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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생존기8

등록일
2016-03-25 04:05:27
조회수
10230

아동학대 생존기⑧-내 고통의 깊이

 

 

이 글을 쓰면서 우려되는 점은 어떤 이에게는 더 심한 소외감과 박탈감을 안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너는 혜택이라고 할 만한 조건을 갖추지 않았냐고 면박할 취약계층도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식민과 전쟁·분단의 고난과 기아, 국가와 시대·정치적 여건으로 인한 시련과 가난, 혹은 제삼자로부터의 부당한 처우와 폭력, 계급계층차별 등 땅이 뒤집히고 온 존재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고통을 우리사회 구성원들은 너무 많이 겪었다. 앞서 말했듯이 타인의 고통의 무게와 크기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음을 잘 안다. 그가 느끼는 고통은 그 개인 고유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픔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섣부른 비교를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는 하나, 차라리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거대한 공동운명이라면 그저 수긍했을 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일시적으로 당한 사고라면 쉽게 잊고 딛고 설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고립상태에서 정신을 피폐화시켜 결국 자멸의 위기로 몰아넣는 폭력이 자신을 낳아준, 가장 가까운 존재로부터 평생을 통해 이뤄졌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 어떠한 고뇌를 가져오는지는 필설로 형용하기 어렵다. 나의 태어남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반발이나 원망조차 허용되지 않고 패륜의 굴레를 뒤집어써야하는 그 번뇌 말이다. 내 몸으로부터 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것들을 제거하고 받은 피를 싹싹 긁어내고픈 자기부정은 결국 자신의 파멸과 소멸만으로 끝을 낼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나의 몸은 열로 들끓다 못해 심장을 꺼내 얼음물에라도 쳐 넣고 싶을 만큼 지옥불에 데인마냥 뜨거워진다.

 

다시 상기하고 싶지 않았던, 건너뛰었던 기억을 다시 소환하는 것이 간신히 지켜가고 있는 나의 정신건강을 침해하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그때의 심정을 잠시 호출해봤다. 벌써부터 호흡은 가빠지고 머리가 무거워져온다. 먹은 것들을 게워내고픈 울렁울렁한 충동을 느낀다. 그때 얼마나 어떻게 상세하게 적어놨을지는 수많은 일을 겪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른 글들을 쓰면서 잊어버렸지만 일기장만은 남아있다. 엄마의 무지와 부주의함으로 먼지구덩이에서 삭아가는 것을 겨우 건져낸 내 목숨 같은 것들이지만 다시 펼쳐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부모의 지배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생애 전반기로부터 많은 시간을 건너뛰어 왔으므로 현재 나의 서술과 묘사는 다소 피상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괴로움을 또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문학적 성취는 접어두도록 한다. 자칫하면 이 글을 이어나갈 에너지를 아예 빼앗길 수도 있다. 보다 정리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과거를 조망하겠다고 결심한다.

 

내가 자살하거나 재생산하지 않는 것은 부계로부터의 소시오패스적 악성 유전자를 도태시키는 거라는 사고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자해 충동과 고통의 몸부림 속에서 발광과 착란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나의 이성은 나를 현실에 붙잡아 맸다. 사회적 압력으로 부모의 악행을 부인하는 순간 아마도 자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증으로 돌아섰을지도 모른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포기하는 순간 인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 엄마처럼. 엄마의 망상증이 나에게는 가장 인정하기 어려운 마지막 고비였을 것이다. 자신이 참고 잘 버티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뇌는 현실감을 잃고 망가져간다. 광신도가 왜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논리의 순교자적 행태를 보이게 될까. 괴로움을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각자의 정신세계가 각기 다 다르니 일반화해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엄마의 케이스를 봤을 때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결국 판단력·결정력을 잃고 자기제어력과 자립심도 상실한 채 기억장애 같은 치매증세를 보이게 된다. 결국 굴욕 속에서 종속적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반면 내가 인지장애를 보여야할 갖가지 병증을 가지고도 잘 버티는 축에 속하는 것은 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위안해본다. 물론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주부건망증도 오는 나이다. 내 괴로움의 이유를 알기 위해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운 경험들을 접은 채 어두운 방에서 독서와 사유를 하며 나를, 부모를, 우리 가정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위해 발버둥 치던 시절이 생각난다. 자기를 낳고 길러준 하늘같은 부모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내용의 글을 쓰며 세상의 손가락질, 돌팔매질도 각오한다. 이를 피해 문학의 영역으로 도피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상의 세계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인지라 픽션이 가질 수 있는 사회적 파장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기자정신이 등대가 돼줄 것이라고 믿는다.

 

어찌됐든 나는 자아실현을 하며 사회에 공헌할 방법을 찾으며 살았다. 더 나은 인재가 될 수 없어 안타깝지만 염세주의자나 비관주의자의 시각도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 난 날카롭지만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지고 사안을 바라볼 수 있다. 다소 우매한 낙관론자들에게 꽤 필요한 존재라고나 할까. 감수성도 예민하고 이해력, 공감력도 뛰어난 편이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데, 아는 것이 힘이고 글로써 자기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삶을 지탱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창작이 뇌에 마약 같은 효과를 준다는데 그래서 상처가 깊을수록 창조적인 일에 매달리게 되나보다. 재능과 결과물, 그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겠지만 적절한 보상이 항시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중노동에 매달리는 것은 그런 연유다. 예술을 하다가 미쳤다고 하면서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냐고 하는데 그렇게라도 자기표출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역인과다.

 

기억이 곧 그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런 점에서 난 참 불행한 사람이다. 내가 하는 경험의 기억이 곧 그 사람의 1차 의식을 구성할 테니 말이다. 항시 뉴스를 접하며 최전선에서 일했는데 험한 사건을 볼 때면 개인적인 나쁜 기억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엄마가 말하길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너네 집은 신문에 나올 집”이라고 했다는데 무언가 조금만 어긋났더라면 사회면을 장식하는 일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살면서 좋은 추억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런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미화할 능력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적나라하게 솔직해질 때다. 상처가 아로새겨진 영혼이 얼마나 아플 수 있는지에 대한 임상보고서의 가치라도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마당에 생애 회고는 이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나는 저술가로서의 삶은 좀 기대해 볼 수 있을까, 많은 것들을 접어야한다. 병들었고, 오래 사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삶이 버겁다. 인생에서 아쉬운 점투성이지만 후회는 많이 없다. 그 순간순간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노력했으니까. 비겁하게는 살지 않았으니까. 아주 더 내밀한 얘기는 아마 쓰기 어려울 것이다. 파헤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타인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의 불운을 전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나 저널리스트야, 팩트(사실)만 얘기하는 객관적인 사람이라고”라고 농반진반 얘기하지만, 사실이라는 것도 객관이라는 것도 ‘이데아’에 불과함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저 그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수기의 결말은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삶을 찾아 나아가느냐는 것이 필수 요건이라는 것이 통념이다. 너도 나도 어떻게든 보여 지기 좋은 삶에 집중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생은 그저 지속될 뿐이고 해피엔딩이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결말이라는 것을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을까. 결국은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것이 생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람이 살자면 어떻게든 사는 거지만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그만큼 삶의 장애물이 많은 법이다. 그야말로 무한경쟁시대에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셈이다.

 

나이가 들수록 오래된 속담이나 낡은 비유가 지금껏 살아남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참으로 와 닿기 때문이다. 뿌리부터 기둥이 단단히 자리 잡은 나무는 거센 바람에도 잘 버티지만 회복탄력성을 키우지 못한 불안정한 정서를 가진 이들은 매번 다시 일어서야하는 시련의 연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셈이다.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기반을 앗아가고, 미움만 가르치고 분노만 심어놓고는 어떻게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불안과 공포의 기억이 너무 압도적이라 의식전반을 지배받고 있는 것 같다. 좋은 경험을 많이 해 대체기억을 만들고 싶지만 성장기에 형성된 부정적 뇌는 쉬이 평안을 찾지 못한다.

 

나의 과거는 언제나 희뿌연 회색빛에 잠겨있다. 마치 세계사 교과서에 나온 ‘암흑기 중세’라는 비유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 같다. ‘우울할 땐 세상이 잿빛으로 보인다’는 주장을 담은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뇌과학이 대세가 되면서 미국에서는 이런 연구도 이뤄지나 본데, 오역 많은 기사였지만 감정이 색깔 인지에 영향을 준다는 요지는 공감했다. 반면 과거 느꼈던 감정만은 생생하게 되살아날 때가 많다. 꿈을 꿔도 마찬가지다. 머릿속 꿈은 낡은 흑백영화를 보듯 흐릿한데 꿈속에서의 감정은 실제처럼 뚜렷하다.

 

어느 심리학자가 쓴 책에서 아동학대 경험과 수용소 경험의 비교가 참 절묘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수용소에서는 고통을 같이 나눌 동료가 있지만 아동학대는 혼자만 견뎌야하는 싸움이다’, ‘수용소에서는 즐거웠던 과거기억이 버티는데 힘이 되지만 아동학대의 경우에는 지킬만한 좋은 기억이 없어 더 힘들다’는 정도의 내용이었다. 아동학대의 경우에는 완성되지 않은 개인에게 성장기 경험이 끼치는 영향력과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억압적 환경에 장기간 노출된다는 점에서 더 극복하기 힘든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돌아갈 편히 쉴 가정도 의지하고 돌봐줄 가족도 없다. 가장 친밀해야할 존재가 가해자가 되다보니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내 자신이 괴롭다보니 그랬는지 수용소나 전쟁피해 경험을 담은 증언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화가 나 날뛰는 아버지에게 “나치보다 더한 인간”이라고 소리치며 방으로 냅다 도망갔던 기억도 있다. 집안에서의 독재·공포 통치로 인한 정신적·신체적 괴롭힘이 나의 영육을 황폐화시키고 인간성까지 말살시키는 고문이라고 느껴졌으니까.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저널리스트 출신의 마르타 힐러가 익명으로 발표한 ‘베를린의 한 여인’ 등이 기억이 난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으며 통감했다.

 

나는 가정 내 성폭력을 당한 피해여성들을 다룬 책들도 찾아 읽었는데, ‘성’이라는 요소 때문에 더 선정적이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러나 성이라는 조건만 더해졌을 뿐 가족 내에서 폭력·폭언이 행사되고 전이되는 메커니즘은 다르지 않았다. 남성우월사상에 사로잡힌 난폭한 아버지와 무기력하고 대책 없는 어머니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우리 가정과 다를 바 없었다. 자기 친자식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불만을 풀기 위한 수단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 부모의 행태는 자식을 성욕해소를 위한 대상으로 삼거나 경제적 이득을 위해 도구화하는 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나는 부모의 콤플렉스와 결혼생활의 불만을 메우기 위해 철저히 이용당하고 착취당했다. 하지만 이게 자식을 위해 공부를 시키는 거라는 명분을 덧씌워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 부모는 여전히 자신들의 이상심리도 파악하지 못한 채 독불장군이 됐다.

작성일:2016-03-25 04:05:27 122.45.1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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