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광화문숲 수면센터(수면클리닉)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러분은 학창 시절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주무셨나요? 야간자율학습, 새벽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기억이 떠오르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이렇게 우리가 청소년기에 밤낮 없이 공부하는 까닭은 "공부 시간이 많을수록 성적이 오른다"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물론 학습효과와 학업성취를 높이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공부 시간과 양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가 놓치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학습 효과를 높이는 데 있어 결정적 요소 중 하나는 '얼마나 잘 자느냐'라는 사실입니다.
청소년기의 뇌는 ‘공사 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변화가 많습니다. 이 시기의 뇌는 불필요한 신경 연결을 정리하고 중요한 정보는 더욱 강하게 연결하는 '시냅스 가지치기(synaptic pruning)' 과정을 거칩니다. 또한 뇌의 전두엽이 발달하면서 논리적 사고와 자기 조절 능력이 향상됩니다.
이 과정에서 수면은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특히 깊은 수면 단계인 서파수면에서는 낮 동안 학습한 내용이 해마(hippocampus)에서 대뇌 피질로 옮겨지면서 장기 기억으로 저장됩니다. 만약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다면, 뇌는 배운 내용을 효과적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다음 날 학습할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단순히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공부했느냐’보다 ‘얼마나 충분히 자면서 학습한 내용을 정리했느냐’가 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수면 부족은 학습 능력 저하뿐만 아니라 감정 조절과 스트레스 관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청소년들이 피곤할 때 짜증을 내거나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것은 단순한 기분 변화가 아니라, 실제로 뇌의 기능이 저하되었기 때문입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편도체(amygdala)가 과활성화되면서 사소한 일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또한, 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약해지고, 논리적인 사고가 어려워집니다. 이런 이유로 수면 부족 상태에서는 스트레스를 더 쉽게 받고, 불안감이나 우울감을 더 자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학습적인 측면에서도 수면 부족은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수면 부족은 집중력 저하와 문제 해결 능력 감소로 이어지며, 장기적으로는 학업 성취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청소년들에게 충분한 수면이 부족함에도 청소년들은 아동기에 비해 잠자리에 늦게 드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는 청소년기의 호르몬 변화와 관련 있습니다. 사춘기가 되면 멜라토닌(melatonin)이라는 수면 호르몬이 이전보다 2~3시간 늦은 자정 무렵부터 분비되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해, 뇌가 ‘졸음 신호’를 늦게 보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밤늦게까지 깨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등교 시간은 여전히 이른 아침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 기기의 사용, 학업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 습관 등이 더해지면서 많은 청소년이 만성적인 수면 부족을 겪기도 합니다.
청소년기의 건강한 수면 습관을 기르는 것은 단순히 “일찍 자라”는 조언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수면 패턴을 조절하는 ‘빛 활용법’
아침에는 자연광을 충분히 쬐는 것이 중요합니다. 햇빛은 생체 시계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며, 멜라토닌의 분비를 낮춰 낮 동안 더 활기차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합니다. 반대로, 밤에는 강한 인공조명이나 스마트폰의 청색광(blue light)을 피해야 합니다.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뇌가 ‘아직 낮이다’라고 착각하여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게 됩니다. 따라서 잠들기 최소 1시간 전에는 화면을 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2. 주말에도 일정한 기상 시간을 유지하기
주중에 수면 부족을 겪은 청소년들은 주말에 늦잠을 자며 수면을 보충하려 합니다. 하지만 주말에 늦게까지 자면 월요일 아침 다시 일어나기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늦잠을 완전히 포기할 필요는 없지만, 기상 시간을 평소보다 1~2시간 이상 늦추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3.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는 ‘수면 의식’ 만들기
자기 전에 긴장을 풀 수 있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면 수면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잔잔한 음악을 듣는 등의 활동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단, 취침 전에는 과도한 운동이나 자극적인 영상 시청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4. 잠자리는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라 ‘수면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침대에서 공부하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뇌가 침대를 ‘활동하는 곳’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잠들기를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침대는 오직 수면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으며, 방을 너무 밝거나 덥지 않게 유지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청소년기의 건강한 수면 습관은 단순한 생활 습관 문제가 아니라, 뇌의 성장과 학습 능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밤을 새워 공부하는 것이 성적을 올리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충분한 수면을 통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더 현명한 전략입니다.
수면이 단순한 ‘쉼’이 아니라 뇌를 성장시키고 학습 효과를 높이는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청소년 본인뿐만 아니라 부모와 교육자들도 수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청소년들이 건강한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좋은 수면 습관은 좋은 학습 습관과 연결됩니다. ‘얼마나 오래 공부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잤느냐’가 학습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광화문숲 수면센터(수면클리닉)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참고문헌>
* 김보희. (2014, 7). 청소년기, 수면과 학습의 상관관계는?. 브레인, 47, 33-33.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 이사, 사무총장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자문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감사자문위원회 위원
교육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 위원
생명존중정책민관협의회 위원, 산림청 산림치유포럼 이사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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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를 듣는 것 같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이 도움 받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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