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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 벌레, 좀비 ... 특정 공포증에 대해
김수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10.04 07:53

[정신의학신문 : 김수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높은 곳, 벌레, 좀비 …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요!’  - 특정 공포증이란?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만큼, 개인이 두려워하고 취약한 부분 또한 각자 다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취약함이 일시적이거나, 강도가 강하지 않아 삶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지요. 하지만, 사람에 따라선 특정 대상이나 장소에 비합리적인 수준의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평소 삶의 다른 영역에서는 건강한 모습을 보이던 사람이, 특정 대상을 마주하면 이성을 잃고,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가 과해 일상생활, 대인관계, 사회생활에 영향을 줄 때, 특정 공포증(specific phobia)이라고 부릅니다. 환공포증, 고소공포증, 곤충공포증... 특정 공포증의 대상은 너무나 많습니다. 대개 사물을 앞에 붙이고 ‘-공포증’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요, 곤충이나 귀신같은 특정 대상뿐만 아니라 높은 곳이나 좁은 곳과 같은 장소, 폭풍우나 눈보라와 같은 날씨에도 공포증을 가지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공포증의 주제는 참 다양합니다. 좀 더 과장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뾰족한 샤프심에 대한 ‘첨단공포증’이나, 동그란 구멍만 보면 소름이 돋는 ‘환공포증’도 존재하니까요. 

다른 이들은 공포를 느끼지 않는 대상에, 끔찍한 공포를 느끼는 모습을 다른 이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희극이나 문학,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 특정 공포증의 원인

특정 공포증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대개는 타고난 불안에 대한 유전적 취약성과 성장과정의 경험, 최근 경험했던 공포감과 특정 대상을 결부시킬 수 있는 트라우마 등이 복합적인 원인이 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이를테면, ‘높은 곳에 올라가면 떨어질 수 있어’라며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는 어머니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고소공포증을 학습하게 되는 경우, 혹은 한창 스트레스를 받던 시기에 벌레를 보고 느꼈던 무력감, 공포감이 특정 공포증을 만들어낼 수 경우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 특정 공포증의 치료

1) 약물적 치료

특정 공포증에 심한 불안이 동반되고, 이로 인한 활동의 제약이 나타난다면 약물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주로 항우울제와 항불안제(흔히 말하는 신경안정제)를 사용하여 현재의 불안을 경감시키고, 불안 대상에 대한 감수성을 줄여 공포증에서 벗어나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특정 공포증에서는 다른 기분 장애나 불안 장애와는 달리 장기적인 치료보다는, 단기적 치료에 집중합니다. 특정 공포증에서는 공포의 대상을 마주치는 경우 외에는 일상생활에는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며, 약물로 인해 생기는 오남용이나 금단, 내성의 문제도 있을 수 있지요. 

2) 비약물적 치료

특정 공포증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효과가 입증된 치료에는, 체계적 탈감작(systematic desensitization) 기법을 포함한 행동치료가 있습니다. 체계적 탈감작의 원리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바로, 불안의 대상에 조금씩 강도를 높여가며 그 공포에 익숙해지는 훈련입니다. 

환공포증을 예를 들어 볼까요? 먼저, 자신이 두려워하는 가장 약한 자극(환, 혹은 구멍이라는 글자)에서부터 가장 강한 자극( 두려움을 유발하는 구멍이 여러 개 있는 사진, 혹은 실제 사물 )까지 위계를 정합니다. 어떤 이들은 공포의 대상을 연상케 하는 글자만 봐도 겁에 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개 공포 대상의 글자 - 사진이나 그림 - 실제 사물이나 대상 순으로 공포의 순위가 매겨질 겁니다. 그러고 나서 가장 약한 자극에서부터 그 자극에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쳐다보고, 생각하고 느끼도록 합니다. 너무 불안하고 무섭다면 10분 - 20분 - 30분 이렇게 시간을 늘려가면서 익숙해지도록 합니다. 시간과 공포의 강도를 기록하는 기록지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처음에는 너무 두려워 도망치고 싶을 겁니다. 또, 공포를 피하지 않고 견디고 있으면 점점 공포가 심해져 공황상태에 다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인간의 몸이 불안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불안이란 놈이 나타났을 때, 24시간, 365일 나를 따라다니지는 않습니다. 파도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할 뿐이지요. 불안을 일부러 견디는 과정에서 두려움과 신체반응이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이내 가라앉는 시기가 분명히 옵니다. 바로 그 첫 경험이 중요합니다. 작은 계단부터 조금씩 밟고 올라가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요점은, 불안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포의 대상을 견디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체계적 탈감작화(systematic desensitization) 기법의 원리입니다. 원리가 단순하기에 불안감이 그리 크지 않은 대상에는 혼자 시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방법을 혼자 해내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불안이 심해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 위 상황들로 우울 증상 등이 함께 동반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럴 경우엔 약물치료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충분한 평가와 진단을 받은 후 치료를 시작하시기를 권유드립니다.

 

김수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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