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Ben Sutherland

 

2016년 3월 9일 세기의 대결이 이뤄졌다. 바로 인공지능 알파고와 10여년 동안 바둑 최강자의 자리를 지켜온 이세돌과의 대국이다. 이세돌은 대국 전 ‘아직은 나와 맞붙을 수준이 아니다’라며 승리를 자신했으나 결과는 알파고의 승리였다. 알파고는 구글의 인공지능 개발업체 딥 마인드가 창조해낸 인공지능 바둑 시스템이다. 1997년 체스에서는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딥블루가 이미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은 적이 있는데, 20여년이 지난 지금 왜 인공지능 알파고의 승리에 대해 이리들 야단법석일까?

 

바둑은 체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우의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바둑 경기의 경우의 수는 10의 170 제곱에 이른다. 이는 우주에 있는 원자의 수보다 큰 숫자다. 어쩌면 인간을 넘어서는 생각하는 존재가 등장한 게 아닐까? 실제로 충격을 넘어 위기의식을 느끼는 네티즌들도 많다. 알파고는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과 ‘심층 신경망’ 기술을 결합해 활용하도록 설계했다. 결과적으로 알파고는 선택지 중 가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말한 ‘인생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인공지능의 선택에 따르는 삶이 가장 잘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볼 문제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에 관한 이야기다. 앨런 튜링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애니그마’를 해독해내는 기계(후에 이 기계는 컴퓨터라고 불린다)를 만든다. 영화에서는 이런 기계를 만드는 동기가 되는 이야기가 잠깐 소개된다.

 

앨런 튜링 : “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더 암호 같고 알아듣기 어려워. 사람들은 나에게 점심시간이 되어서 ‘뭐 먹자’라고 이야기 하는데, 따라 나가지 않으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해. 사람들은 왜 ‘점심 먹으러 나갈래?’라고 명확하게 이야기 하지 않을까? 차라리 수학 문제를 풀거나 퀴즈를 푸는 것이 나에게는 더 쉬운 일이야”

 

앨런 튜링은 사회성이 결여된 괴짜 천재 정도로 묘사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아스퍼거장애(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었던 것 같다. 앨런 튜링은 사회적인 맥락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앨런 튜링은 사실 암호를 해독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들의 말을 해석해 주는 기계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암호를 해독하는 기계는 앨런 튜링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외로움을 벗어나고 싶은 소망을 담은 것 같다.

 

7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알파고가 앨런 튜링의 소망을 이루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계산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평생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 사회적 맥락 속 언어적 의미의 다양성은 10의 170제곱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10의 170제곱에 이르는 경우의 수를 가늠할 수 있는 알파고는 앨런 튜링과 같은 사람들에게 좋은 선택지를 골라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뉴런과 뉴런이 연결되어 일을 처리 하는 인간의 뇌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알파고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길, 또한 정신의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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