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나 선생님 누군가 저에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고 잔소리하는 게 너무 듣기 싫었어요. 저는 맞벌이하는 부모님 밑에서 늘 혼자였거든요. 어디 물어볼 데도 없이 모든 걸 저 혼자 해왔어요. 그런 저에게 정작 필요할 땐 아무도 안 도와줬으면서 이제 와서 죽지 못해 살아온 저에게 참견을 하는 게 너무 화가 납니다. 제가 힘들 땐 공감은커녕 놀러만 다녀놓고 이제 와서 제가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게 너무 듣기 싫습니다.

어찌 보면 여기에 글을 올리는 것도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거지만.. 그냥 저에게 아무 관심도 안 가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지금 이대로도 너무 힘든데 자꾸 더 나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하면 저보고 죽으란 건가요? 벼랑 끝에서 겨우 매달려있는 사람에게 손을 잡아주기는커녕 네가 잘못해서 떨어진 거라고 얘기하는 것만 같아요. 저는 이렇게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드네요.

저는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나요? 제자신은 늘 뒷전이고 남에게 맞춰 살아왔지만 아무도 저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고 조종하려는 인간들 뿐이에요. 그냥 너나 잘하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니 인생이나 똑바로 살라고...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남들은 걱정해 준다며 하는 조언들이 내게는 더 상처가 될 때도 많지요. 요즘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문화나 정서는 가족이나 친한 지인이라면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조언을 허용하는 분위기도 있는 듯합니다. 일례로, 명절 때만 되면 남의 속도 모르는 조언들로 인한 갈등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지요. 비슷한 고민을 하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습니다.

제가 드리는 몇 가지 조언이 또 다른 잔소리가 되어 글쓴이님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게 하기를 바라며, 답변을 드립니다.

 

우선 글쓴이님께서 조언을 불편해하시는 이유를 조금 더 세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글의 내용을 그대로 빌리자면, 조언을 들으셨을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드시는 듯해요.

‘나는 늘 혼자였고, 죽지 못해 겨우 살아왔는데 참견을 하는 것이 화가 난다.’ 
‘힘들 땐 공감도 전혀 없더니 이제 서야 참견을 한다.’ 
‘이대로도 너무 힘든데, 더 나아지라고 하는 건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 내가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조언을 들으실 때, 조언 자체로 인해 화가 나고 슬프기보다는, 충고를 들을 때마다 저절로 피어나는 이러한 생각들이 힘든 마음으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시니 힘든 것이니 그걸 고치면 된다, 라는 또 다른 조언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은 살아온 삶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짧은 글로는 모두 표현하기 힘든 삶의 곡절이 있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저 내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릴 적부터 혼자서 힘든 적이 많았어서, 남들이 속사정도 잘 모르고 참견을 하면 그때마다 내 마음에 저런 생각이 드는구나.’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많았었지.’ 
‘그래서 충고를 들을 때마다 내가 그렇게 힘들었었구나.’ 하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을 잠깐 멈추고 천천히 돌아보면 거기서 피어나는 감정도 조금은 사그라듭니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면, 조금 더 편안한 생각이 들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남들이 조언을 할 때는 내게 관심이 있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지, 구태여 더 힘들었으면 좋겠다거나 내가 속상하기를 바라며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겠구나.’ 와 같은 생각들입니다.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힘든 마음, 종종 머리로는 그 과정이 이해가 되더라도 감정은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만, 그래도 내 마음에 피어나는 생각들을 돌아보다 보면 80만큼 힘들던 마음이 60만큼, 50만큼 덜 힘들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비슷한 일로 힘들 때마다 찬찬히 생각을 돌아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스스로 돌아봐도 느낄 정도로 마음이 꽤 편안해질지도 모릅니다.

 

혹시 ‘내 마음이 이렇게 힘든데 구태여 억지로 좋은 생각을 해야 하지? 왜 다른 사람을 좋게 봐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진 않으신지요. 이것은 억지로 좋게 보기도,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굳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생각들이 떠오르는 건 아닌 지, 그런 생각들 때문에 내 마음을 필요 이상으로 힘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평안, 내 행복이니까요.

그리고 ‘왜 내가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라는 말씀 아래에서, 타인의 기대에 꼭 부응해야 한다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세상에는, 글쓴이님을 포함해 세상에 있는 사람 수만큼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한 개인에게 완벽한 정답이 타인에게는 완전한 오답일 수 있습니다. 조언은 말 그대로 조언일 뿐, 반드시 따르고 충족시켜야 할 삶의 명령은 아닙니다.

어차피 모든 타인들의 시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조언을 들을 때 흔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삶의 어느 부분이 틀려있구나.’ 
‘내 약점을 상대방에게 들켰고, 지적을 당하고 있구나.’ 
‘어떻게든 고쳐야 할 텐데 자신이 없어, 어떡하지.’ 

등과 같은 생각이 저절로 떠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언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각자 자신이 믿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따르며 살아갈 뿐이지요. 가족이든 지인이든 누군가가 조언을 할 때, 심지어 조언을 넘어서 질책을 할 때라도, 수용하고 개선할 부분은 받아들이고 내 생각과 다르거나 부담스러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것만도 힘든데, 더 어떻게 잘 살아란 말이야, 왜 내가 네 가치관에 나를 맞춰야 하는데?라는 질문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조언하는 어떤 누구도 나 대신 살아주지도, 내 삶을 책임져 주지도 않습니다. 내 삶은 온전히 나의 것입니다.

그러니 불편한 충고를 받으실 때 귀담아들을 부분이 있다면 참고를, 그렇지 않다면 

‘그래도 당신이 내 삶에 관심이 있어서 좋은 이야기를 해 주는군요.' 
‘내 생각은 좀 다르긴 하지만, 그래서 거기에 다 맞춰줄 순 없지만 어쨌든 내 삶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시군요.’

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마음이 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구태여 마음이 편해지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조언할 때를 생각해 보면 조언에도 상당한 호의가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 했던가요. 충고란 기본적으로 상대의 부족해 보이는 부분을 지적하는 일이며, 상대방의 불편한 기분을 감수하고라도 그의 삶이 나아지길 바랄 때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답변이 조금 길어졌습니다. 짧게 정리하자면 조언을 너무 무겁게,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으시면 어떨까 합니다. 조언과 관련된 불편한 생각들이 떠오를 수 있는데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오를 수도 있겠구나, 조언이나 그것을 하는 사람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떠오르는 생각들이 나를 힘들게 할지도 모르겠구나 라는 생각을 떠올리시고, 그러한 생각들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조언은 조언일 뿐이니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나, 만족시키지 못함으로 인해 자책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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