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민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밝고 활발한 성격이었던 평범한 직장인 40대 여성 C 씨는, 2개월 전 업무 중의 단순한 실수를 다른 직원들 앞에서 직장 상사에게 크게 지적받는 일이 있었다. 억울하다고 생각한 C 씨는 상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따졌지만, 이후 돌아온 것은 직장 상사의 잦은 폭언과 은근한 괴롭힘과 잡무들이었다. 처음에는 이것 또한 직장생활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참고 견뎠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기력감과 참을 수 없는 가슴 답답함이 C 씨를 괴롭혔다.

가정에 돌아와서도 회사에 대한 생각이 지워지지 않고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잠을 자면서도 꿈에서 끔찍하다고 여겨지는 직장생활들이 자꾸 떠오르며 자주 잠에서 깨기도 했다. 사소한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등의 예민한 부분들이 나타났다. 남편과 아이들한테도 왠지 모를 짜증이 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들도 C 씨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무언가 어두워졌다며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괜히 주위 사람들을 걱정시킬까 봐 이야기하지 못했다. 원래 사교적인 모임과 운동 같은 취미 활동을 즐기기도 했던 C 씨였지만,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의욕이 나지 않아 매번 나가던 모임에 불참하기도 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다는 마음에 C 씨는 고민 끝에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였다.
 

사진_픽사베이


위의 사례는 스트레스 또는 트라우마에 의해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한 중년 여성의 사례입니다. 스트레스 또는 트라우마로 생긴 심리적 증상의 경우 대체적으로 이러한 증상들이 뒤따라올 수 있습니다.
 

1. 재경험, 침습 증상 (Intrusive Symptoms)

- 사건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반복적으로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오른다.
- 사건과 관련되어 반복적인 꿈이 나타난다.
- 사건과 관련된 단서나 현상만 봐도 깜짝깜짝 놀라는 등의 생리적 반응

2. 회피 증상 (Avoidance Symptoms)

-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 장소, 대화, 행동, 사물, 상황) 등에 대한 기억, 감정을 회피하려는 노력

3. 부정적 변화 (Negative Alteration)

- 심할 경우 사건의 중요한 부분들을 기억할 수 없는 무능력
- 사건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왜곡된 인지를 하여 자기 비하 또는 타인 비난 하기
- 공포, 화, 죄책감, 수치심 등의 부정적 감정의 지속
- 주요 평상시 활동에 대해 흥미나 참여 감소
- 다른 사람과의 사이가 멀어지거나 소원해지는 느낌

4. 각성과 반응성의 변화 (Alteration of Arousal and Reactivity)

- 기분이 민감해지고 분노 폭발하는 빈도가 높아짐
- 무모해지거나 자기 파괴적 행동
- 과각성, 쉽게 놀람
- 집중력 저하
- 수면을 취하거나 유지하는데 어려움

심할 경우 환자 자신이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인증이나 비현실감과 같은 해리 증상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혹자들은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요. 스트레스나 트라우마에 견딜 수 있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는 사람이나, 사회적 가정적 지지가 부족한 사람, 기존의 정신과적 병력이 있는 사람, 최근의 다른 스트레스가 있었던 사람과 같은 경우 똑같은 스트레스에도 더욱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또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남성에 비해서 여성이 조금 더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속히 ‘멘탈이 강하다’고 지칭되는 스트레스에 대한 내구성이 강한 분들이나, 스트레스가 견딜만한 정도였다면 시간이 약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에 취약한 분들이나, 스트레스의 강도가 트라우마를 일으킬 만한 수준이었다면 시간이 약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로 생긴 위와 같은 부정적 변화들이 앞으로의 생활에 위축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문제로 오신 분들을 치료를 해 보면, 우울감이나 불안감, 수면 문제와 같은 문제들은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회복세를 보이지만, 사회적 위축감, 회피와 같은 증상들은 장기간 따라다니면서 괴롭힐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정신건강의학과적 문제들이 그렇듯,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도 혼자서만 감내하려고 하면 훨씬 더 문제를 길고 심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내 사정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가족이나 동료에게 나의 감정 상태를 이야기하고, 필요한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는 것이 빠른 회복을 위해 중요합니다. 위의 사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까지 진단할 수는 없겠지만, ‘우울감, 불안을 동반한 적응장애’ 정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닌 ‘적응장애’ 정도의 수준에서는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3개월 안에 과거의 기능으로 돌아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능한 부분에서 스트레스 원을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직장생활이나 투병 같이 스트레스가 줄거나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에 대한 대처능력과 적응을 향상하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나 불안을 일으킬 만한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서 견딜 필요는 없겠지만, 그와 관련되지 않은 일상생활은 되도록 피하지 않고 하는 것이 장기적인 사회적 위축감을 줄일 수 있는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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