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김영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일러스트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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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아직 1년 차지만 제가 만들어 내는 성과에 부족함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불안, 자기비하가 계속되어 일과 공부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아 사연을 올립니다.

 타고난 성격 자체가 다른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내 모습에 더 집중했습니다. 거기에 뭐든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겹치니 대학원에 들어와 새로운 것, 잘 모르는 것, 부족한 것들을 마주하면서 제가 스스로 괴롭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내 문제점을 잘 파악하는 것’에 집중하면 이런 일들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결국 그것이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부족한 점 찾기’에 좀 더 가까워졌고,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처럼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나, 사고력이 느린 나 이런 모습에만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스스로에 대해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학원을 통한 개인적 성장을 원했던 처음의 다짐에서 벗어나 ‘남들 시선에서 잘하는 나의 모습 만들기’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공부와 연구의 효율성을 많이 방해합니다. 예를 들어 연구 내용에 관해 토론할 때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나 궁금한 부분이 뭘까’라는 사고 흐름보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에 더 몰두합니다. 발표할 때도 잘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큽니다.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정답을 말하고 행동하려고 합니다. 옳고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요.

 이것이 제 생각과 행동을 경직시킵니다. 논리가 막히고 제 의견을 다듬어서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이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렇지 않고 어떤 생각과 질문이든 자유롭게 공유한다는 것을 제 눈으로 확인해도 변화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에 관한 생각을 내려놓고 오로지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싶어요. 이 고찰들이 오히려 제 능력치를 반감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험도 재밌고 좋은 연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이런 사고방식에 갇혀 있으면 나중엔 저도 연구도 모두 무너질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성격이 지금 상황에서 증폭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 패턴을 가져야 벗어날 수 있을까요? 도움 부탁드립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대학원에서 공부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에 더 집중하는 부분으로 인해 고민이 많으시군요. 이런 사고와 행동 패턴을 바꾸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하고 난감하실 텐데요.

 우선 사연자님께서 자신의 상태와 사고방식에 대해서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더 나아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시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면이라고 보입니다. 자의식 과잉이라는 면에 대해서도 스스로 인지하고 계시다는 데서부터 이미 변화를 위한 좋은 토대가 마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어릴 때부터 이런 성향이 있어 왔고, 대학원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연구 성과에 대한 부담감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가 이어지면서 더 심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관련해서 질문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혹시 어릴 때부터 성장 과정에서 주변의 평가에 많은 영향을 받아오시지 않았는지요. 부모님이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사연자님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어떤 행동이나 성과를 통해 인정받고,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데 익숙해지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적당한 칭찬과 보상은 우리가 더 노력하고 좋은 성과를 얻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나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사랑받기보다는 무언가를 잘했을 때,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긍정적인 보상을 받고 인정받는 경험이 지나치게 많아지고 이것이 누적되다 보면 우리의 가치관과 정체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를 해야 하는구나.’, ‘나는 더 잘하고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점점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는 무가치한 나, 사랑받지 못하는 나로 자신을 인지하게 되고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사연에서 어린 시절 자라오신 환경에 관해서는 자세히 말씀해 주지 않으셨지만 아마 이런 경험을 많이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무엇을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괜찮은 나’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보니 자아정체감이 빈약해지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성취함으로써 사랑받고 인정받으려고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기도 하고요.

 이런 면이 그동안 사연자님이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성취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항상 불안하고 뭔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 있으시지 않았을까 짐작이 드는데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더라도 언젠가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결과치를 얻지 못하는 순간도 오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마치 사연자님이 지금 대학원에서 경험하고 계신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들과의 비교가 단순히 더 노력하기 위한 동기부여나 새로운 자극의 수준을 넘어서서 자기 비하나 지나친 열등감으로 이어지면 사연자님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한데요.

 자의식이 과도하면 계속해서 자기 행동이나 생각을 분석하고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내가 설정해 놓은 이상적인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하고, 그런 모습일 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사연자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람의 모습은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 옳은 사람’인 듯합니다. 물론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똑똑하고 유능한, 옳은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고, 모든 사람과 다 잘 지낼까요? 꼭 그렇지는 않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은 똑똑하고 옳은 사람에 대해서 ‘너무 인간미가 없다’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또, 여기서 ‘똑똑하다’와 ‘옳다’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사람마다 누군가가 똑똑하거나 옳다고 느끼는 기준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연자님이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할 때, 사연자님과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까요? 사연자님이 부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 역시 그런 모습에 불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면서 어색하게 행동하는 것이 다른 사람 눈에도 보이는 것이죠. 오히려 잘 모를 때는 “나는 잘 모르겠다”라고 하거나 “이 부분은 이렇게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진짜 모습이 아닌, 꾸며낸 모습으로 타인을 대하다 보면 타인들 역시 사연자님으로부터 거리감과 벽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자의식 과잉의 이면에는 ‘내 진짜 자아’에 대한 자기확신 부족과 자기의심이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진짜 모습은 사랑받을 만하지 못하고 자랑스럽지 못하다는 생각, 내 진짜 모습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니 항상 나를 내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모습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 신경이 곤두서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내 진짜 자아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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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 진짜 자아가 어떤 모습이든 간에, 나는 내 진짜 자아를 아끼고, 사랑하며, 함께 데리고 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진짜 자아가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버릴 수는 없습니다. 부족하고 못나 보이는 나도 나고, 그런 나를 인정하고 감싸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랑스럽고 근사해 보이는 나만이 아닌, 실수하고 부족한 나의 모습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용납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타인의 평가나 인정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자존감의 근원은 외부의 칭찬이나 평가가 아닌, 내부로부터, 즉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을 명심하시면서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 낮추시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와 함께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연자님이 보이고 싶은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 대해보시는 시도를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대학원에서 그래도 조금 더 편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부터 해서 연구에 대한 고민이나, 대학원 생활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나눠 보시는 것입니다. 이런 고민을 나누면서 오히려 필요한 도움을 받으실 수도 있고, 또 서로 조금 더 마음을 열고 관계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똑똑하고 옳은 사람도 좋아하지만, 조금 덜 똑똑하고 옳고 그름에 대해 고민하는 인간적인 사람도 좋아합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나누는 사람을 용기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저 사람이 내게 마음을 열었구나.’라고 더 가깝게 느끼기도 합니다. 사연자님이 유능하고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누군가 역시, 사연자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늘 완벽하고 빈틈없는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 내려놓으시고, 조금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을 대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또, 항상 정답을 내놓는 것보다, 다양한 답을 생각해 보고 가능성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배움의 과정임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발견과 발명은 늘 당연해 보이는 것들을 질문하고,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어떤 학문적 고민이나 질문도 결코 바보 같거나, 의미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자신을 가두는 생각과 이상적 자아상에 대한 기대치를 내려놓고 진정한 자아에 대한 탐구와 함께 학문적 탐구도 더 활발하게 해나가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삼성공감 정신건강의학과 강남점 ㅣ 김영돈 원장

김영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공감 정신건강의학과 강남점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교수
노인정신건강의학 우수 인증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삼성서울병원 인턴, 전공의, 전임의 수료
전) 송파미소병원 진료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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