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제주도 여행의 느낌이 김사월이라는 가수의 '접속' 이라는 노래와 느낌이 흡사하니 같이 들으며 보시면 좋겠습니다.

1. 2015년의 끝자락에서 뒤를 돌아 봤을 때, 홀로 제자리를 걷고 있는 느낌이 주요한 감정의 한 축이었다. 어떻게 하겠는가. 세상은 그대로 여전하고 나도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라고는 생각하지만, 쓸쓸하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와 감정이 점점 고조될 즈음, 주변의 환기가 필요한 시기임을 깨닫게 되었다. 때마침 문득 지인들의 제주도 여행담들이 떠올랐고, 그날 즉흥적으로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색다른 바람이 부는 그곳에 도착하였다.

2. 참 묘한 관광 도시이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마치 예전에 유행하였던 민낯 화장법을 연상시키는 것이 제주도의 풍경이다. 한없이 드넓은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그 위대한 자연 경광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데, 끝없는 바다와 비교되는 내 마음이 부끄러워 질 뿐이다. 왜 그리 속 좁게 행동했었는지, 옛 생각에 부끄러워져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 바다 옆에는 자연스럽게 꾸며진 여러 카페와 음식점들이 유명세에 맞게 손님들로 북적인다. 해변을 보는 여행객보다 카페 안에 손님이 더 많은 것이 좀 거북하기도 하지만, 나도 똑같은 사람이기에 카페 안쪽을 구경해 본다.

3. 에메랄드 빛 바다 앞 해변을 걷고 있노라면 한없이 휘몰아치는 그 무작위적인 파도가 사랑스럽다. 정해져 있지 않음이 아름답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함이 있어 매력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 영감을 주는 그림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들, 진리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 더 우리를 끌어당긴다. 그 불안정한 아름다움이 있어 인생이란 흥미 진진하다. 

4. 혼자 조용한 여행을 즐기고 싶어 제주도를 방문했건만, 안타까운 사실은 '제주도는 비수기가 없다'는 사실이다. 크리스마스에는 더구나 연말 성수기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날씨가 추워 바다주위에는 그나마 사람이 적다는 것이 장점일까. 

5. 온전히 혼자임을 즐기고 싶어 바닷바람에 맥주를 한잔 마셨다.  차를 빌렸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해장라면  한그릇과 맥주 한 병은 참 좋은 조합이었다. 한편으로는 단촐해 보이지만 그때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나에게만 불어오는 듯한 시원한 바람과, 그 북적이는 가게 안의 특별한 한적함이 새로운 느낌이다. 제주도에서 느끼는 한낮의 알딸딸함과 그로인한 노곤함은 모든 것을 잊게 해준다. 그 알딸딸함이 느껴져 다른 바다로 떠나려는 찰나에, 와이프와 함께 여행 온 지인을 만났다. 우연한 기회로, 이질적 공간에 같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연히 즐거워졌다.

6. 겨울의 해는 매우 짧아서 어둠이 금방 찾아왔다. 몇 군데 돌아다니지도 않았건만, 밤은 항상 똑같은 시간대에 찾아와 이제 여기까지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온전히 혼자 계획한 제주도는 처음이고, 게스트 하우스 역시 처음이었다. 도미토리 방에서 지내며, 제각각의 사람들과 하룻밤 사이 몇번의 술잔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었다는것일까. 옹기종기 모여 도란도란 지내던 밤은 쑥스럽기도 하면서, 솔직하게 나를 보여서 오랜만에 후련했다. 아침이 밝았을 땐 어제의 친구들은 각자의 스케줄에 맞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지만, 그것대로 매력적인 상황이다.

사진 instagram@soyoung92lim

7. 자유로운 여행을 하며 느낌적 느낌으로 정처 없이 다닌 듯하다. 때로는 혼자 다녔고, 때로는 동행하였는데, 모두 그것대로 매력 있었다. 지나가는 것을 잡으려고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구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느낄 수 있는 기쁨도 살가운 하루하루랄까. 혹자는 이것이 너무 좋아 제주도에 살기도 하던데, 나는 마음 한켠에 나만의 도피처로 제주도를 남겨두고 싶다. 언제 와도 나를 받아줄 것 같은 동네 형 같은 그 섬이,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있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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