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조성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번에 먹고 토하기 증상을 보이는 식이장애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식이장애 중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서 좀 더 많이 관찰되는 것은 폭식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입니다.

거식증이라고 불리는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의 경우 생명이 위험해지는 수준까지 가기 때문에 대부분 보호자에 의해 대학병원이나 전문병원에서 입원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폭식증을 보이는 경우 대부분 정상체중이나 과체중, 경도의 비만 정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고 그 행위를 은밀하게 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폭식과 연관된 행동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폭식 후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다이어트 약을 복용하거나, 설사약을 복용하거나, 구토를 유발하는 등 여러 가지 행동이 뒤따르게 됩니다.

​이러한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생물학적, 환경적, 심리적 요인들이 다양하게 관여하고 있지만, 심리적 요인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많은 비중을 보이는 심리적 요인은 다음 2가지가 있습니다.

1. 스트레스와 부정적 감정​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은 대부분의 식이장애 환자가 가지고 있는 우울, 불안, 긴장감, 외로움, 지루함, 초조, 절망감 등의 감정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내적인 감정, 낮아진 자존감으로 인해 체중을 조절하려는 조절력을 상실하면서 폭식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 공허감을 느끼는 시간에 음식을 폭식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위에 언급한 부정적인 감정, 낮은 자존감을 조절해보고자 음식을 폭식하고 체중조절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폭식이나 구토 행위는 적대적인 감정인 분노, 충동성을 표현하는 일종의 감정 표현 방식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폭식 뒤에는 곧 죄책감, 자기비난, 우울감 등이 더 심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후에 다시 폭식과 구토 행위를 반복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2. 다이어트와 공복감, 체중에 대한 잘못된 관념

다이어트를 하기 때문에 항상 배가 고픕니다. 그래서 더 먹을 것에 끌리게 되고 집중하게 됩니다. 까다로운 다이어트 습관을 어기기라도 하게 되면 그 후부터는 절제하기 어려워지게 되는 경향이 생깁니다.

이런 환자들은 사고과정에서 이분법적 사고방식/흑백논리적 사고방식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데, 완전히 지키지 못한다면 완전히 실패라는 절망감이 들면서 음식을 폭식하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폭식증, 식이장애의 치료는 어떻게?

폭식증, 식이장애의 치료는 크게 3가지 갈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약물치료입니다. 많은 연구에서 약물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특히 항우울제가 폭식증에서 효과가 있었는데 약물치료는 폭식의 빈도를 50~60%까지 감소시킵니다.

그리고 폭식이 줄어들면서 구토하는 행동이나 과도한 보상행동의 횟수가 감소합니다. 그러면서 음식에 대한 좌절감이 회복되고 음식에 대한 집착도 감소합니다.

이러한 항우울제의 효과는 우울감이 있거나/없거나와 관계없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정신치료입니다. 정신치료는 흔히 말하는 상담치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거나 보상행동을 하는 것에는 덜 신경 쓰고,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 문제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해결하면서 폭식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치료의 장점은 식이장애와 상관없이 나타나는 우울, 불안, 스트레스, 트라우마 등 인생 전반에 나타나는 부정적인 요소를 폭넓게 다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인지행동치료입니다. 인지행동치료는 체형이나 체중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바꾸는 치료입니다. 또한 행동적으로 잘못된 식행동 습관을 바로잡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인지행동치료는 인지-행동-정서의 3가지 고리를 동시에 교정하면서 증상을 치료해나가는 치료법인데, 특히 인지(고정관념, 편견)와 행동적(식습관 규칙) 접근을 선호합니다. 초반 몇 번의 회기에서는 행동치료적 접근을 배우고, 중반부에는 인지치료적 접근을 시행합니다.

이러한 인지행동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식사 일지의 작성입니다. 식사 일지의 작성은 하루하루 자신이 식사한 음식물의 종류, 양, 섭취한 시간, 장소, 그 당시의 상황/사고/감정, 그리고 보상행동(과식, 구토, 약물)을 적어나가는 것입니다. 자기 관찰은 자기 통제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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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3가지 치료법은 상호보완적인 치료입니다. 약물치료는 초반에 효과적인 폭식 행동 및 우울감 호전을 가져다주고 인지행동치료에서의 행동적 기법과 함께 쓰이면서 치료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줍니다.

치료를 거듭할수록 결국 부정적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중요해지는데 이는 상담치료를 통해 장기적인 관점으로 해결하도록 도와줍니다.

다만 대인관계의 어려움이 더 두드러진다면 상담치료를 선행해볼 수 있고, 폭식 행동이 더 두드러진다면 인지행동치료를 먼저 시행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선/후의 차이는 있어도 세 가지 치료는 같이 진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치료를 진행하다 보면 폭식 행동 이외에 많은 문제들이 같이 나타납니다. 음주행동, 자해행동, 다른 충동적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폭식 행동을 누르면 음주나 다른 충동적 행동이 나타나거나 우울이나 불안이 심해지기도 하고요.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폭식과 연관된 행동들은 불안정한 감정 조절이라는 근본적 문제의 표현방식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상자가 편안하게 부정적 감정을 처리하고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며 자주 다닐 수 있는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런 증상이 있다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아보시고 치료받아보시길 권유드립니다. 폭식 행동뿐 아니라 마음이 편해지도록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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