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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꿈이 발달한 이유 3가지를 꼽아 보아요.

등록일
2018-01-24 21:12:15
조회수
712

저는 꿈을 참 실감나게 꾸는데 상징물들이 매우 다양해요.

때로는 내 의식이 기억하지 못하는 단어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제 무의식은 제 의식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욕구 뿐 아니라 한 번 본 정보를 저장해두는 공간이 무의식은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제가 왜 이렇게 자면서도 뭔가를 보고 신경을 쓰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3가지 원인을 추려 보았어요.

 

한 가지는 제가 억누르고 있는 욕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기독교적 특이한 체험 때문에 그런 성향이 더 발달된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는 자면서도 정신차려야 했던 한 가지 어릴 적 사건 때문입니다.

 

저는 4살박이였을 때 부성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가난한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에 2년 나가 계셨고 엄마 혼자 공장에 다니시면서 언니와 저 둘을 키우셨어요. 그 때가 3~4살 때였으니까 저는 아빠라는 존재가 없는 줄 알았고 엄마도 공장 나가고 이모랑 언니랑 많이 지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아 대체로 스킨십이나 대화가 아닌 저만의 생각으로 세상을 느끼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 두려움도 몰랐던 그 때의 기억이 참 그리울 정도로 저는 자유로웠던 것 같습니다. 단점도 있겠지만. 저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동복지 쪽에서는 방치도 학대라고 하지만 저는 좀 특이하게도 그 시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성을 거부하는 성향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직장 생활에서도 권위적인 성향이 강한 분과 많이 부딪쳤던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4살 때인가 어떤 아저씨가 집에 오셨습니다. 언니와 저의 선물을 가지고 말입니다. 저는 약간 낯설고 무섭기도 하고 어색해서 부엌에서 고기를 썰고 있는 엄마에게 갔어요.

 

“엄마, 저 아저씨 누구야?”

왠지 분위기상 크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엄마곁으로 가서 살짝 소곤댔습니다.

“으응. 아빠야.”

 

맨날 테이프로 책도 읽어서 노래도 해서 녹음하고 엄마가 편지도 써서 부치며 그리워하던 아빠라는 존재가 눈 앞에 나타나니 낯설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아빠 무릎에 앉아 아빠 선물을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아빠는 어색했는지 저를 안아주지 않으시더군요.

 

저는 어느새 내려와서 선물을 보았고 그 때부터 아빠도 가족이구나 학습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까요. 바로 제가 자면서도 신경을 곤두세웠던 사건입니다. 어느날 엄마는 그랬습니다. 뿌듯한 표정으로요.

“어제 아빠가 널 안고 주무셨다.”

그런데 저는 고맙지가 않고 불쾌했습니다. 평소엔 대화도 없고 스킨십도 없던 아빠가 하필 잘 때 의식이 없을 때 안아주다니요. 아빠는 자는 모습이 안쓰럽고 귀여워서 몰래 안아주신 것 같지만 그것은 크고 나서 아빠를 성숙한 눈으로 다시 만났을 때 해석했던 것이었고 어리고 이제 청소년으로 나아가던 그 순간의 저는 이렇게 느꼈습니다.

‘내가 허락하지 않았는데 왜 안아주시지?’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면 아빠는 상처를 받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만의 방법은 자면서도 정신을 차려 아빠가 안는 것 같을 때 대처를 하는 수밖엔 없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잠들었습니다. 그 때 가난한 단칸방이라 그럴 수밖에 없던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빠 생각과는 달리 여자로 크고 있던 저는 저만의 공간에 대한 욕구와 수치심이 성장하고 있던 때였으니 당연했던 아빠와의 결별이었습니다.

어느날 엄마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제밤 네가 아빠 배를 막 차더라.”

무의식 중에 나는 누군가 닿으면 찼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찼냐고 동동동 찼다고.

‘성공했다.’

나는 자면서도 나를 지키는 것에 성공했다고 그 땐 생각했었습니다. 자면서 은연중에 한 행동이니 아빠도 혼내거나 마음 상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아빠는 저를 단 한 번도 만진 적도 안은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린 아이가 자면서도 신경 쓰며 자야 한다는 대안을 도출했었을까요?

 

그것은 사랑인지 폭력인지 구별하기 힘들 땐 말로 요청하기보다 내 자신이 나를 더 잘 지키는 방식밖엔 없다는 결론을 논리가 아닌 마음으로 알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프로이트도 폭력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힘든 때의 자신의 꿈에 대해서 분석하셨다는 얘기가 ‘꿈의 해석을 읽다’에 나옵니다. 유대인 차별이라고는 드러내놓고 하지 않았지만 뭔가 일은 안 풀리는 문화가 은근히 있었기에 프로이트도 은연중의 스트레스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 때! 자면서도 신경써야 한다는 느낌으로 매일밤 잠들면서 제 뇌에 어떤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어디에도 공개하기 싫은 제 유년의 추억입니다.

아버지의 서툰 애정표현이 나쁘게 표현되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제가 폭력으로 느낀 감정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3가지 이유로 제 꿈이 많이 발달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기독교적 체험에 대해서 다음에 또 써 볼까 하는데 괜찮겠지요?

 

모두들 솔직함으로 수치심을 이기고 소통을 이어나가기에 저도 보태 봅니다.

 

2018. 1. 24. 수

작성일:2018-01-24 21:12:15 124.146.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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