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적 친구들이 일본 애니에 빠져있을 때 나는 혼자서만 미국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이 국내 개봉했을 때 스타워즈에 대한 심층적 이해도 없었음에도 개봉 자체를 엄청난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영화는 국내에서 특별한 성과도 없었고 주변사람들의 반응도 밋밋했다. 그런데 최근 에피소드 7의 개봉은 SNS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스타워즈 덕후가 있었나?’하는 놀라움과 함께 현재 300만 관객을 돌파한 상태다.
‘덕후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연예인들이 덕질을 공개하고(덕밍아웃) 일반인 덕후들도 공중파에 나오고 있는 실정이니 ‘덕후는 찌질한 것’이라는 기존의 선입견도 이제 없어진 것 같다. 닥터단감에도 가끔씩 등장하는 ‘현기증남’이 BJ로 떼돈을 벌고 있다고 하니, 엄청난 변화 아닌가?
이런 변화는 정말이지 반갑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개인적인 궁금함이 생겼다.
‘나도 과연 덕후인가?’
스타워즈 피규어를 SNS에 인증하신 교수님에게 ‘오덕오덕’라고 방자한 댓글을 달았더니 ‘너만할까?’ 라고 응답하신 적이 있다. 나는 인형도 피규어도 DVD도 모으지 않는다. 스타워즈는 에피소드 1 말고는 사실 본 적도 없다. 미국의 대표 애니메이션인 심슨을 사랑했으나 심슨과 관련된 물건은 전혀 가지고있지 않다. 하지만 ‘덕후’는 ‘무언가에 몰두하는, 무언가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단다. 교수님은 나에게서 ‘뭔가를 그리는 덕후’의 냄새를 맡으셨나 보다.
비록 예술가는 아니지만 되돌아보면 ‘창작, 창조, 생산’에 대한 욕구가 항상 있었다. 사실 누구나 이런 욕구는 어느 정도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 꿈은 ‘게임제작자’, ‘만화가’, ‘미술가’였지만 결국 의사가 되었다. 사실, 미술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었고 그냥 묵묵히 공부만 해왔다. 엄청난 것을 만들고 싶은 이상과 예술적 바탕이 없다는 현실의 절충이 ‘메디컬웹툰 닥터단감’이다.
몇 년 전, 창조경제가 화두였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의 전지구적인 성공이 부러웠던데다 K-pop으로 대표되는 한류, 강남스타일, 웹툰 문화 등에서 가능성을 보아 한국을 이끌어 갈 성장동력으로 IT와 문화 콘텐츠를 육성하고 싶었다. 하지만 창조경제는 아직이다. 땅 위에 건물 지어놓는다고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래도 최근 ‘덕후 문화’가 주목받는 사회 분위기는 정말 반갑다. 우리 사회도 개개인의 개성을 인정해주는 생동감있는 사회로 변화할 희망의 싹이 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소비적 덕후(consumer)를 넘어선 생산적, 창조적 덕후(creator)들이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적 덕후들이 소비를 통해 개인적인 만족에 머문다면 창조적 덕후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냄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 평전에서 생전 잡스는 자기만의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을 만들어 부하직원들을 착취에 가깝게 몰아치면서도 그들을 예술가 artist로 치켜세웠다고 한다. 책에는 세계 IT 역사를 바꾼 매킨토시 팀의 사진이 사뭇 담백하면서도 장엄하게 실려있다.
우리 사회는 소위 크리에이터들의 ‘창조적 덕후질’을 얼마나 뒷받침해주는 세상일까? 미성년자들은 입시에, 대학생들은 취업에 찌들어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사회적 컨베이어 벨트에서 탈출한 IT덕후들, 문학덕후들, 음악덕후들은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로또와 같은 성공 가능성에 젊음을 걸어야 한다. 실패하면 경제적 타격뿐만 아니라 ‘실패자’라는 낙인도 찍힌다.
이들이 끼를 발산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금전적, 제도적인 지원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해주고 포용해주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속에서 꿈틀거리는 창조적 끼를 바깥으로 분출할 수 있는 “Weirdo가 Wizard가 될 수 있는 세상”. 소위 ‘덕질’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세상.
P.S.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몰두하는 이들, 창조적 덕후, 더 나아가 위대한 예술가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심리, 정신적 요소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래서 정신의학신문에 묻습니다.
‘위대한 창조적 예술가들의 기저에 내재되어 있는 창조에 대한 욕구, 그 심리는 무엇이죠?’
Here is to the crazy ones.
The misfits
The rebels
The trouble makers
The round peg of square holes.
The ones who see things differently.
They are not fond of rules.
They have no respect for status quo.
You can quote them and disagree with them and glorify or vilify them.
About the only thing you can't do is ignore them.
Because they change things.
They push the human race forward
Well some may see them as crazy ones.
We see genius.
Because people who are crazy enough to think they can change the wolrd are THE ONES WHO DO.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에서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