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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살인 - 정신과와 편견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 승인 2019.04.19 10:28

[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진_픽사베이

 

지난해 12월 31일, 예약 없이 찾아온 마지막 환자를 진료하던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는 위험을 직감하고 몸을 피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안전을 챙기느라 대피공간을 나와 소리치며 대피를 지시했다. 범인은 미처 멀리 피하지 못하고 넘어진 그를 올라타 흉기로 찔렀다. 시민들이 가족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저녁에 그는 자신의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했다.

 

임 교수는 우울증 치료와 자살 예방에 노력했던 의사이며 한국형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의 주요 개발자이다. 그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우울증을 소재로 책을 썼다. 저자의 자살 생각이 포함된 내용이라 주위의 걱정도 있었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한다. 그는 직장인의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다루는 기업정신건강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며 조직문화 개선과 같은 예방적 접근이 자살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그가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직장정신건강연구회를 통해 공유하며 누구나 쉽게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지난 1월 2일 유가족의 뜻이 전달되었다. 첫째, 안전한 치료환경을 만드는 것. 둘째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이를 통해 고인의 유지를 이어달라며 조의금을 기증했다. 이는 자신의 아픔을 공개하면서까지 환자를 돕고자 했던 고인의 뜻을 기리는 방법이다. 어쩌면 유족은 위험한(?) 환자들을 사회 안전을 위해 격리하자는 위험한(!) 반응들을 봤을지도 모른다.

 

‘안전한 치료환경’과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는 사실 맞닿아 있다.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이유로, 상담을 받는다는 이유로 차별받는다면 누구도 쉽게 치료받기 어렵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은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였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일하는 식당에서 위생이 불결하다는 지적을 받자 여성이 음해했다고 생각했다. 여성들이 자신을 지각하게 하려고 천천히 걸었다는 생각도 했다. 현실에 맞지 않는 엉뚱한 생각, 즉 망상에 의해 엉뚱한 여성을 살해한 것이다. 이번 진료실 사건의 범인은 조울증으로 보호병동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아 자신의 머리에 폭탄이 있다는 망상을 가진 상태였다고 한다.

 

전체 인구의 1%가 조현병을 겪는다. 희소질환이 아니다. 조울증의 경우 3~5%다. 게다가 망상은 조현병, 조울증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신과 질환인 우울증에서도 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심지어 뇌출혈, 뇌종양과 같은 신체 질환에서도 나타난다. 필자가 전공의 시절 담당했던 환자 중 교통사고로 발생한 뇌출혈 수술 환자가 있었다. 출혈은 해결이 되었으나 잠을 못 자고 간헐적으로 성격과 판단력에 변화를 보여 정신과 보호병동으로 옮겨 치료를 지속했다. 어느 오후 회진 중 그는 갑자기 눈빛이 변하며 필자의 가운을 양손으로 잡아당겨 필자를 집어던지려 했다. 그는 유도 유단자였다. 병동이라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제정신으로 돌아온 환자는 어제 일을 들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정중히 사과했고 얼마 지나 퇴원했다. 만약 그가 적절한 정신과적 치료를 받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임 교수는 자신의 환자였던 범인이 누군가를 해치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 괴로워하는 상황을 막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그가 공지했던 직장정신건강연구회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주제는 기업 임원의 코칭이었다. 예를 들면 연구소장이 임원 승진 후 겪는 어려움을 돕는 것이다. 감정노동에 지친 직원부터 변화된 직무에 어려움을 겪는 사장까지 누구나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어린 시절 겪은 정신적 외상으로 힘든 사람부터 사고로 뇌를 다친 사람까지 누구나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정신건강에서 ‘편견 없는 치료환경’이란 누구나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일 것이다. 편견 없는 환경에서 사회는 더욱 안전해진다. 그가 바랐던 것이다.

 

 

* 정두영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헬스케어센터장)

필자는 과기원을 졸업한 정신과의사로서 학생들의 정신적 어려움을 공감하고, 진료와 더불어 인간을 직접 돕는 새로운 기술들을 정신의학에 적용하고자 인간공학과에서 연구합니다.

 

<본 칼럼은 2019년 2월 12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진료실 살인 – 정신과와 편견’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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