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노현재 의사]

 

청량음료 Cherry Dr. Pepper의 TV 광고에서 유명한 락밴드 Kiss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인 Gene Simmons는 이렇게 외친다. "날 믿어, 나는 의사야!"("Trust me! I'm a doctor!") 2010년에 방영된 이 30초짜리 광고는 꽤나 유쾌하다. Simmons는 자신을 Doctor Love 라 소개한다. (kiss의 calling doctor love라는 곡이 유명합니다.) Simmons는 자신은 의사이기에 이 음료가 최고라는 자신의 말을 믿으라 한다. 그는 대중들이 오래전부터 의사에게 가지는 여러 가지 믿음과 존중 그중에서도 의사의 말은 믿을만하다는 정서를 이용한다. 그러면서도 이 가죽옷을 입고 있는 강렬한 인상의 음악가는 대중들이 의사들에게 가지는 그 외의 다른 관념들이나 의사로서의 권위는 전혀 보이고 있지 않기에 유쾌하며 재미있다.

 

오랜 시간 전부터 의사들은 많은 존중을 받아왔었다. 초기 샤먼들과 주술사들은 지역 신(神)들을 통해 권위를 얻었다. 당시에 의사 역할을 수행했던 그들은 종교적 의식 절차에 입회하고 자신들을 선지자로 구분함으로써 다른 공동체 일원들과 차별을 두었다. 17세기에는 한 남자가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 판 일이 비극적인 이야기로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그가 의사 파우스트였기 때문이었다.

올해에도 수많은 의대생들이 가운 증정식부터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 가며, 현대 사회가 치유자로 인정하는 그룹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의학은 여전히 존중받는 전문직으로 남아있지만, 존중의 기반이 되어주었던 원천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섭리에서 벋어나 탁월한 기술집약적 지식으로 넘어갔다. 의학이 진화함에 따라 의사의 지위도 변화되었다.

하지만 종교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난 오늘날의 체계에서 의사의 윤리, 도덕적 상태는 어떻게 되는가? 현 교육을 통해 우리는 자동적으로 도덕적으로 훌륭해진다고 가정하고 있는가? 닥터 페퍼 상업 광고에서 언급하는 신뢰 가득한 모습이 현재 의사의 모습인가? 텔레비전에 나와 자신이 변호사나, 해양 생물 박사라고 주장하는 락스타는 없다. 하지만 의료인을 표방하는 이들은 있다. 아마도 의학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사람을 돕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의학과 도덕적 권위(moral authority)가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쁜 사람도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는가? (*여기서 언급하는 moral authority란 옳고 좋은 결정을 내린다는 신뢰를 의미.)

의사의 도덕적 영향력을 탐구하기 위해 의사를 진료소 밖으로 꺼내와 생각해보고자 한다. 의사는 사회에서 그저 평범한 시민인가? 현대사회에서 의사들이 도덕적 권위(옳고 좋은 결정을 내린다는 신뢰)를 지닌 사람의 역할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적 책임은 없는가? 있다면 그 책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사진_픽셀


현실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의사도 완벽한 사람이지 않다. 2000년 5월에 국립 암센터에서 진행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의사의 흡연율은 29.9퍼센트나 된다. 의사들은 담배를 피우면 좋지 않다는 의견에도 불가하고 담배를 태우고 있다. Sonja Boone는 의사는 환자들 그리고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강력한 역할 모델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의사가 어린아이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보이거나 과도한 음주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이들의 강력한 역할 모델로서 특정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일정 부분 이도 의사의 책임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의사의 이러한 행동들이 무조건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의사라는 전문직으로서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전문가다운 행동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개인의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지거나 도덕적 모범을 유지하는 것이란 쉽지가 않다. 더 나아가 의사라는 직업이 해서는 안 될 규범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항상 지키는 것도 의사도 사람이기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히포크라테스의 격언 “첫째, 침묵하지 마라!”라는 말을 언급하며 의사들은 동료 의사가 옳지 못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인지한다면 이에 대해 정중히 개입하도록 권하고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 의료의 질을 정기적으로 검토·심사하여 적정 의료 수준을 보장하고자 동료심사기구(Peer Review Organization)를 두고 있다. 책임 없는 자율은 없듯이 영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Good medical practice와 같은 지침을 두어 자율적으로 전문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의사들이 지니는 자율권을 외부의 침해 없이 지켜 낼 수 있으며 수준 높은 진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동료의 개입으로 개인의 도덕적 해이나 위반 행위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Valarie Blake는 미국에서 의사협회가 나서서 의사의 행동에 대해 조치를 취한 사례들을 이야기한다. 그는 여러 가지 사례를 언급하였는데 그중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미국에서 한 의사는 납치 및 성적 학대로 5년 면허 정지를 당했다. 그런데 의사 협회에서 그의 정지 기간을 1년 더 늘리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해당 의사는 이중 처벌이라며 항소했지만 법원은 의사 협회의 조치를 인정하였다.

 

Herbert Rakatansky는 미국 의학 정책 내에서, 의사의 행동 평가를 위한 이론적 근거를 탐구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어 예술가와 작곡가의 경우, 해당 예술 제작자를 싫어하지만 제작자로부터 창출된 예술은 사랑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예를 들면 나는 가수 XXX가 군면제를 옳지 못한 방법으로 한 것 같아서 싫어. 하지만 그의 노래는 좋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학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고 말한다. 의사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사들에게는 환자-의사 관계 자체가 제품인 것이다. 그렇기에 의사에게 있어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신뢰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말한다.

그렇다면 의사가 여러 행동과 업무를 통해 도덕적 권위를 획득한다면, 이 이후에 의사는 어떻게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이 선의를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획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Grayson Armstrong은 의학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문제일지라도 의사들이 이를 옹호할 때 가지는 힘은 강력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의사라는 직업은 높은 의학지식과 환자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과 우선시하는 태도를 통해 권위를 얻은 것인데 이것을 과연 의학과 상관없는 분야에 이용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가령 선거철에 특정 정치인의 지지를 “의사”로서 한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Thomas Bledsoe는 이러한 옹호의 한계를 설명하고 특정 정치적 견해에 반대할 수 있는 환자의 신뢰를 잃지 않고 이러한 범위 내에서 행동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Ford Vox는 특정 단체에 대해 의사들이 미숙한 옹호를 함으로써 발생한 일을 설명한다. 그는 2011년 2월 주 정책의 변화로 일어난 근로자들의 시위에 위스콘신 주 가정의학 의사들의 참여를 한 것을 사례로 제시했다. 시위대에 대해 의심쩍은 "병결 증명서"를 써줌으로써 의사들 스스로 이야깃거리가 되어, 해당 사태에 대한 여론을 왜곡시키고 말았다. 좋은 의도였으나 그들은 의사에게 부여되던 가치 신뢰와 정직성을 배반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의사가 특정 단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행위는 우리가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관행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권한에 대한 통제를 잃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이런 사안들은 의사들이 특별히 더 심사숙고해 “올바른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_픽사베이


앞선 이야기들이 한 명의 평범한 시민, 개인으로서가 아닌 의사로서 사회, 정치적 참여를 하거나 옹호하는 것에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형외과 의사 Steven Rivoli는 차별 철폐를 지지하는 것은 의학이 지닌 의무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차별 철폐에 대한 지지는 대중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라 말한다.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의사 단체 내에서도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는 쟁점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GLBT(Gay Lesbian Bisexual Transsexual) 커플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에 대한 거부나 그들에 대한 차별을 눈감아 주는 것은 그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사람들의 건강은 사회적 결정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의사들이 10대 소년들이 GLBT를 향한 폭력이나 왕따 행위를 하는 것 더 나아가 그들의 법적 권리의 침해와 같은 것들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은 그들의 건강을 돌보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만일 의사들이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려면 마찬가지로 다른 사회적으로 건강과 관련된 결정들에 대해서도 침묵해야 한다고 말한다.

Cruess 부부의 2008년 "기대와 의무 : 전문직업성과 의학이 사회와 맺은 사회 계약"의 저널 리뷰에서, 의학 및 법학 석사인 Michael S. Sinha는 의사가 사회와 계약을 맺음으로써 파생되는 4가지 의무를 밝힌다. 이와 함께 그는 의사가 일반 시민의 의무보다 더 큰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가지고 있음을 가정함과 동시에 의료계는 의료 공동체의 개선을 위한 조치를 자신들이 스스로 취할 책임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어쨌든 그는 사회가 의료 교육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큰 투자 수익을 기대하기 때문에"이며 이런 의도로 큰돈을 지불한다고 덧붙였다.(미국의 경우 주립 의대는 주에서 자금을 제공해주며, Medicare에서는 전공의 수련을 지원해준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한국의 실정과는 조금 맞지 않는 괴리가 존재하는 부분.)    

반대로 Nadia N. Sawicki, JD, MBe는 사회가 진료 외적인 부분에서까지 높은 수준의 개인행동을 의사에게 부과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는다. 즉, 그녀는 의사가 지닌 책임의 범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의사는 사람이지 성인이 아니기에 모든 사적인 일상생활 부분에서까지 완벽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의사가 신뢰를 받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임상적 역량과 환자에 대한 신중한 윤리 의식이라면 Sawicki는 이러한 측면으로만 의사를 판단해야 하지 이 범위를 벋어나 과대해석을 통해 개인의 일상생활까지 침해받거나 간섭받을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이전부터 의학이 보여준 선례들 그리고 오늘날까지 지속된 노력을 통해 오늘날의 의사들은 대인 관계 및 사회적 맥락에서 높은 수준의 자율권과 도덕적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진료 보는 방식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과학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나 환경 및 제도들은 의사들을 압박하고 진료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혼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 함께 휩쓸려 자신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의사들은 자신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힘, 이러한 요소들을 보호하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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