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처음 만난 이에게 직업을 소개하면 ‘제 약점 다 들통나는 거 아니에요?’하고 진담 반 농담을 자주 듣는다. ‘저도 쉬어야죠. 진료 시간 외에는 일 안 해요.’라고 넘기곤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숨겨진 마음속 장점도 다 보시겠네요?’라는 농담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정신의학도가 된 이후 주변에서 이것저것 물어 온다. 요즘 기분이 처진다, 아는 누구가 많이 힘들다던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괜스레 걱정이 늘었다 등등... 그런데 ‘행복은 뭘까, 요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라며 의논해 오는 경우는 드물다.
 

사진_픽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시작된 의학은 더 이상 질환의 치료에 국한된 학문이 아니다. 병을 넘어서 어떻게 하면 개체가 더 잘 기능하고, 오래도록 그 기능을 유지할지가 의료의 큰 화두가 되었다. 몸의 생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특별한 병이 없어도 적절한 영양을 섭취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려 노력한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를 넘어, 활력 있는 삶을 위해서.

삶을 달리기로 비유하자면, 의학은 달리다가 부상당한 신체를 치료하고 다시금 레이스에 참가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달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도움을 준다. 정신의학은 한걸음 더 나아가, ‘어디로 달릴지’에 대해서도 접근한다. 어떻게 삶을 바라보고, 무엇을 추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행복인지, 의미 있는 삶인지를 환자와 함께 고민한다. 때문에 정신건강의학을 ‘행동 의학’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정신의학, 심리학 연구는 주로 정신 ‘질환’을 치유하는 데 집중해 왔다. 질환을 분류하고, 그 기저의 생리를 연구하며 치료법을 개발했고, 유의미한 가시적인 성과들을 거두었다. 수많은 질환들의 병태생리가 밝혀지고 약물 치료, 면담 요법들이 개발되면서 많은 환자들의 고통이 경감되었다.

그런데 행복이란, 단지 고통을 덜어내는 것일까? 슬픔이 사라지면 행복이 찾아올까?

 

긍정 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은 다음과 같이 고찰한다.

‘... 삶을 불행하게 하는 여러 심리 상태를 완화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삶의 긍정 가치를 부각시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약점을 보완하는 데 온 일생을 바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보다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다. ...’

(마틴 셀리그만, 긍정심리학 中. 물푸레. 2014)

 

살아가며 누구나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문제는 우리가 행복을 추구할 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 지나치게 몰두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각의 기저에는 ‘내게는 부족하고 불완전한 부분이 있다.’ ‘모자란 부분을 보완하고 완전해질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라는 마음이 뿌리내리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시각은 삶의 긍정적인 양상조차 잠재된 부정적인 동기에 의한 것으로 치부한다. 셀리그만의 예를 그대로 빌리자면, '빌 게이츠의 경쟁력은 자신의 아버지를 능가하려는 욕망으로,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대인지뢰 반대 운동은 찰스 황태자를 비롯한 왕족에 대한 증오심이 승화된 것'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접근이 틀렸다거나,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긍정 심리학은 행복을 추구하는 그다음의 시각을 제시한다. 즉, 마음의 부정적인 부분을 찾아내고 이를 개선하는 데 모든 힘을 쏟는 것에서 나아가, 자신의 긍정적인 부분을 돌아보고 감사하는 것에도 노력을 기울일 것을 조언한다. 기쁨을 주는 관계를 소중히 하고,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야를 열정으로 탐구하고, 원하는 바를 추구하며 몰입할 때 깃드는 행복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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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심리학의 관점에서는, 삶의 행위에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노력’, ‘숨겨진 리비도의 발현’, ‘미숙한 방어기제의 일환’ 등과 같은 환원적인 설명을 굳이 덧붙이지 않는다. 살아가는 이유는, 학문적으로 정립된 어떤 이상적인 인간상에 가까워지기 위함이 아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설사 완벽한 누군가가 있더라도, 그가 행복할지는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개개인의 강점과 약점, 스스로가 부여한 삶의 의미는 모두 다르다. 내게 기쁨을 주는 일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그것을 추구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이 행복의 씨앗이 된다. 때로 우울하거나 초조할 지라도 의미 있는 삶을 위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불안한 그 길목을 나아가다 보면 때때로 행복을 마주하거나 다른 이의 행복을 더하기도 한다. 고단한 삶에서 피어나는 조그만 기적이다.

당신은 언제 흥미를 느끼고, 어떤 일에 몰입을 하며, 어떤 이를 사랑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나의 약점은 무엇인지, 언제 우울하고 불안한지와 같은 의문들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욱 소중한 화두일지 모른다. 우리의 삶은 ‘불행하지 않음’이 아니라 ‘행복’을 향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부족하고 미흡하다. 하지만 괜찮다. 부족하지 않은 사람만 행복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늘은 빛의 흔적이다. 그림자를 뒤로하고 나아가는 당신은 아름답게 빛나는 중이다. 무엇이 빛나는 중일까? 이를 발견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몫이다.

 

* 긍정심리학은 개개인의 번영(flourish)을 추구한다. 다음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Felicia Huppert와 Timothy So가 제시한 번영의 요소이다.

핵심 요소: 

1. 긍정 정서 (positive emotion)
2. 몰입, 흥미 (interest)
3. 의미, 목적 (purpose)     

추가 요소:

1. 자존감 (self-esteem)
2. 낙관성 (optimism)
3. 회복력 (resilience)
4. 활력 (vitality)
5. 자기 결정 능력 (self-determination)
6. 긍정 관계 (positive relationship)     

(마틴 셀리그만, 긍정심리학. 물푸레. 2014, 우문식, 개정판 옮긴이 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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