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울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까요?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어른들은 몇이나 될까요. 2015년에 OECD 회원국 35개국을 포함한 72개의 나라의 만 15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를 10점 만점으로 매겨본 연구가 있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한국은 6.36으로 72개 나라 중 꼴찌에서 두 번째 순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보다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나라는 터키 한 군데뿐이었습니다. 경제 규모로 보나, 각종 문화 지표를 보나 우리나라는 엄연히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행복은 왜 이렇게 뒷걸음질 치는 걸까요?

소아청소년 우울증은 이제 드문 질환이 아닙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소아 우울증 진단을 받은 5-14세 아동이 5698명으로 집계되었다 합니다. 한 해 6000여 명 되는 아이들이 우울증으로 새롭게 진단받고 있다니, 그 수가 적지 않아 보입니다. 또 그 비율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지요. 물론 우울증의 발생에는 주관적인 삶의 만족 외에도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작용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와 청소년 우울증의 증가 추세를 동떨어진 것으로 볼 수만은 없지 않을까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유독 과열된 입시 경쟁과 학업에 대한 부담, 박탈감, 인터넷과 언론을 통한 부정적 문화의 파급 등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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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 청소년기 우울증은 성인 우울증과 뭐가 다른가요?

소아 청소년기의 우울증은 성인의 우울증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성인은 눈에 띄는 기분 저하(우울감)와 매사 의욕 저하 등이 주된 증상이라면, 청소년기의 우울증은 짜증과 과격한 반응 등이 주요 증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시키는 경우도 흔합니다. 또, 그에 덧붙여 등교 거부나 학습 거부 등의 증상들을 보이기도 합니다. 혹은, 밤새워 컴퓨터나 게임을 하는 행동도 나타나게 되지요. 

청소년의 성장기는 급격한 신체 성장과 체내 생리의 변화로 인해 몸과 마음이 취약한 시기이지요. 하지만 '사춘기는 원래 혼란한 시기'라며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리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약간의 감정 기복, 예민함, 행동과 생각의 변화는 용인될 수 있지만, 가족 관계나 친구 관계, 혹은 학교 생활에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이 지속된다면 우울증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아이들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가 염려되는 수준에 이른다면 지체 말고 전문적인 평가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발생한 우울증을 잘 다루지 못하면,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 패턴이 성인기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성장기의 청소년의 생각과 감정은 주변의 영향에 쉽게 휘둘리고, 또 그에 따라 너무 쉽게 변합니다. 따라서 소아 청소년 우울증에서는 약물 치료뿐 아니라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나 놀이치료(play therapy)처럼 생각과 감정, 행동을 잘 다룰 수 있도록 돕는 치료 방법을 병행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우울증에 걸린 아이, 어떻게 대해야 할까?

1) 우울증에 대해 자녀와 함께 공부하기 

부모님도 당장 우울증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병에 대한 무지는 무기력한 아이들을 '게으른 것'이라며 비난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울증이 무엇인지,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어떤 경과를 거쳐 회복이 되는지,  좋아지는 신호는 무엇이고 또 나빠지고 있다는 신호는 무엇인지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중에 우울증과 관련된 책들이 참 많아요. 중요한 건 부모님께서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이지요. 우울증 극복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2) 정신과는 이상한 곳? 아이들의 낙인을 공감하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면, 아이들이 병원에 다니는 것에 대해 가지는 생각을 잘 읽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일수록 정신과라는 곳은 무언가 무섭고 이상한 곳, 크게 잘못된 사람들이 가는 곳, '미친 사람들'이나 가는 곳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필요한 치료를 받는 데도 소극적이게 되고, 학교에서 위축되는 경우도 많지요. 아이들의 불안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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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더 많이 들어주고, 함께 생각하라 

우울증에 걸린 아이들을 보면, 부모님은 마음이 다급해집니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뭐라도 하자고 권하지요. 어두운 표정의 아이에게 재미있는 영화를 권하기도 합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이가 끝없는 우울의 늪에 빠질 것만 같은 부모의 불안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울증은 어떤 획기적인 방법으로 드라마틱하게 낫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님의 권유는 강요가 될 수도 있어요. 

아이의 말과 마음에 더 귀를 기울이세요. 아이가 마음을 열고 말하기 시작하면 그 내용을 함께 고민합시다. 아이가 말하기 힘들어한다면 그저 지켜보는 편이 낫습니다. 말하기조차 힘든 상태일 수 있으니까요. 


4) 자기 관리를 배워나갈 수 있게 하자 

우울증이 회복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스스로 우울증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우울증에 대해 함께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일정 수준 이상의 활동량을 유지할 수 있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 관리, 수면 위생 관리,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면 투약 관리 등을 차츰 배워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다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취미나 관리 방법을 함께 찾아보는 것도 좋아요. 아이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부모님의 도움이 필수이겠지요. 우울증이란 놈은 내 눈앞에서 사라진 듯하다가, 어느 순간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요.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다시 발목을 붙잡게 됩니다. 

 

오랜 싸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부모님과 함께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는 든든할 겁니다. 부모야말로 아이의 가장 근원적인 소울 메이트(soul mate)이니까요. 

 

* 참고 자료
1. 2017 청소년을 말하다, 조선일보 <숫자로 읽는 세상>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12/2017091201751.html)
2. Sending depressed teens to college, Psychology Today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the-teen-doctor/201808/sending-depressed-teens-col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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