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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음 [비회원]
내 인생은 노답이었다. 아니, 아직도 노답이다.
그냥 죽음만을 향해 달렸다. 죽고 싶어 미쳤다는 표현이 더 알맞지 않을까?
주위에서 가족을 생각해보라는 조언을 해도 나에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죽고 싶은 이유가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족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었다. 오히려 방해되는 방해꾼이었다. 가족 내에서 겪은 많은 일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가족을 미워했다. 증오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계속 반복되니 초월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가족과의 단절, 나는 가족이 있지만 가족이 없었다. 그렇게 집을 나와 난 가족 없이 살았다.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자살시도를 하니 의원에서 대학병원으로 가라며 진료의뢰서를 써줬다. 이때 난 엄청 낙담했었다. 그래, 당신도 나를 감당 못하겠니 내 인생은 노답이 확실하구나라는 생각이 나를 뒤덮었다. 그래서 더 격하게 자살시도를 했다. 그렇게 어쩌다 대학병원에 가게 되고 입원을 하라고 했다. 입원을 하니 알게 된 하나가 있었는데, 빨리 퇴원을 하려면 '살고 싶은 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환상적인 퇴원 후 계획을 하는 척을 해야했다. 여러 차례 입원을 했었다. 답답한 병동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그렇기에 약을 먹고 증상이 나아지기 시작하면 더 빠른 퇴원을 위해 난 주치의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 앞에서 무조건 필사적으로 '살고 싶은 척'을 했다. 그럼 퇴원이 되었으니까.
퇴원 후에 대해서도 난 철저하게 다른 계획을 했다.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는 입원치료 후 일주일 내로 외래진료를 예약해주는데 일주일까지는 괜찮은 척 하다가 그 다음부터 고삐를 풀기 시작했다. 난 원래 죽고 싶었으니까. 근데 어찌보면 이게 당연한거다. 죽으려고 그렇게 '살고 싶은 척'을 했는데 말이다. 난 그렇게 퇴원 후 1~2주 사이에 다시 자살시도를 시작하는 패턴을 무한 반복했다.
이 패턴이 반복되다보니 입원치료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원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계속되니 아예 정신과 치료 자체를 반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상담치료도 꾸준히 받았다.
완벽주의 기질 덕분에 시간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약속 된 시간에는 무조건 갔다. 그리고 1년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사이에 가끔, 아주 가끔 내 마음을 이야기 했지만 힘들었다. 힘든건 너무 싫다. 그래서 다시는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을 이야기 하는건 힘들다는 걸 이때 깨달았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선생님께서는 일기를 써보길 권유했다. 감정을 적지 않아도 되니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적어보라고 했다. 그건 승낙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그리고 함께 책을 읽어보자고 했다.
그 책이 바로 임세원 교수님의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는 책이었다.
난 책 제목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면 난 무척이나 죽고 싶은 사람인데 말이다. 그래서 제목을 무시하고 읽었다. 완벽주의 기질에 주어진 과제는 무조건 해야하는 성격이라 어쩔 수 없이 읽었다.
시기 상 임세원 교수님에 대한 기사는 많이 봤었기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싫었다. 제목이 일단 너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작정 아무 근본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의 내용은 완전 달랐다. 반기로 가득 찬 나의 생각과는 달리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도 비슷하다는걸 깨달았다. 아, 이 교수님도 나와 다를게 없구나...
책은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나에게 남겨진 글들은 많이 있지만 이건 사람마다 다르니까.
이 책을 읽고 일기를 쓰기 시작하니 조금씩 생각이 변했다. 그리고 지금도 변화하는 중이다.
그렇게 상담에 가서 나누고 이야기를 하고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줄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칭찬을 해줬다. 이제 뭔가 되어 가는 것 같다고, 그리고 나의 일기를 통해 선생님도 배워나가고 있다고 하셨다. 상담 중 이런 일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의 행동도 하나씩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 완전히 변하지는 않았다.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죽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여 통제력을 잃을 때도 있지만 이전과는 다르다. 이전보다 나는 나를 좀 더 제어하고 통제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이 만능 키는 아니었다. 이 책을 통해 내 삶이 달라졌다라고 말할 수 없다.
환경의 변화와 꾸준한 약 복용, 그리고 상담치료 안에서의 과제(책 읽기, 읽기쓰기)들 덕분이었다.
신기하게 만큼이나 나에게 필요한 시기에 이 책이 회자되어 읽게 된 건, 그렇게 해서 내가 이렇게 하나씩 변해가고 있는 건 나도 놀랍다.
이 마음과 생각이 쭉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거다. 그래야 하늘에서 보고 계시는 임세원 교수님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지지하고 격려해주시는 분들도 기뻐하지 않을까?
(본질적으로 난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웃어주고 기뻐해주는 사람도 내 인생에서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사실 이 글도 남겨둬서 내가 힘들고 힘들 때 곱씹기 위해 쓰는 글이다. 이렇게 해야 내가 더 오래 힘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앞으로도 좋은 일들만 있기를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