 말의 준말로, 1996년 사토시 타지리Satoshi Tajiri라는 사람에 의해 일본의 닌텐도 사에서 처음 개발된 게임의 이름이다. 이 게임은 수개월 만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 성공으로 포켓몬 게임은 텔레비전 만화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히다카 마사미츠Hidaka Masamitsu 감독에 의해 텔레비전 만화 시리즈물로 제작된 포켓몬은 1997년 4월 1일부터 일본의 공중파 방송을 타고 120여 편에 이르는 시리즈가 방영되었다. 포켓몬 상품은 게임과 음악, 만화책, 잡지, 캐릭터 상품 등의 다양한 상품으로 날개 돋친 듯 판매되어 한해에 10억 달러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리기도 하였다. 이런 유명세에 힘입어 포켓몬은 1999년도 11월 달 타임지의 커버 표지를 장식하기도 하였다. 이 만화에는 소년,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포켓몬 세계를 돌아다니며, 포켓몬이라는 창조물을 잡거나 아니면 훈련시킨다. 그들은 친구가 된 포켓몬을 ‘포켓몬 리그’라는 대회에 참가시켜 다른 포켓몬과 대결하기도 하는 등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다양한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포켓몬의 종류는 151종에 이르고 각각 다른 특징과 힘을 지니고 있는데, 그 중에는 가장 유명한 것은 ‘피카츄’라고 불리는 귀여운 노란색 캐릭터가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포켓몬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방송되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1997년 12월 16일 오후 6시 30분에 포켓몬의 38번째 에피소드인 「컴퓨터 전사 폴리곤」편이 도쿄 방송국을 통해 전국으로 방영되기 시작하였다. 이 만화는 항상 15% 대의 시청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고, 수백만 명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 만화가 시작되고 20여분이 지나자 ‘피카츄’가 컴퓨터 전사 ‘폴리곤’이 사용하는 바이러스 폭탄을 막기 위해 밝게 빛나는 전기 빔을 사용하면서 섬광을 빛내는 장면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오후 6시 51분경 피카츄의 섬광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이후 오후 7시 30분까지 일본의 소방 방제국에 의하면 총 618명의 어린이들이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면서 병원으로 실려 왔다. 이 질환에 대한 뉴스는 미디어를 통해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저녁 뉴스에는 문제의 포켓몬 장면을 다시 보여주었다. 이 장면을 보고 난 이후 또 다시 수많은 어린이들이 비슷한 증상으로 병원 응급실을 방문하였다. 아동들이 보인 증상은 경련과 의식의 장애, 두통, 호흡곤란, 오심과 구토, 시야장애, 그리고 전신 쇄약감 등의 증상이었다. 1997년 12월 17일에 도쿄 방송은 사과의 말과 함께 일단 방송을 중지시키고 경련의 원인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후생성 장관은 긴급회의를 열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시작하였고, 일본 전역의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이 시리즈물을 회수하기 시작하였다. 성난 부모들은 도쿄 방송을 고발 조치하기도 하였다. 일본 전역은 이 괴상한 질환에 대한 이야기로 들끓기 시작하였다. 이전부터 밝은 섬광은 아이들에게서 경련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1993년 영국 상업방송에서는 라면 선전에서 밝게 빛나는 섬광이 들어간 광고를 보고 일어난 3건의 경련 유발 사건 이후, 초당 3번 이상의 섬광을 방송을 통해 내보내지 말 것을 규정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이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에 착수하였지만 애니메이션 제작 상의 특별한 문제점도 찾을 수 없었고, 이러한 대규모의 질병 발생을 설명할 만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4개월여 간의 조사 끝에 닌텐도사는 이러한 사건 발생을 일으킬 만한 명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발표하였고, 포켓몬은 공중파 방송을 통해 다시 방영되기 시작하였다. 이후로도 수많은 연구자들이 역학적인 조사를 실시하였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155만명의 인구 중에 12명이 경련 증상을 보였고 이중 11명에서 뇌파상의 이상을 보였다는 결과를 발표하였고, 어떤 연구에 의하면 포켓몬에 의해 유발된 경련이 1만명당 1.5명 정도로 추산되며, 이 수치는 이전 영국에서 조사된 것의 10배에 이르는 수치라는 발표도 있었다. 여러 가지 연구들에서 보이는 결과는 포켓몬을 보고 실제로 경련성 질환을 보인 아동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이환된 아동들은 경련 외의 두통이나 오심, 구토 등의 경한 증상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로버트 바쏘로뮤Robert Bartholomew 등 집단 심인성 질환의 전문가들은 이 ‘포켓몬 질환’을 집단 심인성 질환으로 진단한다. 그는 방아쇠trigger처럼 소수의 경련성 장애를 겪은 아동들을 통해 불안과 걱정이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서 대규모 질환의 촉발을 가져온 것으로 해석하고, 여기에는 매스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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