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30대입니다. 최근 회사일 때문에 고민이 너무 많아졌어요.

같은 팀에 일하는 팀장은, 무소불위, 굉장히 권위적이고 폭언도 서슴잖게 하는 사람이거든요. 저와 일을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데, 제가 최근 실수를 크게 저지르고 나서 팀장이 저를 대놓고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6시 퇴근인데 5시 50분에 일을 넘겨서 오늘까지 끝내라고 하지 않나, 제가 한 프로젝트를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하고, 심지어 점심시간에도 급한 일이라며 떠넘겨서 외근을 나가게 합니다. 그러면 저는 밥도 못 먹고 일을 해야 하고요. 

그런데 교묘하게도 저를 괴롭히는 건 티가 나지 않게 합니다. 회식 자리에서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저를 괴롭히는 건 전혀 모르는 눈치였어요. 저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신경 써주고 있지 않나, 하는 말을 했어요. 저는 이렇게 잠도 못 자고 힘들어하고 있는데 말이죠. 너무 우울합니다.

회의 시간에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요. PT할 때 팀장의 눈빛을 보면 정말 사람을 깔아 누르는 것 같고, 위축되어 자꾸 버벅거리게 됩니다. 밤에는 그 생각이 머리에 떠나지 않아 힘들고, 특히 일요일 밤에는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심지어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너무 많이 했어요.

심지어 그 팀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예전의 저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죠. 팀장은 사이코패스 아닐까요? 제가 여기서 어떻게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까요. 진짜 제가 죽는 것밖에 답이 없을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 문제로 심한 갈등을 겪으시는군요. 아마 직장 생활을 하는 이들이라면 많은 분들이 공감할 만한 어려움이 아닐까 합니다.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직장 내 관계와 일반적인 대인관계의 차이입니다. 혈연으로 맺어지는 가족 관계, 개인적인 선호와 친분으로 이어지는 친구, 연인 관계와 달리, 직장 내 대인관계 같은 사회적 관계는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맺어집니다.

상사가 출근하는 것은 아랫사람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라 월급이 나오기 때문이고, 부하직원이 출근하는 것 역시 상사에게 개인적인 호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일반적인 직장에서 부하직원이 원하는 상사를 선택하기는 힘들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인 호감, 가치관과 무관하게 형성되는 관계이며, 퇴사나 휴직이 아니라면 원하지 않는 관계를 피할 방법도 제한되는 것이 상사-부하직원의 관계입니다.

특히 한 팀으로 묶여 있는 관계라면 한 사람의 실적이 다른 사람의 커리어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좋든 싫든 운명 공동체로 묶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실적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사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 내에서의 관계는, 가족, 친구 같은 다른 관계와 달리 이익과 손해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손해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좋아하고 감쌀 이유가 적다는 의미입니다.

 

글쓴이님과 상사의 관계로 돌아오면, 특별한 이유 없이 상사가 글쓴이님에게 호의를 보여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글쓴이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거나, 개인적인 취향이나 가치관이 잘 통하여 직장 관계를 떠나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다면 다를 수 있겠지만 이는 우정의 영역에 속할 것입니다. 모든 사회적 관계가 우정으로 발전할 수는 없겠지요.

당하는 입장에서는 속상한 일이지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스스로 상처를 주고 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의와 친분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닌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는 그러한 경우가 더 많지요. 위로될진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글쓴이님과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글쓴이님을 힘들게 하는 현재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관계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긴 어렵습니다만, 만약 비인간적인 대우나 규율상 혹은 인권적으로 불합리한 지시가 반복되고 있다면 이는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단호히 대처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상대가 배려가 부족하다거나 호의를 보이지 않는 문제라면, 이는 어쩌면 글쓴이님과 상대방의 관계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관계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조금 더 냉정히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상대가 내 생각에 적절하고 합당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행동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또한, 상사라고 하여 무조건적으로 상대의 기호나 요구를 완벽히 맞출 수도 없습니다. 직장 생활에서 상사에게 잘 보이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겠으나, 그러한 의도가 지나쳐 ‘내가 해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완벽히 상대방의 마음에 들려고 하다 보면 무리가 되고, 상대에게 반감이 생겨 오히려 관계를 그르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성향, 현재 글쓴이님과 상대방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고, 바꿀 수 없는 상대에 대해 반감을 품기보다는 현재의 관계 양상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하고도 편안한 선은 어디일지를 고민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상사와의 관계는 위계, 권위 질서상 윗사람과의 과거 관계 양상이 현재 반복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현재의 글만으로 추론하기는 힘들겠지만 어린 시절 선배, 선생님, 부모 등과의 관계 양상이 반복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대의 직급이 높아 쉽게 의사를 피력하지 못한 채 어려움을 참아야 하는 글쓴이님의 고통은 십분 공감하지만, 회사 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의 불안, 그가 없는 상황에서도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도는 분노, 심지어 죽어버리고 싶은 정도의 생각 등은 일상생활에도 심각한 어려움을 유발하고 있을 듯합니다.

정상, 비정상의 구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일상, 나의 행복에 내가 겪는 어려움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입니다. 마음이 ‘이렇게까지’ 힘든 이유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시각을 얻고, 한결 편안한 마음을 얻기 위해서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셔서 상의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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