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저는 남자 친구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지금 남자 친구를 만난 지 10개월 됐어요. 상견례 날짜를 앞두고 있어요. 남자 친구는 저희 부모님 주위 분들에게 정말 잘 하는 사람이에요. 남자 친구 지인분들도 한 번씩 그런 얘길 해요. 아마 잘할 거라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그런가, 가끔 걱정이 생겨요.

언제부턴가 말다툼하면 말다툼 끝엔 소리를 질러요. 10개월 정도 만나면서 4번 정도 그런 행동을 보이는데 벌써부터 지쳐가네요. 사소한 일로 시작하면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하는데 발을 동동 구르며 세상 떠날 듯 소리를 질러요. 어느샌가 저도 같이 소리를 지르고 있더라고요. 지기 싫어서.

휴, 내 성격도 그런 성격을 영향받을까 봐 두려워요. 살면서 어떻게 안 싸울 수가 있겠어요? 몇 번은 내가 참고 하다 보면 바뀌겠지, 이런 생각에 만남을 이어왔는데 가면 갈수록 더해요.

남자 친구가 분노조절이 안 되는 걸까요? 성격을 고치기는 힘들겠죠? 저도 참다 보면 언젠간 터질 것 같고 너무 힘듭니다. 안 그랬었는데 얼마 전부터 심장이 쿵쿵 뛰는 게 느껴지고, 불안하고 결혼 후의 미래가 많이 염려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픽사베이


A) 미래를 약속하고, 상견례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보이는 남자 친구의 행동에 실망이 크셨겠어요. 내 미래를 이 사람과 함께 해도 될지 불안감도 크신 것 같네요.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약속입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를 상대방과 평생 함께하겠다는 약속이며, 또 어떤 갈등이라도 극복하고 화합하여 살아갈 것이라는 서약이기도 하지요. 만남과 헤어짐이 흔해진 세상이지만 결혼은 그 어떤 관계의 서약보다 강력한 법입니다. 섣불리 약속을 하고 나서 후회해도 되돌리는 길이 험난합니다. 그러니 중요한 결정 전에 충분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지금 보이는 남자 친구분의 행동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짧은 글에서 알 방법이 없지만, 적어도 중요한 관계의 결실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해보아야 합니다. 그저 표면으로 보이는 행동이 두려워 덮어놓고 지내는 것은 상처를 더 덧나게 할 뿐이니까요. 물론 갈등 직후가 아닌, 관계가 다시 충분히 회복된 후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야 하겠지요.

남자 친구가 취약한 부분을 함께 이야기하며 발견하게 될 수도 있고, 질문자님도 상대의 약한 부분을 알게 되면 더욱 조심할 수 있게 됩니다. 충분한 이해와 공감 위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가 싹틀 수 있습니다. 결혼 전에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경험이 쌓인다면, 결혼 후에도 관계가 성숙하게 발전할 겁니다.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 시점은 서로에게 스트레스 상황인 것은 분명합니다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마음 깊은 곳의 상처가 있다면 이에 대한 상담을 권유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사랑에 빠지게 하는 호르몬은 채 몇 년을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니 이 사람의 결점을 모두 덮고 넘어가야지, 하는 생각은 조금 위험할 수 있어요. 눈에 쓰인 ‘콩깍지’가 벗겨지게 되면 상대의 결점은 더욱 크게 다가올지도 모르니까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긴 결혼 생활을 버티게 하는 것은 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지요. 사랑보다는 ‘사랑과 우정 사이’ 그 어디쯤입니다.

오래된 친구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보세요. 서로에게 과하게 기대하지 않고, 그저 일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또 사소한 일에 마음이 상했다가도, 조금 거리를 두면서 관계가 회복되지요. 긴 호흡의 관계를 어떻게 잘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자신의 오랜 친구 관계를 떠올려보면 될 것 같아요. 자신이 친구들과 우정을 유지할 때, 상대에게 어떤 태도를 취했었는지 살펴보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 질문자님께서도 상대에게 너무 큰 기대를 가졌던 것은 아닌가, 필요 이상의 역할을 은연중에 요구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계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점검하는 과정이 꼭 필요할 것 같아요.

갈등을 극복하고, 행복하고 건강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염원합니다. 질문자님을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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