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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의 숭고한 애도, '그를 증오하지 말아주세요'
정지우 기자 | 승인 2019.01.06 09:22

숭고한 두 여성을 본다. 그녀는 말한다. 자신의 오빠를 살해한 사람에 대하여, 그에게 '낙인을 찍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심신미약 같은 걸로 또 봐주지 말고 단두대에 매달아라!"고만 외칠 때, 그 유가족은 사회적 낙인 없이 그와 같은 이들이 치료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의 죽음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우리 가족의 자랑이었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하면서도 그를 살해한 자와 같은 정신질환자들의 치료와 지원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 앞에서 한동안 무슨 생각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진료하던 환자 때문에 세상을 떠난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는 생전에 그토록 환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치료를 진심으로 바란 사람이었다고 한다. 온 세상이 누군가를 '심신미약' 따위로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악마들의 변명거리에 불과할 뿐이라며 소리칠 때,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삶을 바치던 사람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치유하고자 하던 사람들의 고통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기보다는, 그가 진정으로 바랐던 소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를 대신하여, 그가 살았더라면 했을 이야기를 한다. 마음이 아픈 이들,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을 예비살인자라고, 악마라고, 괴물이라고 규정짓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
 

사진_강북삼성병원


누군가의 안타까운 죽음은 수많은 방식으로 활용된다. 그중 하나는 '악마에 대한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증오심을 즐길 기회로 삼는 것이다. 증오는 쾌락을 준다. 적에 대한, 악마에 대한 증오는 우리에게 놀라운 집중력을 주며, 현실의 복잡한 고민들을 없애주고, 단 하나에 몰입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 식으로 중세의 여성들이 마녀라 낙인찍혀 불태워졌고, 유태인들이 악마로 지목되어 학살당했다. 또한 그런 식으로 ‘빨갱이’나 ‘김치녀’라는 규정들이 탄생했고, 그에 대응하는 온갖 증오들이 우리 사회에 넘쳐나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든 증오할 대상을 기다리며, 증오할 기회를 찾고 있는 증오사회다. 증오하는 자는 개별 인간에 대한 이해를 스스로 말살시켜 버리고, 손쉽게 일반화하여 매도하는 상상을 즐긴다.

 

그녀는 그러한 증오 앞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를 증오하지 말라고, 오히려 이를 통해 누군가를 보호하고, 지키며, 치료할 방법을 더 고민해달라고 말한다. 나는 이보다 더 숭고하며, 정확하고, 슬픈 애도에 관해 알지 못한다. 나에게 누군가가 그러한 입장에서, 그런 식으로 애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그러지 못할 것 같다. 나의 절망, 나의 분노, 나의 괴로움이 먼저일 것이다. 세상을 떠난 이의 진정한 마음,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 그가 이어가고자 했던 발걸음보다는 나의 감정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정확하게 보고, 정확하게 말한다. 증오로 함몰되지 말고, 더 큰 것을 지켜달라고, 더 중요한 것을 고민해달라고 말한다.

 

또 다른 여성이 있다. 그녀는 국회에서 '김용균법'이 통과될 때 "아들아, 너로 인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게 됐다."고 소리쳤다. 슬픔이 채 마르기도 전에, 그녀는 국회로 뛰어갔다. 그녀는 또 다른 '용균이'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소리쳤다. 그녀는 책임자들을 모조리 잡아내어 단두대에 매달아라고 외치기 전에, 또 다른 아들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고 절규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이 시작된 것을 정확하게 바라보았다. 구조적인 살인, 인권유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인간, 그녀는 세상에 여전히 수많은 그 '인간 아닌 아들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우리가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잡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죽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분노하는 것이다. 분노는 증오와 결이 다르다. 분노는 증오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증오가 병적으로 적을 찾아다니며, 그 적이라는 대상에 집착하며 쾌락에 중독되는 것이라면, 분노는 정확하게 문제의 본질을 겨냥하는 것이다. 분노는 그 겨냥을 통하여, 온당한 것, 옳은 것, 정당한 것이 이 부조리한 현실에 내려앉아야 한다는 요구다. 그녀는 세상 모든 아들들이 자신의 아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바로 그것이 다른 아들들을 죽인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슬픔과 증오, 절망에만 빠져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는 누구도 해낼 수 없는 방식의 애도를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살리겠다는 분노, 그것은 나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나는 한 번도 그곳에 도달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옳다는 건 안다. 그녀보다 옳은 존재는 없다는 걸 안다.

 

수백 명의 증오도, 수천 명의 악질적인 상상력도, 수만 명의 비열한 웃음소리도 한 사람의 진정한 애도를 이기지 못한다. 진실은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하여 애도하는 한 사람에게 있다.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 귀가 있다면, 마음이 살아있다면, 나머지 사람들이 할 일이란 온 마음을 기울여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진실 앞에서 침묵하고, 진실에 복종하고, 진실의 곁에 선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 길은 그들이 알고 있다. 그들의 애도가 곧 길이다.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

 

 

* 정지우 문화평론가, <분노사회> 저자

출처 : https://www.facebook.com/100007175478579/posts/2197922300456931/

 

정지우 기자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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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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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퍼요 2019-01-07 14:58:09

    두 분의 숭고한 분노가 이 사회를 바꿀 수 있기를, 증오로 범벅된 우리를 바꿀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또한 임세원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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