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괜찮았나요?
이른 아침이어도 피할 수 없다. 한자를 잘 몰라도 폭염과 폭력의 ‘폭’자가 같은 한자라니, 이제는 깊게 와닿는다.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내리쬐는 볕에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다. 목을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이 티셔츠에 스며들 때, 나는 의심한다. 내 우울증이 진짜인지, 지난 밤 죽고 싶었던 충동이 진짜였는지.
그때는 그때의 마음이, 지금은 지금의 마음이 진솔하다는 것을 크게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와중에 내가 의심하는 것은, ‘너무 편한 곳에서 살랑이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생각하는 자살은 나에게 진정 어떤 의미이냐.’이다. 나의 자살은 너무 나태하지 않은가, 곁눈질 해 보는 것이다. 고작 땡볕아래 흐르는 땀이 힘들어 ‘아이고 죽겠다.’ 하는 소리가 더 본능에 가까운 것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응원한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병원을 찾는 나와 해가 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길 바라는 나, 둘 다를 그때에 맞춰 응원한다. 그래서 아직 오늘은, 괜찮다. 아직은 내가 나를 응원하니까. 내일의 모든 것이 두려워도 무엇을 말하고 생각하든 나는 그런대로 나를 응원할 것이다.
나도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나 자신의 응원이라는 것은 너무 신기루 같은 것 아닌가. 비꼬고 무시했던 긴 시절이 있었다. 8년차 병원 출입인 입장에서 그것은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겠다고 병원을 찾아, 죽겠다고 8년을 말하고서야 이제야 내가 나를 응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물론 아직 응원보다 더 길고 강한 힘으로 스스로를 무시하고 부정적으로 판단하려 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들, 꺼내놓기 민망하고 한 번씩 쓰고 또 지우게 되는 그 감정들을 용기 내어 꺼내볼까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만 터널에 서 있는 사람에게, 끝은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졌다. 누군가 나에게 말해주길 절실히 바랐던 것처럼.
폭염 속 당신의 하루는 괜찮았는가? 폭염 속 괴로운 본능에 나를 기대어 보자. 그래서 적어도 오늘은, 죽고 싶은 마음보다 덥다는 마음을 이겨내며, 그렇게 괜찮아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