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과 버틀러의 관계를 통해 본 사랑과 힘의 균형

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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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합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누구의 사랑이 더 큰지 무게를 잴 수 있는 것도, 눈에 보이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관계 안에서 확연하게 혹은 미묘하게 우리는 누가 더 상대를 많이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지 자연스럽게 관계의 역학을 느끼게 됩니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관계인 A와 B의 사이에서 A가 B를 더 많이 배려하고, 베풀며, 양보하고, 다툼이 일어났을 시 더 자주 더 적극적으로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면, 우리는 바로 A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자, 그 관계에서 약자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이런 관계에서는 보통 관계의 주도권이 B에게 있고, 그에게 관계를 좌지우지할 힘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말에 동의하시나요?

 

미국의 소설가 마거릿 미첼의 소설이자 영화로도 제작되어 전 세계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여주인공 스칼렛의 인생 역정을 그린 작품인데요, 전쟁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은 폐허로 변해 버린 현실 속에서도 주인공 스칼렛은 가녀린 체구와 달리,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다시 일구어 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젊고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삶을 그리고 있는 만큼 그녀의 러브 스토리도 전체 서사 속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집니다. 영화 속에서는 전쟁이라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스칼렛이 자신의 젊은 혈기만큼이나 열정적으로 이성에게 사랑을 갈구하며 관계를 맺어 나가는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잘 표현하고 있죠. 하지만 빼어난 미모와 통통 튀는 성격으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애태우던 그녀의 사랑도 결코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습니다. 스칼렛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준 레트 버틀러와 결혼하지만,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었던 애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결혼생활은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되죠.

고단하고 위험한 전쟁 통에서 그녀의 곁을 지키며 사랑했던 버틀러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던 스칼렛. 마침내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여 아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제멋대로인 성격과 자신을 봐주지 않던 그녀에게 실망하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버틀러. 결국 그는 이별을 선택한 채 그녀의 곁을 떠나고 맙니다. 언제든 자신의 곁에 있어 줄 거라고 믿었던 버틀러가 자신을 떠나간 후에야, 스칼렛은 자신이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이 이상 속의 애슐리가 아니라, 현실 속의 버틀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깨달음과 후회는 뒤늦게 밀려오는 법인가 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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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과 버틀러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도 강자와 약자가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가슴속에 잊지 못하는 한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구애를 포기할 수 없었던 버틀러. 그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사랑보다는 돈이 더 큰 목적이었던 스칼렛의 의도를 뻔히 알고도 모른 척 눈감아 줍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을 만큼,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약자의 입장이 되기로 결심한 듯 말이죠. 반면에, 스칼렛은 자기보다 상대가 훨씬 더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무기로 앞세워, 그가 남편이 된 이후로도 그의 사랑에 화답해 주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버틀러에 대한 진심도 없이 상대의 사랑을 무기로 그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 했던 스칼렛, 그런 그녀를 위험에서 구해 주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도 사랑스럽게 바라봤던 버틀러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이 사랑을 먼저 시작한 것도, 또 관계를 끝내기로 한 것도, 사랑에 있어 강자라고 여겼던 스칼렛이 아닌, 약자라고 생각한 버틀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상대를 더 많이,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먼저 다가갈 수 있었고, 그 사랑에서 더는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순간, 이별을 고한 것도 바로 버틀러였다는 것을 말이죠.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할 뿐 상대의 감정과 필요에는 둔감했던 스칼렛에게 갑작스럽게 다가온 이별은 그의 사랑을 깨닫는 계기가 됩니다. 어쩌면 그녀는 그가 떠나간 후에야 자신이 이 관계에서 강자가 아니었다는 사실마저 알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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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평등하기를 바랍니다. 하물며 이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늘 어느 한쪽의 힘이 우세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에게 항상 휘둘리거나 맞춰 줘야 할 만큼 힘의 균형이 기울어져 있다면, 그 관계는 서로에게 진실하지도, 건강하지도 못한 관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서로에게 만족감을 느끼며 좋은 관계로 오랫동안 유지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고요.

어쩌면 ‘완벽하게 대등한 관계’란 이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엇비슷하게 힘의 균형을 맞춰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누가 더 희생하고, 누가 더 양보하고, 누가 더 사랑하는지에 연연하지 않고, 서로의 가슴속에 사랑이 흘러들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대등한 관계란, 서로가 상대방이 나에게 사랑을 베풀기만을 바라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사랑을 베풀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데서 자연스럽게 힘의 균형이 맞춰질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상대를 더 많이 사랑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사랑에 있어서는 강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러분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강자이신가요? 아니면 약자이신가요? 만약 연인이나 부부, 혹은 다른 그 누군가와의 관계가 순조롭지 못하다면, 그 관계에서 힘의 균형이 어떤 상태인지부터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힘의 추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데도 누군가 우위를 점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힘겨루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애정의 관계가 아닌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지루하고 힘든 게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희주 원장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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