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선릉연세채움정신과 윤혜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스카이캐슬이라는 화제의 드라마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모를 원망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미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내 아이들에게 원망을 받고 있지는 않을까?

 

부모에 대한 원망이 많은 사람이 부모가 되면 전전긍긍하게 된다. 내 부모보다 잘해야지 하는 욕심이 앞서고 한편으로는 내 아이가 나처럼 부모를 원망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에 시달린다.

부모가 원망스러운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실제로 학대의 경험이 있을 수도 있고, 쉽게는 부모가 금수저가 아닌 것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속에 부모에 대한 원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된 지금까지도, 나의 부모의 그늘에서 독립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시대는 스카이 캐슬에서 단적으로 보여주었듯이 부모에게 최고의 헌신을 바라는 사회이다. 부모가 가진 경제적, 사회적 에너지를 모두 아이에게 쏟아부어 좋은 대학이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우스갯소리로 엄마의 노력,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으로 아이의 미래가 좌우된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아빠의 무관심이란 그만큼 아빠는 경제적인 부분에 책임을 지고 몰두하고 있다는 표현일 수도 있다.)
 

사진_JTBC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사랑을 주고 안전하게 지켜주는 걸로는 모자라 아이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아이의 수준에 맞추어 적절한 학원과 선생님과 과목을 선택하는 능력, 그래서 결국 명문대학에 합격시키는 것이 고3까지 이 시대의 엄마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원하는 대학이라는 이상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일부 아이의 행동을 통제할 수밖에 없고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 그렇게 이끌어가는 것이 부모의 능력이고 거기에 잘 따라오는 아이는 훌륭한 아이라는 칭찬을 들으며 자란다. 이렇게 통제 속에서 자란 아동은 겉으로 보기에는 착한 아이, 말 잘 듣는 아이일지 몰라도 내면에는 부모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가지게 될 수 있다. 그것은 아이가 부모와 공동 목표를 가지고 있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은 대학이라는 것은 단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훌륭한 목표이기 때문에 아이가 거부할 명분도 없다.

 

특히 요새 들어서는 분노나 화, 짜증, 거부, 좌절과 같은 감정 표현을 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학교나 사회에서도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이다. 순응적인 아이는 모범적인 아이이고 불만을 표현하거나 거칠게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는 모난 아이가 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적절하게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거나, 원하는 것을 주장하거나 혹은 원치 않는 상황을 거절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아이가 화를 낼 수 있는 대상은 그나마 부모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의 마음을 계속 괴롭힌다. 부모를 미워한다는 것은 아이에게도 마음 편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쌓인 분노는 어떻게든 틈을 비집고 삐져나온다. 일단 받아들일 수 없는 부모의 의견에 대해서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동의하지만 그 후에 이행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계획을 미루는 것 같이 말이다. 학원에 가기 싫다는 이야기는 못하고 꾸역꾸역 가지만 성과는 없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요구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뒤쳐지고 사랑을 잃게 될까 봐 두렵고 부모에게 의존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한편으로는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주장하고 싶은 욕구 사이의 내적 갈등. 그 속에서 아이는 혼란스러워진다.

이렇게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것에 대해 칭찬받으며 아이는 행동과 실제 감정, 생각 사이에 괴리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 훌륭한 성과를 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스카이 캐슬의 예서를 생각하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불안, 분노 등과 같은 부정적 정서를 적절하게 다루는 것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완벽성을 추구하는 강박적 성격으로 인생에 대한 여유와 즐거움을 갖지 못하고, 우울하고 쉽게 증오심이 생길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아이도 부모가 된다. 여전히 부모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고 당연히 한편으로는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혼란은 계속되고 이런 혼란을 내 아이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사진_픽사베이


먼저는 완벽한 부모가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우리 부모가 그러했고 나도 마찬가지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처음 해보는 부모라는 역할을 하면서 누구나 실수할 수도 있다. 나의 행동에 아이의 삶이 좌지우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본인에 대한 과대평가일 수 있다. 나의 부모의 실수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또한 나의 실수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다.

내 안에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 마음을 불편해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그 마음을 당연시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내 안에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마음을 어루만지고 해결하기 위한 별도의 시간을 갖고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기 주장성을 기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려면 평상시 본인의 생각보다는 본인의 행동에 대해 인식하여야 한다. 살다 보면 생각과 행동이 다를 때가 많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런 행동을 할 때가 있듯이 말이다. 생각과 행동이 다를 때에, 나의 실제 마음은 행동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하고 생각보다는 행동을 수정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생각들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아이를 통제하려는 마음도 내려놓아야 한다. 아이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많은 가능성과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아이에 대해 내가 통제하고 있는지, 방임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양육태도에 대한 평가 등을 받는다면 어느 부분에서 통제를 하고 있고 어느 부분에서는 방임을 하고 있는지 아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양육 태도에 정답은 없지만 자신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그것을 본인의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보는 습관을 기른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는 잠시 시간을 가지고 자신을 진정시킨다. 본인의 솔직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스카이캐슬의 열풍은 누구에게는 지나가는 잠깐의 흥미로 남겠지만 누구에게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바꾸는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부모를 원망하는 부모’가 대물림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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