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아이가 떼를 너무 써서,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매를 들었어요. 너무 화가 나서 아이가 겁에 질릴 정도로 혼을 냈는데, 순간 그렇게 나를 옥죄고 혼내시던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여 소름이 돋더라고요."

‘산만한’ 아이를 데리고 진료실을 찾은 젊은 엄마의 하소연이다. 아이를 기르는 부모라면, 바닥에 주저앉아 떼쓰는 아이를 보고, 순간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필요 이상으로 화를 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다루는 자신의 모습이, 예전 부모님이 나를 다루었던 방식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흠칫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비단 혼을 낼 때뿐만이 아니라, 아이를 가르치고, 보듬고, 양육하는 모든 패턴에 자신을 길러준 부모의 모습이 녹아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 그 모습은 자신이 부정하고 싶고, 감추고 싶은 부분일 수도 있다. 부지불식간에, 내 아이에게 내가 보고 배웠던 그대로의 양육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_픽셀


♦ 성격(personality)과 양육의 대물림

부모 자식의 성격 특성이 비슷할 때 ‘성격은 유전이다’라는 말을 흔히 쓴다. 부모가 하는 생각, 행동, 그리고 감정의 패턴까지 아이에게서 동일한 흔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격이 유전된다는 말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실, 부모의 DNA에 담겨 있는 성격 특성이 100%의 확률로 아이에게 유전된다고 볼 수는 없다. 어머니와 아버지 양쪽으로부터 내려온 유전자들은 새롭게 조합되며, 그 과정에서 일부 돌연변이와 같은 변수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부모 양측의 성격 특성과 관련된 유전 인자들이 모두 아이에게 전해지지는 않는다. 엄밀히 말한다면 부모로부터 ‘성격 특성의 소인(diathesis)’ 을 물려받는 것이다. 

모닥불을 피우고 나면, 다 타버린 나뭇가지들에 자그마한 불씨들이 숨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대개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작은 불씨들도 서서히 꺼져버리지만, 세찬 바람이나 건조한 날씨와 같은 환경이 겹쳐지게 되면 다시 불꽃이 살아나게 된다. 이처럼, 갓 태어난 아이는 아직 불꽃을 채 피우지 못한, ‘성격 특성의 불씨’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저 가능성만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왜 결국 부모의 성격을 그대로 닮아가게 될까?  ‘일반적인’ 양육에서는, 아이를 낳은 부모가 자라나는 아이를 그들의 영향력 아래 두고 양육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는 부모의 감정, 생각, 행동의 패턴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대로 따라 하는 모델링(modeling)의 과정을 겪게 되고, 성격특성의 ‘불씨’는 서서히 피어올라, 아이는 결국 부모를 닮아가기 시작한다. 

성격(personality)이라 함은, 단적으로 말하면 나와,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이라 할 수 있다. 타고난 유전적 기질의 바탕 위에, 성장하며 겪는 많은 경험이 성격 특성의 형성에 관여한다. 이 시각과 관점의 차이에 따라 생각과 행동, 감정의 패턴이 결정지어지고, 이것이 성격 특성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성장기의 가장 중요한 대상, 즉 부모로부터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성격의 형성은, 아이가 성장한 이후 다시 아이를 낳았을 때의 양육 패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게 양육이 대물림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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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곡된’ 양육의 파괴성

결국은 양육도 대물림되어 내려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성격 특성에서 기인한 양육 패턴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인식이 굳이 필요하지 않아도, 적절한 범위 안에서 온건하게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부 ‘왜곡된’ 양육에서 나타난다.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학대, 방임 등의 양육으로 인한 끔찍한 사건들에서는, 조사가 진행되면서 대개 학대를 한 부모 자신도 학대의 그늘 아래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자라났음이 밝혀진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2014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가해자 100명 중 적어도 5명꼴로 어린 시절에 같은 형태의 학대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드러난 신체적 학대의 행태 외에도 방임이나 언어적 학대 등을 고려하면 그 수는 더욱 많을 것이다. 이처럼 성장 과정에서 부모와 부정적으로 상호작용했던 경험은, 아이의 성격이 형성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무의식의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기억은 시시때때로 의식의 수면 위로 올라와 그 아래 세대의 양육에도 부모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꼭 학대나 방임 등과 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양육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아이를 돌보는 방식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은 부모에 중요하다. 그 행동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지 못한 채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다시 아이가 성장한 후에 같은 패턴을 반복하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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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분별한 양육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방법

무엇보다도 먼저, ‘나’를 되돌아보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자신 스스로와, 타인과,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부모님의 양육이, 그 과정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부모님과의 상호작용 안에서 안전함, 안정감, 애착에 대한 감정적 욕구가 얼마나 충족되었는가? 그러면서 내가 자율성과 자발성을 가지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는가? 성장 과정에서의 아이에게 필요한 정서적 욕구(core emotional needs)의 충족은 안정적이고 건강한 성격을 형성해 나가는 데 필수적이다. 자신의 성장 과정을 뒤돌아보고, 어떠한 양육 형태가 자신의 성격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노력은, 내가 현재 아이에게 어떠한 양육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

자신의 성격특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부모의 양육을, 내 아이에게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가? 무분별한 양육의 대물림을 중단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다면, 이제는 이를 실행에 옮길 단계이다. 익숙하지 않겠지만, 아이와의 관계에서 나의 왜곡된 시각이 나타났던 상황들을 떠올려보자.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감정’이다. 아이와의 상호작용 중 과도한 분노, 짜증, 염려 등이 평범한 수준의 감정 범위를 벗어나, 폭발적으로 나타났던 때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 상황 안에서의 나의 시각은, 내가 가진 성격특성의 어두운 면을 반영한다. 이것이 나의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양육의 영향일 가능성이 있지는 않을지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감정의 폭풍이 지나고 난 후, 이를 다시 상기하고, 다짐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내 아이에게 주고 있었던 ‘왜곡된’ 양육의 영향을 줄이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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