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건대 하늘정신과 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 방영 중인 KBS 2TV '해피선데이-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나은이가 말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국인 아버지와 스위스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은이는 4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물론 나은이가 뛰어난 아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보통 아이들도 사실 그런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12개월이 될 때까지 50 단어 정도를 이해하게 되며, 모국어를 흉내 내기 시작한다. 만 3살이 되면 대략 1,000 단어를(어른은 70,000 단어) 이해하고, 어른처럼 긴 문장을 말하게 된다.

왜 아이들은 어른보다 새로운 언어를 훨씬 잘 배우는 걸까?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사진_픽사베이


1. 모든 아이들은 언어적으로 ‘만능인’으로 태어난다. 

언어와 문화적 환경에 상관없이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언어의 음성 차이를 구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1970년대 초반 Peter Eimas는 유아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의 언어의 음성 단위를 잘 구별한다는 걸 밝혔다. 아이들이 말을 들을 때 가능한 한 모든 소리를 인지하는 능력은 어떤 언어든지 배울 수 있는 씨앗이 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영어의 ∕r∕과 ∕l∕ 발음도 무리 없이 구분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언어적 ‘만능인'으로 태어난다.

 

2. 음성 학습에 민감한 시기가 있다.

6개월이 지나면서, 유아들은 모국어에 점차 몰두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적 소리를 구별하는 능력이 급속도로 줄어든다. 12개월이 되면 6개월 때 쉽게 구별했던 음성 변화를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모국어 음성을 인지하는 능력은 더욱 뛰어나게 된다. 미국인 유아와 일본인 유아에게 ∕r∕과 ∕l∕발음을 구별하는 능력을 6, 12개월에 평가해 보면, 미국인 유아는 12개월에 근접하면서 ∕r∕과 ∕l∕을 더 명확히 구별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인 유아는 6개월 때에는 쉽게 구별하다가,  점차 ∕r∕과 ∕l∕ 발음을 인지하는 능력이 감소한다. 즉, 6-12개월이 음성 학습에 민감한 시기이다.
 

주: 미국인, 일본인 유아의 /r/과 /l/ 발음 정답률. 시간이 지나면서 차이가 커진다. Kuhl (2004)


3. 다른 사람의 말을 흉내 내며 배운다.

모든 유아들은 문화와 상관없이 공통적인 소리를 내곤 한다. 3개월의 유아들은 ‘구구(coo)’과 같은 모음 비슷한 소리를 낸다. 5개월이 되면 유아들은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따라 하는 능력을 배운다. 그러면서 7개월이 되면 자음과 모음이 합쳐진 ‘옹알이(babble)’를 하기 시작한다. 12개월 정도 되면 자발적으로 모국어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유아들은 모국어를 하는데 필요한 말하기 운동 패턴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래서 2살 가까이 되면 영국 아이들은 영국식 영어를, 중국 아이들은 중국어의 성조, 리듬, 음성 구조를 표현하게 된다. 이렇게 배운 운동패턴은 평생 가지고 가게 된다.

 

4. 사람들과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서 새로운 언어를 익힌다.

유아의 첫 일 년 후반은 언어 학습에 중요한 시기이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외국어를 노출하면 그들은 잘 배울 수 있을까? Kuhl은 9-10개월 된 미국인 유아들에게 중국어를 배우게 하였다. 그 결과,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언어를 익힌 미국 아이들은 중국어를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나 오디오 테이프를 통해서 중국어에 노출된 아이들은 중국어가 늘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과 직접 소통한 아이들은 대만에서 자란 아이들과 중국어 실력이 통계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즉 9개월 때 외국어에 적절하게 노출되면 음성 학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 직접적으로 사람을 통해서 배운 미국 아이들은 중국어를 더 잘 인지 했지만, 텔레비전이나 오디오를 통한 학습은 효과가 없었다. Kuhl, Tsao, and Liu (2003)


5. 눈을 통해서 언어를 배운다.

언어는 주로 청각적인 자극을 통해서만 배운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청각장애를 가진 경우에는 시각과 손을 사용하여 대화한다. 흥미롭게도 청각장애를 가진 유아들은 다른 아이들이 옹알이를 하는 시기에 손으로 옹알이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의 입모양을 보면서 익히기 된다. 우리가 시끄러운 장소에서도 상대의 입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들었던 경우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종합해 보면, 모든 아이들은 언어적인 만능인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부모 및 양육자와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서 모국어를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모국어가 아닌 소리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면서 모국어를 집중적으로 익히게 된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자라서 외국어를 배우기 힘든 것은 모국어를 더 잘 배우기 위한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의미가 없는 소음마저 언어로 처리하느라 뇌가 과부하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국어에 점차 선택적으로 6~12개월 동안 아이들은 양육자가 하는 입 모양, 소리, 박자 등을 더욱 익히게 되고, 12개월쯤이 되면 첫 단어들을 표현하고 60~90개의 단어를 이해하게 된다.

 

언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유용하고 가치 있는 능력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의 언어능력은 종족을 구분하고, 중요한 물건을 지시하는 정도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에는 제한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정보를 전달뿐 아니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 순서와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으며, 나아가 시와 소설을 지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복잡한 언어를 배워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건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이 과정을 좀 더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더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Principles of Neural Science, Fifth ed., 2013, Eric R. Kandel, James H. Schwartz

Fundamental Neuroscience fourth ed., 2012,  Squire, Larry

Kuhl, P. K., Tsao, F. M., & Liu, H. M. (2003). Foreign-language experience in infancy: Effects of short-term exposure and social interaction on phonetic learning.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100(15), 9096–9101.

Kuhl, P. K. (2004). Early language acquisition: Cracking the speech code. Nature Reviews Neuroscience, 5(11), 831–843.

T. Christina Zhao, Patricia K. Kuhl, Effects of enriched auditory experience on infants’ speech  perception during the first year of life, PROSPECTS, June 2016, Volume 46, Issue 2

 

 

 

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건대하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국가고시 인제의대 수석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수행평가 전국차석
5개대 7개병원 최우수 전공의상(고려대, 경희대, 이화여대, 인제대, 을지대, 서울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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