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정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응급실에서의 의료진 폭행에 대해 강한 처벌을 주장해 온 것과 최근 정신과 외래에서의 살인과 같은 사건에 대한 강한 처벌을 주장하는 것을 동일선상에 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있다.

응급실에서의 주폭이나 불쾌한 언행 등은 확실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고 필벌이 있어야 비슷한 유형의 범죄가 줄어들 것이란 점은 예상 가능하다.

그러나 과연 정신과 진료 상황에서의 사고도 강한 처벌이 있다고 해서 줄어들 수 있느냐는 점에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영미법의 개념 중 [M'Naghten rule]이란 것이 있다. 환청과 피해망상이 있던 M'Naghten이란 환자가 자신의 망상에 따라 사람을 살해하고 재판받았을 때 형성된 법칙이다.

정신 질환으로 인해 이성이 결여되어 저지른 행위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보통 감옥은 가지 않으나 강제 치료 명령 등으로 치료 감호소에서 형량보다 긴 세월을 보낸다.)

이는 후에 보완되면서 [police-at-the-elbow law]라는 개념을 낳았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저항할 수 없는 내적 충동의 수준을 이야기할 때, 코 앞에 경찰관(공권력)이 있어도 행동을 저지를 정도의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법으로도 정신 질환에서 나타나는 충동성에 대해 '어찌할 수 없는 충동'의 수준까지 정의하고 있다.

아마 전국의 많은 정신과 선생님들이 경험한 적 있고 현재도 노출되어 있는 상황일 것이다. 나 또한 수련받는 동안 안경이 날아갈 정도로 맞은 것이 두세 번, 사람 이빨에 물린 적 한 번, 기타 등등 폭언 폭력에 노출된 것은 세기 어려우니까.

그러나 내 옆에 보안 요원이나 경찰이 있었어도 그 상황을 막을 수 있었을 것 같진 않다. 사람한테 물렸을 땐 심지어 보안요원이 두 명이나 같이 있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주변의 많은 선생님들이 공분하고 있는 이번 사건은 형벌로써 예방 가능한 것일까.

칼로 자르듯이 응급실에서의 폭력은 엄벌하고, 정신과에서의 폭력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이 사건의 경우 주장하는 방향이 빗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신질환자의 입원이 상당히 많이 어려워졌고 환자의 입원을 결정하는 것에 있어서도 정신과 전문의의 역할이 대단히 축소되었다는 것에 있으며, 정신과 입원 환자에 대한 보건당국의 암묵적인 배척에 있다.

수십 년간 지속된 정신과 보호병동에 대한 '푸대접'은 입원 환경을 악화시켜왔고, 돈이 없어 악화된 환경에 대해 규제하고, 종내는 입원조차 어렵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종합병원은 적자만 내는 보호병동을 유지할 여력이 없고 상대적으로 영세한 정신과 병원만 남아 겨우겨우 유지한다.

작년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증진법으로 바뀐 이후 환자들이 병원 밖으로 쫓겨졌고, 그만큼의 사람들이 병원 밖에서 문제를 일으켜 교도소로 옮겨졌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가 안 터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지력의 문제다.

어떤 방법으로든 사고가 0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정책에서는 사고가 늘어날 일만 남아있다.

그리고 이런 사고는 형벌의 강화로 막아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의료 정책 수준에서의 '예방'이 필요하다.

보호병동의 입원 환경이 개선되고 입원이 필요한 사람이 입원할 수 있게 바뀌지 않는 이상 이런 사건은 반복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의 낙인만 강화시킬 것이다. 

 

임세원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림_박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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